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음악과 디저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건조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입가심하기에 적당하다는 것. ‘가토 드 뮤지끄(gâteau de musique)’는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뮤지션과 디저트를 매칭해 소개한다.
1997년 겨울. 중학교 졸업과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덜컥 주어진, 빌린 만화책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던 자유시간. 공중파 TV가 멈춰있던 평일 오후. 전주 케이블 방송국에서는 몇 편의 뮤직비디오를 반복해서 틀어주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어제와 같은 오늘. 지겹지 않았다. 볼 때마다가 새로웠던 그 노래, 그 얼굴.
S.E.S. – I’m Your Girl
며칠 전 치스비치가 데뷔했다. 뭔가 강력한 여자 음악가의 등장인가. 강력한 음악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으로 마우스를 움직였다. 거친 목소리와 메시지를 받아들일 준비였다. 하지만 앨범 재킷을 보는 순간 나의 마음속은 뽀이얀 솜사탕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지금 누가 타임머신에 시동 거는 소리를 내었는가.
저 팔토시, 저 헤어스타일, 저 머리 방울, 저 만두 머리 그리고 뽀시시한 색감까지. 나는 이미 코를 날려버리기로 유명한 90년대 후반의 어느 스티커사진 기계 안에 있다. 사진을 찍고 조금 기다려. 사진이 나올 거야. 이걸 가위로 오려. 한 장은 너, 한 장은 나. 휴대폰 뒤에 붙이기로 해. 또 다른 한 장은 배터리를 빼고 그 안에 붙이기로 해.
치스비치 – SUMMER LOVE…
90년대 후반에 와버렸기 때문에 이 시절의 케이크라면 파란색 간판의 빵집에서 파는 생크림 케이크가 마땅하지만 나의 미각이 거절했다. 이 뽀얗고 뽀얗고 하얗고 하얀 분위기에 걸맞은 가토를 찾으러 르 페셰 미뇽에 갔다.
최근 클럽에서 한국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보석 같은 디제이, 타이거디스코가 틀어주는 S.E.S.의 노래를 들으며 대체 여기엔 어떤 춤을 춰야 하나 고민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냉큼 ‘SUMMER LOVE…’를 타이거디스코에게 보내주자 그는 두 개의 노래를 언급했다.
S.E.S. – Oh My Love
핑클 – Blue Rain
르 페셰 미뇽의 코코 나폴리탄은 네 명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치스비치처럼 코코넛, 라임, 바닐라, 화이트초콜릿이 조화를 이루는 상큼하고 하얀 가토다. 가장 밑에 폭신한 코코넛 다쿠아즈, 그리고 그 위에 부드럽고 상큼한 라임젤리, 향긋하고 가벼운 코코넛 무스, 라임 제스트가 더해진 바닐라젤리와 더불어 가토의 옆구리를 보일 듯 말 듯 감싸고 있는 화이트 초콜릿까지 빠짐없이 한 포크에 잘라 먹으면 상큼하고 가볍고 시원하게 이번 여름을 보내길 기원하는 르 페셰 미뇽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SUMMER LOVE…’와 코코 나폴리탄과 함께라면 이 무더운 여름이 좋은 계절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치스비치 – SUMMER LOVE… (쿨룩 LIVE / 박원의 키스 더 라디오)
이 박자, 이 드럼 소리, 이 신시사이저 소리, 바람 앞에 포슬포슬 날리는 듯한 창법, 손 끝으로 등을 슬쩍 치고 지나가는 듯한 코러스, 중간에 댄스 브레이크가 들어간 구조, 어디 하나 어두운 구석 없이 밝고 긍정적인 가사 모두가 그 시절 듣고 느끼던 감성 그대로다. 심지어 음원사이트 노래 소개 끄트머리에 적혀있는 ‘Thanks to’에는 그 시절 카세트 테이프 속 구비구비 접혀있는 앨범 재킷 끝에 적혔던 바로 그 ‘Thanks to’ 문구의 따스함까지 그대로 담겨있다.
치스비치의 멤버 치즈, 스텔라 장, 러비, 문치는 모두 각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기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음악가들이다. 소속사도, 각자 음악 스타일도 다른 이들은 ‘우리 걸그룹 하면 재밌겠다’는 러비의 제안과 신속한 섭외로 뭉치게 되었다. 문치의 집에 모여 앉아 함께 가사를 만들고, 멜로디를 만들었다.
치즈(CHEEZE) – 우린 어디에나
스텔라 장 – YOLO
러비 – 와락 (Feat. Lil Boi)
박문치 – 널 좋아하고 있어 (with. 기린, Dala, 준구)
‘SUMMER LOVE…’ 를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는 듯한 갈증을 느낄 것이다. 뮤직비디오에 대한, 그리고 안무에 대한 갈증이다. 혹시 문치는 편곡뿐만 아니라 안무도 만들지 않았을까? 굿즈는 이미 판매 시작과 동시에 완판됐다. 날씨가 추워지면 크리스마스 앨범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90년대에 태어난 음악가들이 모여 만들어낸 90년대 걸그룹 음악이다. 유쾌하고 즐거운 사건이라 한 번 더 듣게 되고 참으로 소중하다.
필자 이덕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두 번의 창업, 자동차 영업을 거쳐 대본을 쓰며 공연을 만들다 지금은 케이크를 먹고 공연을 보고 춤을 추는 일관된 커리어를 유지하는 중. 뭐 하는 분이냐는 질문에 10년째 답을 못하고 있다.
이덕 작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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