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방위사업청은 지난 9월 10일 제123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개최, 한국군의 전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여러 개발사업들의 현황과 진행방향을 공개했다.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우리가 무기를 해외에서 사올지, 국내에서 개발할지, 양산이나 구매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 결정하는 대한민국 방위사업의 구체적인 방향을 최종 결정하는 회의로, 사실 이 회의의 결과로 수조 원에서 수십조 원 사업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번에 개최된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지상군 전력, 그 중에서도 기계화부대 전력의 미래에 중요한 결정이 내려진 회의라고 할 수 있다. 상정된 안건 여섯 개 중 네 개가 모두 지상전, 그 중에서도 기계화부대 전투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한국 육군의 차세대 무선통신 시스템인 TICN(Tactical Information Communication Network)과 관련된 두 가지 사업의 양산과 개발계획이다. TICN은 우리 군의 현용 통신망 시스템인 스파이더(SPIDER)를 대체하기 위해 10년 가까이 개발 및 양산이 진행 중인 시스템이다.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일종의 기지국 혹은 서버라고 할 수 있는 무선전송체계, 망관리/교환체계 등을 개발하는 TICN 사업과, TICN 통신망을 야전에서 운용하기 위해 전차, 장갑차, 혹은 병사가 들고 다니는 전투무선체계, 즉 차세대 무전기를 개발하는 TICN-TMMR(Tactical Multi-band Multi-role Radio)로 나눠서 추진되고 있다.
TICN 사업은 TMMR보다 진행이 빨라 이번 방추위에서는 3차 양산계획이 승인되었고, TMMR 사업은 이번 방추위에서 체계개발 기본계획과 최초 양산계획이 의결되었다. 특히 TMMR 무전기 개발 사업의 경우 많은 난관을 뚫고 성사되어 그 의미가 크다. 개발사인 LIG넥스원은 TMMR을 개발하면서 한국 지형에 걸맞은 성능을 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출해야 했다.
게다가 TMMR 무선기의 대용량 통신거리가 5km인데, 8km는 되어야 하므로 사업을 백지화시켜야 한다는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연구결과로 사업 진행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었으나, 다행히 협대역무선방식을 추가해 이를 보완하고 양산하기로 결정해 우리 군의 통신망 현대화는 큰 시름을 덜 수 있게 됐다.
그 다음 사업은 중요하지만 잘 주목받지 못하는, 화학전 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에 통과된 화생방정찰차-II(차량형) 사업은 기계화부대용 화생방정찰차-II(궤도형)에 이어 개발되는 사업으로, K200 장갑차를 개조한 궤도형과 달리 K151 고기동차량 기반으로 개발, 비용이 저렴하고 유지가 간편한 반면 첨단 화생방 경보기와 생물독소분석식별기를 탑재해 핵무기, 화학무기, 생물학 무기에 대한 탐지와 경보가 가능해져 대량살상무기로 인한 지상군 전력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화생방 무기는 그 피해 범위가 재래식 무기에 비해 넓지만, 대응을 빨리 하면 할수록 장병들의 생존 확률이 매우 크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결정된 것은 우리 육군의 주력 전차인 K1E1 성능개량사업이다. K1전차는 1987년부터 실전 배치돼 1000여 대가 양산됐는데, 이를 2030년대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전차의 눈이라 할 수 있는 핵심 목표획득장비인 포수 조준경을 K2 흑표전차와 동등 이상 수준으로 교체, 지금보다 더 먼 거리에서 적을 포착해 격파할 수 있도록 했다. 양압장비와 냉방장비를 추가해 화생방 상황에서도 전차 내부에서 방독면을 쓰지 않고 작전할 수 있고, 여름이면 찜통이 되는 전차 내부온도를 낮춰 전투 효율을 크게 향상시킨다. 보조동력장비(APU)를 장착, 엔진을 켜지 않고도 조용하게 탱크의 조준과 사격이 가능해져 방어작전의 효율성을 더 높일 수 있다.
이런 사업들은 수천 발의 미사일이나 수십 대의 헬리콥터를 도입하는 것과 달리 직접적으로 우리 군의 모습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 장비의 개량과 네트워크 능력을 향상시키고 아군 병력의 생존성을 높이는 것은 우리 육군의 결정적 순간의 성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더군다나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매년 국방예산을 크게 늘리고 있지만 인력부족과 첨단 무기체계 도입의 부담이 날로 늘어나 탱크 한 대, 전투사단 하나 늘리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기존 무기체계를 크게 업그레이드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한국군의 업그레이드 및 지휘통제, 화생방 관련 예산은 그 중요성에 비해서 투자가 좀 인색했던 면이 있다. 기갑장비 개량이나 지휘통제능력 향상이 주로 노후장비의 수명연장이나 신규 장비의 지원에 주안점이 맞춰져 장비나 부대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개량이나 도입보다는 최소비용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경향이 컸기 때문이다.
가령 이번에 결정된 K1E1개량형, 일명 K1E2전차도 현재 발표된 내용보다 성능개량을 할 여지가 더 많이 남아있다. 국내 연구기관과 업체는 K1E1전차에 복합장갑 및 반응장갑 장착으로 방어력 향상, 원격 사격통제체계(RCWS), 자동 장전장비, 파워팩 교체 등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다 K1E1전차의 부족한 화력을 보완하기 위한 차세대 105mm 탄환 및 포 발사 미사일, 그리고 표적획득 드론과 소프트킬(Softkill) 방어장비 탑재를 추진해 앞으로 등장할 K1E2전차가 북한의 개량형 전차 및 주변국 최신전차와의 성능격차를 줄여야 한다.
화생방 정찰차량도 최근 세계 각국에서 연구가 시작되는 로봇과 드론을 활용한 원격 화생방 정찰능력을 확충, 화생방정찰 범위를 확대해야 하고, TICN 및 TMMR 통신망 역시 현재 문제가 제기된 통달범위를 해결하기 위한 통신중계용 장기체공 무인기와 통신중계 열기구 연구를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앞으로 한국군의 지상전력은 1000대가 넘는 전차나 자주포를 새로 만들 수 없다. 전략무기와 병력감소에 대응하면서도 전투력을 보존하기 위해, 기존 전력의 업그레이드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것은 어쩌면 신무기 도입보다 더욱 중요할지 모른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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