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19년 7월, 여름휴가 시즌을 목전에 두고 프랑스의 ‘호스트앤플라이(HostnFly)’가 900만 유로 (120억 원)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했다. 같은 달, 거의 유사한 업종의 ‘비앤비시터(Bnbsitter)’가 6년간의 사업을 접고 폐업을 선언했다. 전달인 6월에는 스위스의 ‘게스트레디(Guestready)’가 530만 유로(71억 원) 투자를 유치했다. 투자자 중에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 축구 클럽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도 포함되어 있다. 게스트레디는 4월에 경쟁사인 프랑스의 ‘비앤비로드(Bnblord)’를 인수한 바 있다.
합종연횡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이 분야는, 간단히 말해 에어비앤비(Airbnb) 등 숙박 공유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집을 단기로 임대하는 호스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흔히 ‘에어비앤비 컨시어지(Airbnb concierge)’라 불린다.
건물이나 아파트의 수위, 관리인 등을 뜻하는 ‘컨시어지(Concierge)’는 원래 프랑스어로 ‘콩시에주’라고 읽는다. 지금은 프랑스어보다 오히려 영어에서 더 활발히 사용되는 듯한데, 본래의 의미 이상으로 호텔의 안내원, 또는 투숙객들이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서비스를 뜻하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여기에 에어비앤비를 합치면 투숙객과 호스트, 그리고 플랫폼 사이의 빈 칸을 채워 공유경제의 편리함·경제성과 호텔의 편안함·안정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새로운 틈새시장 ‘에어비앤비 컨시어지(Airbnb concierge)’가 탄생한다.
2019년 현재 에어비앤비 같은 숙박 공유를 통해 숙소를 찾는 여행객이 전체의 3분의 1을 넘으며, 이 시장은 지속적으로 빠르게 성장해 2021년까지 세계적으로 약 200조 원의 가치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어비앤비에만 1억 5000만 명의 사용자가 등록되어 있으며 이 중 300만 명은 자신의 집을 단기 임대용으로 등록한 사람들이다. 그 자체로 이미 거대한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막상 여행 등으로 단기간 집을 비우는 동안 집을 공유해 여행비 일부라도 충당하고 싶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지 않을까? 일면식도 없는 (그것도 외국인일 가능성이 높은) 제3자에게 과연 내 집을 믿고 맡길 수 있을까? 열쇠 전달이나 침구 준비, 청소 등 자질구레한 일은 누가 하지? 그런데 우리 집을 단기 임대하는 게 합법적인가? 세금 문제는? 바로 이런 문제를 A부터 Z까지 책임지고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에어비앤비 컨시어지들이다.
틈새시장이고 당국의 규제와 지배적인 플랫폼 사업자의 전략에 따라 흔들릴 수 있지만, 프랑스에서만 이미 500여 개의 스타트업이 이 시장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는 관광과 여행의 천국이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데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업체 간의 합종연횡, 즉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한 시장 통합(market consolidation)이 벌써부터 시작되었다. 동시에 더욱 세분화한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업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몽키라키(Monkey Lockey), 키카페(Keycafe), 독일의 누쿠(Nuku) 등은 집 열쇠의 안전한 전달과 회수에 특화한다. 플렛지(Pledg)라는 스타트업은 공유하는 숙소를 다시 쪼개어 공유할 수 있도록 지불 서비스를 제공한다(가령 친구들이 함께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여행할 때 임대료를 나눠서 낼 수 있다). 이들 틈새 사업자들은 에어비앤비 등 플랫폼 사업자뿐만 아니라 컨시어지 업체들과 협력하기도 한다.
호스트앤플라이는 그 중에서도 나름 메이저답게 종합적이면서도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열쇠 수거, 사진 촬영, 건물과 투숙객 관리 등의 서비스 외에 AI 알고리즘을 이용해 최적의 임대료를 자동으로 등록해준다. 또 검색엔진 최적화(Search Engine Optimization: SEO) 등의 기술을 사용해 에어비앤비를 비롯한 공유플랫폼에서 더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되도록 유도한다.
이 스타트업은 프랑스에서 2000여 호스트를 관리하는데 그중 80%가 처음으로 집을 임대하는 사람들이다. 평범한 집주인들이 숙박 공유에 참여하도록 길을 터주고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주는 것이 이들의 사업 모델이다.
호스트앤플라이는 에어비앤비에 직접 등록하는 것보다 자신들을 통하는 것이 평균 30% 이상 높은 수익을 낸다고 말한다. 수수료가 20~30% 정도이니 호스트로서는 크게 이득이 될 것 같지 않지만, 어쨌든 숙박 공유에 필요한 귀찮은 일거리를 모두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이용할 만한 서비스일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화제가 되었는데, 호스트앤플라이의 창업자가 바로 90년대생이다.
91년생인 창업자 캉탱 브라케스 드 위고(Quentin Brackers de Hugo)는 명문 그랑제콜인 에콜 성트랄에서 수리경제학을 전공했다. 2012년 졸업 직전 불과 스물한 살 때 프랑스 최초의 P2P 대출 스타트업인 ‘스피어(spear.fr)’를 공동 창업했다. 스피어는 1년 만에 100만 유로가 넘는 자금을 유치해 화제가 되었지만 캉탱은 공부를 더 하기로 마음먹고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맥킨지 뉴욕 사무소에서 컨설턴트로 3년간 근무하며 재무적 위험 관리(risk management)에서 전문성을 발휘했다. 25살이 되던 2016년에 프랑스로 돌아와 호스트앤플라이를 창업했다.
호스트앤플라이뿐이 아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대부분 젊지만, 에어비앤비 컨시어지 분야의 스타트업들은 20대 중반, 즉 ‘90년생’들이 창업한 경우가 유독 많다. 이유가 뭘까?
아마도 어려서부터 공유 경제와 디지털 플랫폼에 익숙한 환경에서 성장해 거부감이 적고 발상의 전환이 가능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90년생’이 아니라 ‘90학번’인 내 경우, 에어비앤비 등을 통해 유럽의 공유형 숙소들을 많이 활용했지만 이것이 또 다른 사업 기회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창업자들의 연령대가 낮다는 것은, 기존 사업자 및 규제 당국과 끊임없이 ‘투쟁’하는 이 업계의 특징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앞서 말했듯 파리는 에어비앤비에만 6만 5000개의 개인 주택·아파트가 등록되어 있는 전 세계 최대의 숙박 공유 시장이지만, 파리시 당국의 규제 또한 조여오고 있다. 이는 호텔을 비롯한 기존 숙박 업체뿐 아니라 주거 환경 저하와 부동산 가격 인상을 우려하는 시민들의 불만에도 기인한 것이다.
개중에는 규제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는 ‘비앤비시터(Bnbsitter)’ 같은 스타트업도 있다. 하지만 젊은 패기로 무장한, 그리고 딱히 잃을 것 없는 ‘90년생’ 창업자들은 어떻게든 규제와 시장의 빈 틈을 찾아 파고들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90년생들이 기성세대보다 더 진취적인지 안정희구형인지 정답은 없겠으나, 새로운 시장과 가치의 창출이 이들에게 달렸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필자 곽원철은 한국의 ICT 업계에서 12년간 일한 뒤 2009년에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 담당으로 일했다. 2018년 한-프랑스 스타트업 서밋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기재부 주최로 열린 디지털이코노미포럼에서 유럽의 모빌리티 시장을 소개하는 등 한국-프랑스 스타트업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곽원철 슈나이더일렉트릭 글로벌전략디렉터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골목의 전쟁] 흑당과 마라 열풍은 지속될 수 있을까
·
[이영종의 판문점너머] 조국 사태 뒤에 가려진 '북중미 삼국지'
·
[유럽스타트업열전] '전과자도 창업' 스타트업 강국 프랑스의 실험
·
[유럽스타트업열전] 프랑스 테크업계 '떡잎' 키우는 젊은 미국 여성
·
[유럽스타트업열전] 우버, 에어비앤비가 반한 사진 스타트업 '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