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음악과 디저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건조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입가심하기에 적당하다는 것. ‘가토 드 뮤지끄(gâteau de musique)’는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뮤지션과 디저트를 매칭해 소개한다.
유행은 돌고 돈다. 나의 취향 또한 돌고 돈다. 아름다운 멜로디를 찾아 발라드와 알앤비(R&B)를 듣다 강렬한 일렉기타의 소리를 쫓다 디스코에 몸을 싣고 춤을 췄다. 신시사이저(전기신호를 사용하는 악기)가 듬뿍 들어간 전자음악을 들었다. 통기타와 목소리가 나란히 흐르는 포크를 듣고 싶은 날이 올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전자음악, 그리고 유행하는 모든 요소를 적절하게 버무린 팝을 듣던 어느 날 문득 여름이 저물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좋았지만 적적했다. 문득 포크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가 울리는 통기타 소리와 공기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려오는 목소리.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억해뒀던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나중에 혹시나 포크가 듣고 싶어진다면 이 사람의 음악을 듣겠어.
도마 – 이유도 없이 나는 섬으로 가네
어느 여름 아무런 이유 없이 홀로 위도로 떠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자전거를 타고 위도를 한 바퀴 돌았지. 목걸이가 떨어져 깨졌던가. 난 뭐라도 해산물이 나올 줄 알았는데 민박집 주인 할머니께선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여주셨어. 도마의 목소리와 기타 연주 사이에 드러누워 기억과 추억을 뒤적거린다. 굳이 외로워 보겠다고 새우깡과 소주를 샀는데 외롭기 전에 취해서 자버렸지. 문자를 기다렸는데 오지 않았고.
어렸을 때 아이스크림의 기본 설정은 항상 바닐라였다. 퍼먹는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하나씩 벗겨 먹는 아이스크림도, 콘도, 컵도. 추가 옵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차를 깡통 차라고 부르는 것처럼 내게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깡통 아이스크림이었다. 아주 가끔 아이스크림을 먹을 뿐인데 깡통 기분을 느끼기 싫었다. 초콜릿 맛, 과일 맛을 골라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근사한 바닐라 크림을 먹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믿음직스러운 양과자점을 선택해야 한다.
도마는 ‘주방에 있는 나무 도마’ 할 때 바로 그 도마다. 로고도 손잡이가 달린 도마 모양이다. 언젠가 팬에게 도마를 선물 받았다는 사진을 보고 빙긋 웃었다. 도마는 곡을 만들고 노래 부르고 기타를 치는 도마, 그리고 왼손으로 기타를 치는 거누, 이렇게 두 명이다.
도마 – 초록빛 바다
르 페셰 미뇽의 바닐라 타르트를 유심히 살펴본다. 굳이 매끈하거나 광택이 나게 표면을 처리하지 않은 바닐라 크림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이 소중한 크림에 그 어떤 것도 구태여 더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하고 맘대로 추측한다. 한 입 먹고 상상한다. 아, 내가 이처럼 근사한 바닐라 크림 하나만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그렇다면 참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되겠지.
도마 – 소녀와 화분
도마의 노래를 들으며 잊었던 음악 감상법을 떠올린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가사를 한 올 한 올 짚는다. 슬픔을 집에 가두지 말고 풀자고 했다. 다시 집에 돌아온 슬픔을 다시 내보낼 궁리를 하며 거누의 기타 소리에 광대뼈를 갖다 댄다. 이 노래의 박자는 흥겨운데 슬픔이 자꾸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네.
도마는 여행을 좋아하고 거누는 기타를 좋아한다. 1집이 나온 지 이제 겨우 2년이 지났지만 2집은 어디로 여행을 갈지 어떤 기타 소리가 날지 기다려진다. 출처가 수상한 콧수염을 달고 베이스를 연주하는 대표님은 알고 있을까? 그 전에 내가 바닐라 크림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필자 이덕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두 번의 창업, 자동차 영업을 거쳐 대본을 쓰며 공연을 만들다 지금은 케이크를 먹고 공연을 보고 춤을 추는 일관된 커리어를 유지하는 중. 뭐 하는 분이냐는 질문에 10년째 답을 못하고 있다.
이덕 작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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