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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먹방' 할 때 생기는 일

별 형성 방해한다던 기존 예측과 달리 별 형성 도와주는 것 관측돼

2019.08.19(Mon) 11:13:11

[비즈한국] 나는 커피를 아주 많이 마시는 편이다. 아침 출근길에 차에서 한 잔, 일하면서 연구실에서도 몇 잔씩 마시고, 심지어 자기 직전에도 그냥 물 마시듯 커피를 마시고 잠에 든다. 카페인의 각성 효과 따위 느껴본 적 없다. 가끔 친구들은 어쩌면 내 피가 커피처럼 갈색으로 물들지 않았을까 하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건강 기사를 보다보면 더 혼란스러워진다. 어떤 기사에서 인용한 연구는 커피가 특정 질병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또 다른 기사에서 인용한 연구는 커피가 조기 사망률을 높인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한다. 와인, 초콜릿 같은 다른 기호 식품도 비슷하다. 결국 과하지 않게 적당히 먹는 게 가장 좋다는 진부한 교과서적인 결론에 다다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정확한 답을 원한다. 그래서 커피는 독인가? 약인가? 

 

# 초거대질량 블랙홀은 독일까 약일까? 

 

커피의 효과에 대해 주장이 엇갈리는 것처럼,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도 오랫동안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은하 중심에 살고 있는 거대 괴수 ‘초거대질량 블랙홀(SMBH, Supermassive blackhole)’이 과연 새로운 별들의 탄생을 도와주는지 아니면 새로운 별이 더 이상 태어나지 못하게 방해하는지의 문제다. 

 

과연 은하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은 은하의 별 형성을 도와주는 각성제인가 아니면 은하의 별 형성을 감소시키는 진정제인가?

 

이처럼 은하 중심에 숨은 채 엄청난 먹방을 찍으면서 강렬한 밝은 빛을 발산하는 괴물들이 살고 있는 은하 중심부 영역을 활동성 은하핵(AGN, Active Galactic Nuclei)라고 한다. 이미지=NASA/JPL-Caltech

 

우리 은하를 비롯해 우주에 있는 거의 모든 규모 있는 은하들은 중심에 아주 거대한 초거대질량 블랙홀을 품고 있다. 초거대질량 블랙홀들은 은하 중심에서 강한 중력으로 주변의 가스와 별을 모두 사로잡은 채 은하의 형태와 별들의 움직임 등 많은 부분에 영향을 준다. 천문학자들은 은하와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보여주는 다양하고 놀라운 물리적 관계를 통해 은하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은하 전체의 진화 과정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은하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은 주변의 막대한 양의 가스 물질을 아주 빠른 속도로 빨아들이며 엄청난 폭풍 먹방을 벌인다. 블랙홀로 빠르게 끌려 들어가는 많은 물질들은 빠른 속도로 뜨겁게 달궈진 채 블랙홀 주변을 돌게 된다. 블랙홀 주변에 형성된 이 물질들의 강착 원반(accretion disk)은 아주 높은 온도로 달궈져 있다. 그래서 아주 에너지가 높은 엑스선이나 감마선 영역에서도 밝게 빛난다. 

 

꽤 오랫동안 이런 활동성 은하핵은 주로 은하가 새로운 별을 만드는 것을 방해하는 진정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초거대질량 블랙홀은 엄청난 먹방을 찍으면서 자신의 회전축 방향으로 수직으로 뻗어있는 자기장을 따라 많은 물질을 함께 토해낸다. 이런 활동성 은하핵의 엄청난 물질 분출(AGN outflows)은 초거대질량 블랙홀 주변뿐 아니라 은하 외곽에 있는 가스 물질까지 불려 나가게 할 수 있다. 

 

활동성 은하핵들의 이런 강렬한 물질 분출에 의해 불려 나간 가스 물질들은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은하의 중력에 미처 붙잡히지 못한 채 아예 은하 바깥으로 날아가 버린다. 결국 은하는 중심에 있는 초거대질량 블랙홀 때문에 자신이 원래 품고 있던 새로운 별을 만드는 가스 재료들을 빠르게 소진한다. 

 

지난 4월 공개된 거대 타원 은하 M87의 중심에 있는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실제 모습. 거의 모든 은하는 중심에 이런 괴물을 품고 있다. 사진=The Event Horizon Telescope


또 이런 괴물의 격렬한 먹방은 은하 안에 있는 가스 성간 물질(ISM, Interstellar medium) 자체를 뜨겁게 달구면서 서로 뭉치고 반죽되기 어렵게 만든다. 가스 성간 물질의 온도가 식어야 밀도가 올라가고 응어리지면서 아기 별이 되는 씨앗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가스 물질 자체가 뜨겁게 달궈지면 아무리 가스 재료가 많아도 쓸모없다. 

 

결국 새로운 아기 별을 만들 수 있는 유효한 가스 물질이 거의 사라지고 나면 은하는 더 이상 새로운 별을 만들지 못한다. 그렇게 은하는 더욱 빠르게 생명력을 잃을 수 있다. 그동안 은하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진화를 구현하려고 시도했던 많은 시뮬레이션 연구들은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이렇게 은하의 별 형성을 억제하고 방해하는 방향의 ‘음의 피드백(negative feedback)’을 일으키는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실제 우주에 존재하는 은하들을 보면 마냥 그렇지 않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은하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은하의 별 형성을 촉진하는 정반대의 ‘양의 피드백(positive feedback)’을 일으키기도 한다.[1]

 

최근 천문학자들은 지구에서 약 1억 2000만 광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막대나선 은하 NGC 5728에서 은하의 별 형성을 촉진하는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모습을 확인했다. 천문학자들은 은하 NGC 5728에서 특히 새로운 별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인 수소 분자를 추적할 수 있는 일산화탄소(CO J=2-1) 분자의 신호를 추적했다. 이를 통해 현재 이 은하가 왕성하고 효율적으로 새로운 별을 만들어낼 능력이 얼마나 있는지, 은하의 (출산률이 아닌) 출성률(SFR, Star formation rate)을 추정할 수 있다. 

 

은하 NGC 5728에서 관측한 분자 가스 구름들의 분포 지도. 은하의 나선팔과 중심의 고리 모양 구조를 볼 수 있다. 특히 은하 중심에 있는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양 방향(오른쪽 위와 왼쪽 아래)으로 뻗어 내뿜고 있는 물질 분출과 만나는 고리 영역(A)에서 뚜렷하게 더 높은 별 형성 양상을 볼 수 있다. 출처=https://bit.ly/31O3VEw

 

이번 관측을 통해 천문학자들은 은하 NGC 5728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세부 구조를 확인했다. 특히 은하 중심의 활동성 은하핵을 둘러싸고 있는 지름 약 6000광년 크기의 거대한 가스 고리 구조를 확인했다. 이 은하의 중심에 있는 초거대질량 블랙홀은 또렷하게 양 방향으로 물질 분출을 토해내고 있다. 운 좋게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물질을 토해내는 양 방향의 용트림 중 하나는 은하 중심부를 둥글게 에워싼 가스 고리에 부딪힌다. 

 

덕분에 천문학자들은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내뱉은 용트림을 바로 맞고 있는 가스 고리 부분(위 그림에서 A 영역)과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용트림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영역(위 그림에서 A를 제외한 B, C, D 영역)의 양상을 비교해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별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더 명확하게 확인했다. 

 

흥미롭게도 은하 NGC 5728의 경우,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에서 분출된 용트림에 바로 부딪히는 가스 고리 영역에서 훨씬 더 확연하게 효율적으로 새로운 별이 태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일한 가스 재료를 두고서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새로운 별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의미하는 별 형성 효율(SFE, Star formation efficiency)을 비교했더니,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효과를 고스란히 받고 있는 A 영역의 별 형성 효율이 은하의 다른 영역보다 약 3~5배 이상 더 높게 나타났다.[2]

 

은하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폭풍 먹방을 찍으면서 주변에 막강한 용트림과 방귀를 뀌듯 강한 물질 분출도 함께 일어난다. 이때 강력한 물질 분출에 의해 블랙홀 주변의 성간 가스 물질이 밀려 나가면서 오히려 더 강하게 밀착되고 엉겨 붙을 수 있다. 마치 길 위에 떨어진 낙엽을 빗자루로 쓸어서 길 구석에 잔뜩 모아놓는 것과 같다. 이렇게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용트림에 밀려 나가 외곽에 잔뜩 쌓인 가스 물질은 더 밀도가 높아지고 더 자주 반죽되면서 훨씬 더 효율적으로 새로운 별을 만드는 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 

 

어떤 은하에서는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더 이상 새로운 별을 만들지 못하게 별 형성을 억제하는 쪽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또 다른 은하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더 왕성하게 새로운 별이 태어나도록 별 형성을 촉진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처럼 관측되기도 한다. 마치 건강에 독안지 약인지 헷갈리는 커피처럼, 은하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은하 전체의 삶에 미치는 영향도 여전히 천문학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 문제는 변덕스러운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성격 탓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효과를 명확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은 초거대질량 블랙홀 자체가 워낙 변덕스럽기 때문이다. 다른 평범한 은하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은하에도 중심에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있다. 태양 질량의 약 460만 배 정도로 무거운 괴물이다. 지구의 밤하늘에서 보면 우리 은하의 중심부는 여름 밤하늘의 궁수자리 쪽을 향한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 중심에 살고 있는 이 거대한 괴물을 궁수자리 A*(Sgr A*, Sagittarius A*) 블랙홀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런 괴물들이 항상 밝게 빛을 내며 요란을 떨지는 않는다. 사실 지난 20년간 꾸준히 관측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A* 초거대질량 블랙홀은 상대적으로 꽤 잠잠한 편이다. 진짜 무서운 모습을 숨긴 채 잠을 자고 있는 맹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난 5월 13일 천문학자들은 하와이에 있는 켁 망원경(Keck Telescope)을 통해 우리 은하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갑자기 엄청난 밝기로 반짝하고 밝아졌다가 빠르게 어두워지는 이상한 현상을 목격했다. 당시 우리 은하 중심의 궁수자리 A*는 두 시간여 만에 평소보다 무려 75배나 더 밝은 밝기로 치솟았다가 다시 빠르게 평소 밝기로 돌아왔다. 대체 우리 은하 중심의 괴물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동안 비교적 잠잠하게 잘 자고 있던 우리 은하 중심의 맹수의 코털을 누가 건드린 것일까?[3] 

 

약 세 시간에 걸쳐 관측한 궁수자리 A* 초거대질량 블랙홀(빨간 화살표)의 밝기 변화. 당시 천문학자들은 밝기가 너무 밝게 관측되어 해당 천체가 초거대질량 블랙홀 주변에 있는 다른 별 S0-17과 S0-2(하얀 화살표)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사진=Do et al. https://arxiv.org/pdf/1908.01777.pdf

 

2019년 5월 관측했던 우리 은하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밝기가 급격하게 밝아지는 모습이다. 적외선 영역에서는 적어도 태양이 방출하는 적외선의 2000배 이상으로 밝아졌다. 이 영상은 실제 시간으로는 약 3.5시간에 걸친 과정이 담겨있다. 한 번 밝기가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진 후 두 번 정도 더 밝기가 변화했다. 영상=Do et al. https://arxiv.org/pdf/1908.01777.pdf

 

현재 천문학자들은 궁수자리 A* 주변에 바짝 붙어서 돌고 있는 별이나 가스 구름을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코털을 건드린 유력한 범인으로 추정한다. 우리 은하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 주변에는 강한 중력에 붙잡혀 아주 크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아주 빠르게 돌고 있는 별들이 있다. 초거대질량 블랙홀에 붙잡혀 영원한 고통을 받고 있는 이 별들을 S 별들(S stars)이라고 부른다. 

 

이 중에서 SO-2 별은 매 16년마다 한 번씩 빠른 속도로 궁수자리 A* 초거대질량 블랙홀 곁을 돌고 있다. 작년 2018년에 가장 마지막으로 초거대질량 블랙홀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다. 당시 초거대질량 블랙홀에서 불과 17광시 거리까지 접근했다. 이처럼 초거대질량 블랙홀 바로 곁에서 아슬아슬한 초고난이도 곡예비행을 하면서 별의 물질 상당 부분이 야금야금 초거대질량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궁수자리 A* 초거대질량 블랙홀은 특히 별들이 자기 곁에 가장 가까이 다가올 때 폭발적으로 별들을 빨아들이는데, 바로 이때 많은 양의 물질이 초거대질량 블랙홀로 흡수되면서 잠깐 동안 밝기가 갑자기 밝아질 수 있다. 

 

우리 은하 중심 초거대질량 블랙홀 곁을 돌고 있는 S 별들의 궤도. 오른쪽 아래에는 궤도의 스케일을 비교하기 위해 태양계 외곽 천체들(세드나, 에리스, 명왕성, 해왕성)의 궤도를 함께 그려놓았다. 이미지=위키미디어코먼스/Cmglee​/CC BY-SA 3.0

 

하지만 문제는 SO-2 별은 그렇게 크기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초거대질량 블랙홀 곁에 바짝 붙어서 지나가더라도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왕성한 식욕을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먹성에 비해서는 턱 없이 작은 너무 가벼운, 그래서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법한 먹잇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이런 초거대질량 블랙홀 바로 주변의 별이 아니라 더 거대한 가스 구름에 더 많은 가능성을 두고 있다. 지난 2002년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 중심의 궁수자리 A* 초거대질량 블랙홀 곁에서 강한 중력에 붙잡힌 채 빠르게 돌아다니는 거대한 수소 가스 구름들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 구름들은 무려 1만 도에 가까운 아주 높은 온도로 달궈져 있다. 그 중 구름 G2의 경우, 그 궤도를 분석해 2013년이 되면 초거대질량 블랙홀에 너무 가까이 접근한 나머지 가스 구름이 쭉 으스러지고 깨지면서 파괴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리고 이 가스 구름이 초거대질량 블랙홀 주변 강착 원반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아주 밝은 섬광이 나타날 것이라고 추측했다. 

 

우리 은하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 주변 영역을 크게 확대해서 관측한 영상이다. 적외선 관측을 통해 초거대질량 블랙홀 주변에서 움직이는 가스 구름의 분포를 볼 수 있다. 2004년에서 2011년까지 7년 동안 가스 구름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영상=ESO/MPE/Nick Risinger (skysurvey.org)/VISTA/J. Emerson/Digitized Sky Survey 2

 

우리 은하 중심의 궁수자리 A* 초거대질량 블랙홀 주변에서 궤도를 도는 가스 구름 G2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시뮬레이션 영상.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강한 중력에 의해 서서히 가스 구름이 길게 늘어지고 흐트러진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조만간 가스 구름의 물질이 초거대질량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면서 밝은 엑스선 신호가 검출될 것이라 추측했다. 영상=ESO/MPE/M.Schartmann

 

하지만 이런 예상을 비웃듯이 G2 가스 구름은 2013년에 파괴되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아 궤도를 돌고 있다. 2013년에 궁수자리 A* 초거대질량 블랙홀 주변에서는 어떤 뚜렷한 밝기 변화도 관측되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 살아남았던 G2 가스 구름이 결국 초거대질량 블랙홀에 깨지면서 이번 밝은 섬광을 만들지 않았을까 추정할 수 있다.[4]

 

물론 또 다시 예상을 깨고 G2 가스 구름은 온전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 질긴 생명력을 과시할지도 모른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이번에 새롭게 관측된 궁수자리 A*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기록적인 밝은 섬광의 원인은 더욱 더 오리무중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2013년 중반 우리 은하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 주변을 움직이던 가스 구름의 모습을 구현한 시뮬레이션. 당시 천문학자들은 초거대 망원경(VLT) 관측을 통해 이 구름이 초거대질량 블랙홀 곁을 시속 1000만 km가 넘는 빠른 속도로 맴돌면서 으스러질 것이라 추정했다. 이미지=ESO/S. Gillessen/MPE/Marc Schartmann

 

우리 은하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보여주는 이런 혼란스러운 모습처럼, 많은 은하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은 굉장히 역동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활동 양상이 변화한다. 무려 수 시간 안에 밝기가 수십 배 이상 변하기도 하고, 아주 짧은 순간에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토해내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잠잠해진다. 초거대질량 블랙홀은 덩치는 아주 거대하지만 덩치에 맞지 않게 굉장히 촐싹대는 녀석들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이런 괴물들의 활동성과 은하 전체에 끼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 우주도 사람 사는 세상처럼 ‘갤바갤’ 

 

거의 모든 은하는 중심에 이 변덕스러운 괴물을 품고 있다. 그리고 분명 이 괴물들의 삶은 은하 전체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여전히 이 괴물들이 정확히 어떻게 은하들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제 천문학자들은 질문을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다.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은하의 별 형성에 도움이 되는가 방해하는가가 아닌, 대체 무엇이 초거대질량 블랙홀에 의한 효과의 양상을 결정하는가로 말이다. 

 

우주도 결국 사람 사는 세상만큼이나 제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천문학자들은 하나의 통일된 간단한 규칙에 따라 깔끔하게 구분되고 돌아가기를 바랐지만 은하들의 삶도 ‘갤바갤(galaxy-by-galaxy)’이다. 

 

우주를 더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주에 있는 은하들, 초거대질량 블랙홀들을 하나로 몰아서 대하고 단순하게 규범을 짓던 기존의 관점을 버려야 한다. 은하 하나, 초거대질량 블랙홀 하나마다 다 나름의 특징이 있고 사연이 있다. 

 

이제 우리는 이 우주,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개별 구성원들의 특징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신경 쓸 수 있는 더 큰 세심함을 갖춰야 할 것이다. 

 

[1]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427/4/2998/972144

[2] https://ui.adsabs.harvard.edu/abs/2019arXiv190700982S/abstract

[3] https://ui.adsabs.harvard.edu/abs/2019arXiv190801777D/abstract

[4] https://www.eso.org/public/news/eso1332/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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