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구름 운(雲)에 수풀 림(林). 진도 최고봉 첨찰산 자락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룬다는 운림산방(雲林山房)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이 말년을 보낸 집이다.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난 허련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20대 후반에는 해남 대둔사의 초의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30대에는 그의 소개로 서울로 가서 추사 김정희의 제자가 되었다. 추사는 “압록강 동쪽에는 소치를 따를 만한 화가가 없다.”며 허련을 아꼈고, 그 또한 스승에 기대에 부응하여 왕실의 그림을 그리고 관직을 받는 등 조선 제일의 화가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당쟁에 휘말린 추사가 유배를 거듭하다 세상을 뜨자, 허련은 미련 없이 서울을 떴다. 고향 진도로 돌아와 첨찰산 쌍계사 옆에 소박한 집을 짓고는 운림산방이라 이름 붙이고 작품 활동에만 전념했다. 이때가 1857년. 소치가 49세 때의 일이었다.
# 남종화의 여백처럼 피어오르는 물안개
예술가의 타고난 감성 때문이었을까. 소치는 운림산방을 이름처럼 멋지게 꾸몄다. 작은 집 앞에 널찍한 연못을 파고 한가운데 둥근 섬을 두고 백일홍 한 그루를 심었다. 지금도 여름이면 연못 가득한 수련과 함께 백일홍 붉은 꽃이 피어난다. 이 아름다운 연못은 영화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주인공들이 배를 띄워 놀던 곳으로 등장한다.
1893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소치의 예술혼 또한 그가 심은 백일홍처럼 활짝 피어났다. 그리고 그 예술혼은 아들 허형으로, 다시 손자인 남농 허건과 증손자, 고손자들에게까지 이어져 5대 200여 년 화가 집안의 전통을 세웠다. 덕분에 진도는 우리나라 남종화의 중심지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남종화란 중국에서 시작된 수묵담채화를 가리킨다. 화려한 채색화인 북종화를 주로 전문 화가들이 그렸다면, 수묵에 은은한 색깔을 더한 남종화는 문인들의 필수 교양이었다. 조선의 선비들 또한 중국 남종화의 전통을 받아들어 시(詩), 서(書), 화(畵)의 전통을 이어갔다.
남종화의 특징 중 하나는 넉넉한 여백이다. 빈틈없이 색칠하는 북종화와 달리 남종화에는 흰 종이를 그대로 남기는 여백을 중시한다. 남종화의 여백은 이름처럼 빈 부분이 아니다. 어느 때는 구름이었다가, 다른 곳에서는 물살이 되었다가, 다시 안개로 변해 산허리를 감고 올라가기도 한다. 운림산방 연못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첨찰산을 타고 올라 구름이 되는 것처럼, 그림 속 여백은 텅 빈 채로 변화무쌍하는 것이다.
# 진도개의 공연, 남도의 공연
운림산방 뒤로는 사시사철 푸르른 상록수림이 울창하다. 이 숲의 정식 이름은 ‘쌍계사 상록수림’. 운림산방보다 훨씬 먼저, 신라시대에 세워졌다는 천 년 고찰 쌍계사에서 시작하는 상록수림은 첨찰산 자락을 휘감아 돌며 약 62만m²에 달하는 면적을 차지한다. 여기에는 동백나무, 후박나무, 참가시나무, 종가시나무, 생달나무, 모새나무, 참식나무 같은 잎 넓은 상록수들이 졸참나무, 자귀나무, 느릅나무, 쥐똥나무, 갈매나무, 굴피나무 같이 낙엽 떨어지는 활엽수들과 어울려 숲을 이루고 있다.
운림산방과 쌍계사는 담장도 없이 이웃해 있어서 쌍계사 상록수림은 소치의 산책로였다고 한다. 상록수림 나뭇잎에 빗방울 튕기는 소리는 비 오는 날 운림지 연잎에 물 듣는 소리만큼이나 듣기 좋은 듯하다.
운림산방에서 쌍계사 상록수림을 돌며 비오는 날의 정취를 충분히 즐겼다면, 이제 진도의 또 다른 관광명소를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특히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 여행객이라면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 제53호 진돗개의 모든 것을 수 있는 ‘진도개테마파크’가 그곳이다. (진도 사람들은 ‘진도에서 살고 있는 모든 종류의 개’를 ‘진돗개’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진도 특산의 개 품종’을 ‘진도개’로 구분하여 표기한다.)
이곳에서는 ‘진도개’ 사육에서 공연, 강아지 체험과 분양에 이르까지 모든 것이 ‘원스톱’으로 이루어진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1시부터는 ‘진도개’ 공연과 장애물 통과 묘기(어질리티), 경주 등을 볼 수 있다.
진도개의 공연을 본 후에는 차로 약 5분 거리인 진도향토문화회관으로 자리를 옮겨서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시작하는 ‘토요민속여행상설공연’을 보자. 예향의 고장 진도는 ‘강강술래’, ‘남도들노래’, ‘진도다시래기’, ‘진도씻김굿’ 등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만 4개다. 이 중 강강술래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진도는 군 단위로는 드물게 대규모 공연장과 함께 군립민속예술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진도아리랑, 진도북춤, 다시래기, 남도민요 등 달마다 조금씩 레퍼토리를 달리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여행정보>
운림산방
△ 위치: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315
△ 문의: 061-540-6286
△ 관람 시간: 9시~17시 30분, 월요일·설날·추석 당일 휴관
진도개테마파크
△ 위치 진도군 진도읍 성죽골길 35
△ 문의 061-540-6306
△ 관람 시간 진도개 사육장 9시~18시, 진도개 홍보관 10시~17시, 연중무휴
진도향토문화회관
△ 위치 진도군 진도읍 진도대로 7197
△ 문의 061-540-6253
△ 공연 시간 토요일 14시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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