[비즈한국] 2018년에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여행객은 479만 명에 달했다. 이들에 힘입어 국내 면세점 매출은 올해 2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 따이공(보따리상)의 매출 비중이 80% 이상이라고 면세점 업계는 밝힌다. 한국 면세점의 매출과 수익은 중국 보따리상의 소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 그런데 보따리상으로 분류된 사람 대부분이 실은 일반 여행객이라면? 일반 여행객이 자신도 모르게 따이공이 되고 나도 모르는 리베이트가 오간다면?
# 일반 여행객이 보따리상으로 둔갑
중국인 사업가 A 씨는 한국 출장길에서 쇼핑을 하기 위해 면세점에 들렀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출장 안내를 해준 가이드와 면세점에 동행했는데, 가이드와 면세점 직원이 자신의 쇼핑목록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A 씨가 면세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면 동행한 가이드에게 면세점이 일정액의 리베이트를 지급하는데, A 씨가 이미 B 여행사의 고객으로 등록되어 있어 동행한 가이드가 아닌 B 여행사로 리베이트를 준다는 것이다.
A 씨는 그제야 B 여행사를 통해 구매한 항공권 때문에 자신이 면세점에 B 여행사의 고객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실 A 씨가 면세점에 혼자 가든 가이드와 동행하든 A 씨가 사는 물건 가격에는 전혀 차이가 나지 않는다. 때문에 혼자서 면세점에 들렀다면 자신으로 인해 특정 여행사에 리베이트가 돌아간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을 테다.
이런 방식으로 중국 개별 여행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면세점에 따이공(보따리상)으로 등록되어 있기도 하단다. 황당한 일을 겪은 A 씨의 협력사 관계자는 “면세점들이 고객정보를 어떻게 등록하는지는 모르지만 거래처 직원들이 출장으로 한국에 방문했다가 면세점 구매를 할 때 면세점 시스템에서 종종 출장자들을 특정 여행사가 등록한 따이공으로 보더라”며 “일전에는 한 면세점 프로모션에 갔다가 출장 온 거래처 직원에게 갑자기 따이공은 프로모션 대상이 아니라고 해서 놀랐다. 면세점 시스템에 등록된 신분을 바꾸느라 여기저기 왔다갔다했고 시간도 한참 걸렸다”고 털어놨다. 기자가 해당 면세점에 문의하자 면세점 관계자는 “확인해보겠다”고 하면서도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중국의 사드 보복조치 이후 중국이 방한 단체 관광객의 비자발급과 모객을 제한하면서 단체 관광객의 수가 크게 줄었다. 전체 방한 중국 관광객의 수가 정점에 이르렀던 2016년 807만 명에 비하면 지금은 절반 수준이다. 반면 개별적으로 항공권을 구매하고 호텔을 예약해서 한국에 오는 개별 관광객은 상대적으로 늘었다. 이 때문에 가이드가 쇼핑 리베이트를 통해 수입을 얻는 일도 줄어들면서 수많은 가이드들이 전업을 했다.
중국인을 상대로 가이드 일을 했던 C 씨는 “사드 보복조치 이후 중국인을 상대로 하는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여행) 여행사들도 상당수 문을 닫았는데 몇몇 규모가 있는 굵직한 여행사들은 또 다른 방법으로 살아남았다”고 전했다. C 씨에 따르면 B 사 같은 큰 여행사들은 중국에서 항공권과 호텔 등을 따로 예약해 개별적으로 오는 여행객들의 정보를 미리 빼내 자신들의 고객으로 면세점에 등록해 리베이트로 이익을 챙긴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직 가이드 D 씨는 “중국에서 여행사를 통해 항공이나 호텔을 예약하면 국내 인바운드 여행사로 고객 리스트가 넘어오는 경우가 많다. 한국으로 고객의 정보를 팔아 부가적인 수입을 올리는 것”이라며 “통계 숫자만 보고 면세점의 중국인 매출 대부분이 구매대행(따이공)이라고 단정 짓는 건 금물”이라고 말했다.
# 여행사에 주는 리베이트, 결국 면세점 손해로 돌아와
중국인 인바운드 업계 관계자 E 씨는 “요즘 중국에서 오는 여행자들의 연령은 2030이 많고 많은 수가 OTA(Online Travel Agency)를 통해서 예약한다. 개별 여행자가 면세점에서 따이공으로 통계가 잡히는 건 면세점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면서도 “이미 여행사나 제3의 구매대행 업체가 고객 정보를 면세점에 막무가내로 등록해놓은 것들이 많아서 일일이 걸러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다보면 면세점은 리베이트를 주지 않아도 되는 개별 여행자들의 구매에 대해서도 여행사에 리베이트를 주게 된다. E 씨는 “안 나가도 될 돈까지 여행사에 리베이트로 넘기면서 면세점의 마진만 줄어드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올해 상반기에 중국인 관광객이 약 280만 명이 왔는데, 실질적으로 보면 그중 따이공은 아무리 많아도 10~20% 정도로 체감된다. 그런데 면세점에서는 매출의 90%가 따이공에 의한 것이라고 하니 뭔가 이상하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여행사는 고객이 많을수록 면세점에 더 높은 비율의 리베이트를 요구할 수 있기에 개별 여행객의 구매액이 크지 않아도 최대한 많은 수의 여행객을 면세점에 등록하려고 한다. 따이공이 아닌 개별 여행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특정 여행사의 구매대행(따이공) 고객으로 등록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면세점과 중국인 상대 인바운드 여행사 사이에 오가는 리베이트는 공식적으로 ‘송객수수료’로 불린다. 일종의 마케팅 비용으로 치부하는 것. 송객수수료는 매출의 15~40%를 넘나든다. 관세청에 따르면 송객수수료는 2013년에 2966억 원에서 2015년에 5630억 원, 2017년엔 1조 1481억 원, 2018년에는 1조 3181억 원으로 늘었다. 면세점 업계에서는 전체 매출에서 중국인의 매출 비중이 80% 이상, 이 가운데 따이공의 비중이 90% 이상이라고 말한다.
국내 면세시장 규모는 연간 약 20조 원 규모로 커졌지만 ‘수익성은 글쎄’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죽 쒀서 개 준다’는 말까지 한다. 국내에서 중국인을 상대하는 인바운드 여행사도 대부분 중국인 소유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면세 유통시장 질서가 중국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형국”이라고 개탄했다. 그러나 면세점 관계자들은 “그렇다고 당장의 매출에 매달리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는 실정이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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