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A 씨는 며칠 전 모두투어에서 패키지 여행 상품을 예약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추석연휴가 끝나는 날 출발하는 ‘대만 4일’ 상품이었는데 출발을 보름 남짓 남겨두고 여행사로부터 갑자기 “모객이 되지 않아 상품이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A 씨가 예약했던 시점에 홈페이지에는 이미 14명이 신청한 상태였고 여유는 12명이 남았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최소 출발 인원이 8명이니 A 씨는 안심하고 상품을 예약는데, 모객이 안 됐다며 취소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비즈한국’ 취재 결과 대형 여행사 홈페이지에서 보여주는 모객(예약) 상황은 ‘허수’인 경우가 많았다. 대리점을 통한 홀세일을 주 영업 방법으로 삼는 모두투어나 하나투어의 경우 많은 상품에서 실제 모객 숫자와는 다른 ‘보여주기용’ 예약 숫자를 띄우는 것. 각 대리점과 연결된 인트라넷의 모객 현황과 소비자에게 보이는 홈페이지의 모객 상황을 대조해보면 이를 금방 알 수 있다.
A 씨가 예약했던 대만 상품의 경우도 홈페이지에는 모객 인원이 14명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론 4명밖에 없었다. 결국 최소 출발 인원을 채우지 못한 대만 상품은 취소됐고 A 씨는 여행사로부터 비슷한 가격대와 출발일의 다른 상품을 권유받았다.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대리점을 겸하고 있는 B 대표는 “전국의 모두투어와 하나투어 대리점 대표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양사 모두 언제 시작됐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전부터 이런 방식으로 영업을 해왔다”고 털어놨다.
B 대표에 따르면 모객이 ‘0’인 상황에서는 소비자가 상품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최소 출발 인원에 대한 취소 부담이 있는 데다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여행을 가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품에 처음부터 기본적인 숫자를 ‘깔아놓고’ 모객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모두투어는 “극히 일부 상품에 특정 날짜의 원활한 모객을 위해 예외적으로 허수 모객을 잡아놓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최소 출발 인원 미달로 인한 자연취소를 방지하고 최대한 고객이 원하는 날짜에 상품을 진행하기 위해 집중 모객 하는 방법일 뿐이다. 고객에게 어떠한 피해나 혼란을 드리기 위함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나투어 역시 “모든 상품에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품이 많다보니 효율적 모객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쓰는 방법이다. 홀세일 업체로서 대리점 판매분이 많으니 각각의 대리점에서 일정 부분 예약관리를 조율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특정 날짜나 특정 상품에 모객을 유도하기 위한 영업 방식의 일환으로 ‘허수’의 출발인원을 사용한다는 의미다. 이를 문제 삼자 ‘새삼스러울 것 없다’는 반응이다. 특정 여행사가 아닌 여행업계 전반에서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오랫동안 이어져온 일이라는 것이다.
여행사 직원 C 씨는 “약관을 보면 고객이 예약을 취소할 경우엔 출발 1개월부터 위약금이 발생하지만, 여행사에서 모객이 안 돼 취소할 경우엔 1주일 전에만 통보를 해도 위약금이 발생하지 않는다. 여행사 직원이지만 너무 여행사 위주의 약관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국외여행 표준약관 제9조(최저행사인원 미 충족 시 계약해제) 1항에 따르면, ‘여행사는 최저행사인원이 충족되지 아니하여 여행계약을 해제하는 경우 여행출발 7일 전까지 여행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2항을 보면 여행 개시 7일 전까지는 계약금만 환급해주면 된다. 이 약관에 따르면 여행사는 여행자에게 여행출발 1일 전까지 통지 시 여행요금의 30%를 배상하고 여행출발 당일 통지 시에도 여행요금의 50%만 배상하면 된다고 되어 있다.
이는 단체로 출발해야 하는 패키지 여행사의 모객 특성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고객들이 취소할 경우를 대비해 만들어진 약관이지만, 오랫동안 여행사 입장에서 악용되어 ‘여행사의 꼼수’를 도와주는 약관이 됐다. 여행사는 이 약관을 이용해 출발일 7일 이내라면 언제든 소비자에게 ‘최저행사인원 미충족’을 이유로 들어 정당하게 여행 취소를 통보할 수 있다. 그것이 정말 최저행사인원 미충족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소비자로선 진실을 알 길이 없다. 여행사의 임의로 특정 상품에 충분히 집중 모객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소비자는 여행 상품을 예약할 때 여행사로부터 최소 출발 인원이 모이지 않으면 상품이 취소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기 때문에 대형 여행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모이니 모객률이 높아 취소율이 적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패키지 여행사 관계자 D 씨는 “대형 여행사는 고객도 많지만 상품의 개수와 출발일자도 많아 모객이 여러 상품에 흩어진다. 처음엔 상품마다 모객 인원을 적당히 허수로 입력해두었다가 예약 추이를 보고 고객들에게 전화를 돌려 특정 상품으로 모객을 집중한다”고 귀띔했다.
소비자만 모르고 여행사들은 다 아는 ‘예약률 허수’, 표준약관이 도와주는 ‘여행사의 꼼수’에 소비자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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