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사케냐 청주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배제 결정 당일인 2일 서울 여의도 한 일식당에서 오찬 중 마신 술을 두고 여야공방이 이어졌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식재료로 운영하는 일식당이었고, 이해찬 대표가 반주로 마신 것은 일본 술 ‘사케’가 아니라 국산 청주 ‘백화수복’이었다”고 해명했다.
전통주 업계는 이번 사태와 일본 주류 불매운동을 어떻게 바라볼까. ‘비즈한국’은 지난 10일 한국가양주연구소와 한국술산업연구소를 운영하는 류인수 소장을 만났다. 한국가양주연구소는 집에서 빚는 술(가양주) 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2009년 만들어진 농림수산식품부 지정 전통주교육훈련기관이다. 지금까지 1만여 명이 이곳에서 전통주 만드는 법을 익혔다. 한국술산업연구소는 한국 술산업 자체를 연구해 정부에 정책을 제안하는 농림부 산하 사단법인이다. 인터뷰는 류 소장이 전통주 제조법을 가르치는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연구소에서 2시간 동안 진행했다. 다음은 류인수 소장과의 일문일답.
Q. 전통적인 관점에서 막걸리, 청주, 소주의 차이는 무엇인가.
A. 곡물(주로 쌀)에 물과 누룩을 넣어 발효시키면 막걸리, 이를 여과해서 맑게 만들면 청주, 이 둘 중 하나를 증류해 모은 것을 소주라고 한다.
Q. 이해찬 대표가 마신 술은 청주인가, 사케인가.
A. 사실 우리나라에서 청주와 사케는 같은 뜻으로 쓰인다. (이해찬 대표가 마신 술이) ‘사케였나, 청주였나’를 두고 싸우는 게 처음엔 웃겼다. 일본의 사케는 우리나라에서 주세법상 ‘청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롯데주류의 ‘청하’, ‘백화수복’, 금복주의 ‘경주법주’ 등은 전통적인 관점에서 사케의 제조법으로 만들어졌지만 법적으로 ‘청주’에 속한다. 다만 우리 조상이 전통적으로 만들어온 청주는 지금 주세법상 ‘약주’로 분류돼 청주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 우리 전통 방식으로 청주를 만드는 우리 술 업계는 ‘청주’라는 단어 대신 ‘맑은술’ 등을 상표나 홍보에 사용하고 있다. 사케는 청주라고 부를 수 있지만, 우리 전통주 청주는 청주라고 부를 수 없는 ‘홍길동’ 같은 처지다.
류 소장은 ‘사케 논란’의 원인을 주세법에서 찾았다. 주세법상 주류는 알코올 함량 1도 이상의 음료나 주정을 말한다. 크게 주정, 발효주류, 증류주류, 기타주류로 나뉘는데, 이 중 청주는 약주, 탁주, 맥주, 과실주와 함께 발효주에 속한다. 주세법은 전체 쌀 중량 대비 누룩 사용량에 따라 1% 미만은 ‘청주’로, 1% 이상은 ‘약주’로 분류한다. 전통적인 청주를 만들 때 쌀 중량 대비 누룩 사용량은 최소 3%이상이어야 한다는 게 류 소장 견해다.
Q. 일본의 사케와 우리나라 청주는 제조법이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 사케는 이 기준에 부합한가.
A. 사케에 사용되는 코지(koji·입국)는 누룩이지만 우리나라 주세법상 누룩은 한국의 전통누룩을 의미한다. 누룩 1% 이상, 미만의 기준은 입국이 아닌 전통누룩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현실상 입국으로 술을 빚어야 ‘청주’ 명칭을 붙일 수 있다. 입국을 누룩으로 본다면 일본의 사케도 우리나라에서는 주세법상 ‘약주’가 된다. 전통누룩의 당화력(쌀을 당화시키는 힘, sp)은 300sp로 입국 60sp보다 강해 입국으로 사케를 만들면 전통누룩보다 더 많은 입국이 사용된다.
해양 국가인 일본은 습한 탓에 썩을 수 있는 떡누룩(병곡)보다 흩임누룩(산곡, 입국)에 특정균(황국균 등)을 주입하는 형태로 누룩을 발전시켰다. 반면 우리나라는 밀이나 쌀 위주의 병곡을 발효시켜 다양한 야생 효모를 배양했다. 우리 술이 일본에 비해 다양한 풍미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Q. 주세법에 우리 술의 정체성을 해치는 용어가 또 있나.
A. 소주다. 2013년 정부는 규제완화라는 명목으로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로 분류됐던 기존 표기방식을 모두 소주로 통일했다. 전통소주는 곡물을 발효한 원액을 증류해 만드는데, 이를 주정에 물을 탄 소주와 동일시한 것은 우리 증류주의 정체성을 낮춘 사례다.
Q. 일본과 비교했을 때 우리 술산업 발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A. 우리 술의 종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규정한 뒤, 어떤 술이 좋은 술인지 규정해야 한다. 일본은 쌀의 도정 정도, 알콜 첨가 여부에 따라 술의 등급을 정하는 ‘특정명칭제도’를 운용한다. 일본 주류 시장의 30%가 이를 따른다. 내국인은 물론 일본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은 ‘쥰마이 다이긴죠’와 같은 특정 명칭만을 보고도 좋은 술을 구분할 수 있다. 우리 술도 ‘지역 원료를 사용했는지’, ‘감미료를 첨가했는지’ 등에 따라 등급을 매기면 고급화가 가능해 질 것이다. 우리 술 제조를 물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할 기관도 필요하다. 일본은 자국 술 산업만을 연구하는 국가기관(주류총합연구소)이 있다. 이곳에서는 양조 전용 쌀과 효모 등을 연구·개량해 보급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식품연구원이나 경기도 농업기술원 등에서 양조 전용 효모를 보급하고 있지만 일본과 비교해 부족한 실정이다. 이렇게 쌀과 전통누룩, 장비 등을 분석하는 국책 술 연구기관이 필요하다.
Q. 아직 등급 체계가 마련되지 않았다. 소비자가 품질이 좋은 우리 술을 찾는 방법이 있다면.
A. 라벨을 보면 술의 가치를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원료가 국내산인지 수입산인지, 국내산 중에서 특히 특정 지역(예컨대 경기미, 가평 잣 등)을 표기했는지 살펴야 한다. 이후 감미료가 들어갔는지를 살피면 일차적으로 걸러진다. 만약 막걸리 등 탁주나 전통 청주를 포함한 약주(주세법상)를 구매할 때에는 살균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유산균 등 유익균이 살아있는 ‘생 막걸리’, ‘생약주’라고 하는 것은 살균하지 않은 비살균 제품이다. 비살균 약주는 신선한 맛을 내는 대신 유통기한이 짧고, 살균 약주는 익은 맛을 내는 대신 유통기한이 길다.
Q.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이 주류시장에도 번지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A. 아직 통계에 잡힌 바는 없다. 최근 전통주 생산 업체들이 일본식 선술집에서 전통 청주에 대한 문의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반길 만하다. 불매운동을 계기로 우리술 산업이 가진 문제점을 대중들이 알고 개선돼 갔으면 좋겠다.
차형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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