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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판문점너머] 조국 사태 뒤에 가려진 '북중미 삼국지'

회동 두 달 지나도록 북미 지지부진 되레 악화…중국 외교부장 방북 결과 주목

2019.09.03(Tue) 23:44:26

[비즈한국] 세상사 말처럼 쉬운 게 없다. 북한과의 협상도 그렇다. 회담 테이블에선 올리브 가지를 물고 온 비둘기처럼 평화와 안정을 약속하지만 정작 합의 이행까지는 멀고 험난한 길이 놓이게 된다.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열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동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의 트위터로 촉발됐다는 두 정상의 의기투합에 즉각 비핵화 논의가 재개되고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관계 개선 등의 현안이 논의될 것처럼 기대를 모았지만 현 시점에서 보면 말잔치에 불과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지경이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2~3주 내 실무협상 재개’를 공언했다. 하지만 현재 두 달을 넘겼는데도 대화를 위한 테이블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거칠고 날선 공방이 평양과 워싱턴을 오가고 있는 형국이다. 협상 전략마련에 골몰해야 할 북한의 외교라인이 그 전면에 선 건 아이러니하다. 

 

북·미 관계가 소강상태를 보이는 상황에서 북한이 베이징과의 밀월을 다시 과시하고 나서면서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 2일 방북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왼쪽)의 메시지가 어떤 내용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사진=AP/연합뉴스


포문은 외무성 대변인이 열었다. 한·미 군사연습 종료 이틀 뒤인 지난 8월 22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과 남조선 당국의 가증(加增)되는 군사적 적대행위는 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대화의 동력을 떨어트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우리(북)로 하여금 물리적인 억제력 강화에 더 큰 관심을 돌리는 것이 현실적인 방도가 아니겠는가에 대해 심고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미 협상보다 핵과 미사일 도발행보 쪽에 무게를 싣겠다며 워싱턴 측을 압박한 셈이다.  

 

북·미 협상을 앞두고 지렛대를 차지하려는 북한의 일상적 ‘담화’ 전술이란 관측에 찬물을 끼얹은 건 김정은 위원장의 대미전략 투톱인 이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제1부상(차관)이다. 이용호 외무상은 지난 8월 23일 자신의 미국 측 상대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미국 외교의 독초”라는 극언을 퍼부었다. 폼페이오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에 응하지 않을 경우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를 유지하고 비핵화가 올바른 길이라고 김 위원장과 북한 지도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언급한 대목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일이 될 만하다가도 폼페이오만 끼어들면 꼬이고 결과물이 날아나곤 한다”는 비난 대목에선 그를 기피 인물로 지목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최선희 제1부상도 지난 8월 31일 담화를 내고 “미국과의 대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 두 사람의 대미 비난 입장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 8월 21일 서울을 방문해 “북한의 카운터 파트로부터 (연락을) 듣는 대로 실무협상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한 뒤 나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미국의 기대와 달리 북한이 워싱턴의 당국자의 이런저런 언급이나 기류 등을 빌미로 접촉을 미루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 것이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약속했던 사안까지 사실상 파기하며 미국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대목에 외교·북한 전문가 그룹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 위원장은 7월 이후 수차례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을 직접 참관하며 도발적 행보를 보였는데, 이는 한국과 미국이 실시한 합동 군사연습에 대한 대응으로 여겨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발사체가 단거리 미사일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대수롭지 않다며 넘기려했다. 지난 8월 10일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친서를 보내 한·미 군사연습 일정이 끝나면 미사일 발사를 멈출 것이며 협상재개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통보한 것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군사연습이 종료된 20일 이후에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이어졌다.  

 

미국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한 측에 대화에 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즉각적인 대응을 자제하면서 대화 국면 관리에 들어간 분위기다. 북·미 관계가 소강상태를 보이는 상황에서 북한이 베이징과의 밀월을 다시 과시하고 나서면서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 2일 방북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메시지가 어떤 내용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평양을 상대로 미국과 중국이 영향력의 확대를 다투고, 일본과 러시아 등 주변국도 한반도에서의 존재감을 키우려는 격변의 상황 속에서 꽉 막힌 남북 대화는 좀체 돌파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무역전쟁으로 불리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북한 및 비핵화 이슈를 관리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대화를 통한 해결’이라는 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민감한 입장차를 드러내 왔다. 우리 외교 당국자는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몇 차례 회동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국 측은 ‘시진핑을 만나고 오면 김정은의 생각이 바뀌어 버린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고 귀띔했다. 북·미 관계나 비핵화, 대북제재 및 개혁·개방 등과 관련한 사안에서 미국의 입장에 귀 기울이던 김정은 위원장과 그의 참모들이 후견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미국 조야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미국과의 중요한 협상이나 회담을 앞두고 중국 측과 공조해왔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김정은 위원장의 첫 중국 방문이 이뤄진 지난해 3월 말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평양을 찾았다. 지난해 5월 초 김정은 위원장의 두 번째 방중 때도 폼페이오가 방북했고, 6월 12일에는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6월 19~20일 김정은 위원장의 3차 방중 뒤에도 폼페이오 장관의 북한 방문이 이어졌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 직전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4차 중국 방문(1월 7~10일)이 성사됐다. 

 

이 때문에 왕이 부장의 평양 방문을 놓고 북한이 미국과의 본격적인 대화 재개를 염두에 두고 사전 조율을 벌이는 차원이란 해석이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3월 방중 때 만찬사를 통해 “중국 동지들과 한 참모부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협동할 것이며 진정한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나갈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미 협상에 있어서는 중국과 철저하게 사전 혹은 사후 협의절차를 거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왕이 부장의 방북 이후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북·미 대화 재개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내달엔 북·중 관계설정 70주년 행사도 잡혀 있어 양국 간 친선을 국제사회에 과시하기에 적기라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란 해석이다.

 

문제는 이런 국면에서 한국 정부의 외교 입지가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일본과의 역사 갈등으로 촉발된 한·일 관계 악화는 경제 보복 차원을 넘어 안보협력의 와해 단계로 접어들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따라 일본은 물론 미국 측과도 불협화음을 내고 있고,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미 동맹의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결정이 미국과 우리 동맹의 안보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8월 22일 미 국무부 논평)이라며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던 미국이 청와대와 한국 정부의 반발에 발언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국면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할 정도다. 여기에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 임명 문제를 둘러싼 국내 이슈도 외교와 대북문제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상황을 간파한 북한은 문재인 정부에 날선 비난을 퍼부으며 한·미 동맹체계에서의 이탈을 압박하고, 비핵화나 대북제재 등의 현안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표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는 19일 9‧19 평양공동선언 1주년 행사를 기획하고 있지만 남북 공동개최는 물 건너 간 상황인 데다 반쪽짜리 행사도 분위기가 제대로 형성되기 어려운 국면이라는 게 정부 당국자의 토로다.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 1주년 행사에 이은 또 한 번의 악몽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불만스러운 점이 있어도 대화의 판을 깨선 안 된다”고 대북 설득 입장을 낸 데 이어 지난 8월 30일에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에서 참석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운운하며 문 대통령을 비난했던 김정은 위원장은 마음을 돌려세울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화는 개설됐지만 북측에서 응하지 않고 있다”는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의 남북 핫라인에 대한 토로(지난 8월 6일 국회 운영위)는 대화채널마저 실종된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웅변한다. 

 

평양을 상대로 미국과 중국이 영향력의 확대를 다투고, 일본과 러시아 등 주변국도 한반도에서의 존재감을 키우려는 격변의 상황 속에서 꽉 막힌 남북 대화는 좀체 돌파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 

 

※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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