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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아들들의 경제생활 ① 박정희·전두환·노태우 편

박지만·전재국 삼형제는 재임 중 학생, 추후 사업체 운영…노재헌만 정치 입문 시도

2019.08.08(Thu) 21:31:44

[비즈한국] 미디어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 씨(37)가 개인사업자로 ‘에프엑스FACTORY(팩토리)’를 설립한 후 ‘소프트웨어교육 선도학교’에 코딩교육 프로그램 융합 교재를 납품해온 사실을 ‘비즈한국’이 단독보도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관련기사 [단독] 문재인 대통령 아들 문준용, 초중고교 소프트웨어 교재 납품 사업).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라도 성인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을 하더라도 이권을 바라는 사람들과 그를 감시하는 눈으로 인해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역대 대통령의 아들들은 어떻게 경제생활을 했을까. ‘비즈한국’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EG 회장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 다스 전무까지, 역대 대통령 7명의 아들들의 행적을 되짚어본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세 군인 출신 대통령의 아들들이 그 첫 순서다.

 

# 박정희의 외아들: 박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후 찍은 가족사진.  사진=연합뉴스

 

박지만 EG그룹 회장은 1958년 12월,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부인 고 육영수 여사 사이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청와대에 입성한 건 출생 39개월째인 1962년 3월,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무대행을 맡으면서다.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3년 10월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된 때부터 1979년 10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될 때까지 17년 넘게 머물렀다. 그동안 박지만 회장의 신분은 줄곧 학생이었다. 1971년 청운초등학교 졸업, 1974년 배문중학교 졸업, 1977년 서울중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큰누나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과 함께 청와대를 나와 서울 중구 동화동으로 이사한 1979년 11월에는 육군사관학교 제37기 학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2001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22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박지만 EG 회장의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1986년 육군 대위로 전역한 박지만 회장은 1989년부터 1994년까지 마약 복용 혐의로 다섯 차례 구속됐다. 방황하는 20대 청년 박 회장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민 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육사 시절 제자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었다. 처음 구속됐다가 석방된 1989년, 포항제철(현 포스코)과 삼화전자가 50%씩 지분을 투자한 삼양산업(현 EG그룹)의 부사장직을 그에게 맡겼던 것이다. 박 회장은 1991년 삼양산업을 인수했고, 1999년 사명을 ‘이지(EG)’로 변경해 28년째 이끌고 있다. 

 

박지만 회장이 경영하는 EG그룹의 자산총액은 733억 2931만여 원, 매출액은 1125억 6329만여 원이다(2018년 기준). 

 

# 전두환의 세 아들: 전재국·재용·​재만

 

1969년 월남전 출정 직전에 찍은 전두환 씨의 가족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는 전효선 서경대학교 교수로, 전재만 씨는 태어나기 전이다. 사진=연합뉴스

 

전두환 씨와 부인 이순자 씨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다. 1959년 10월생인 전재국 전 시공사 회장, 1964년 10월생인 전재용 비엘에셋 대표이사, 1971년 4월생인 전재만 씨다. 전두환 씨 대통령 재임 기간(1980년 9월~1988년 2월) 장남 전재국 전 회장은 만 21~29세, 차남 전재용 대표는 만 16~24세, 막내 전재만 씨는 만 9~16세였다. 세 아들 모두 학생 신분이었다. 

 

전재국 전 회장은 1983년 2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정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전두환 씨가 대통령 임기를 마친 지 1년이 지나서야 귀국했고, 한동안 부모와 함께 백담사에 머물렀다. 그 해 12월 출판사 시공사를 인수해 30년간 경영하다 지난 5월 전 지분을 바이오스마트에 매각했다. 

 

전두환 씨의 장남인 전재국 전 시공사 회장이 2013년 9월 미납추징금 1672억원에 대한 자진 납부 계획서를 제출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찾은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차남 전재용 대표는 학사장교로 임관해 1990년 육군 장교로 전역한 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 후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2006년 9월 비엘에셋 대표이사, 2007년 3월 삼원코리아 대표이사에 취임했으나, 2014년 다운계약서 작성 및 세금 탈루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 원을 선고 받아 경영에서 물러났다.

 

막내 전재만 씨는 전두환 씨의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1989년부터 1991년까지 3년간 재수를 하다가 1992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해 4년만에 졸업했으며, 졸업과 동시에 이희상 운산그룹(현 동아원그룹) 회장의 맏딸 이윤혜 씨와 결혼했다. 현재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동아원 미국사무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 노태우의 외아들: 노재헌

 

노태우 씨 가족이 1987년 연희동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담소나누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노태우 씨와 부인 김옥숙 씨 사이에는 1961년 3월생인 장녀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 1965년 11월생인 차남 노재헌 변호사가 있다. 노태우 씨가 1988년 2월 제13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돼 청와대에 입성할 당시 노재헌 변호사는 만 22세로,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과를 막 졸업하던 때였다. 

 

이듬해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건너가 명문사립대인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를 취득한 노재헌 변호사는 1991년 고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노태우 씨가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나온 직후에는 민자당 대구 동구을 지구당위원장을 지냈고, 1996년 4월 치러질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의사까지 밝혔다. 하지만 1995년 10월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지자 위원장직을 사퇴하고, 국회의원 출마도 포기했다. 

 

노태우 씨의 아들 노재헌 변호사가 2015년 11월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후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조지타운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세계 10대 로펌에 속하는 화이트앤케이스(White & Case)에 입사해 홍콩지사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5월 국내 로펌인 법무법인 바른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0년 고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의 장녀 신정화 씨와 결혼해 2남 1녀를 두었으나 2013년 이혼했다.

 

노태우 씨의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지 20주년을 맞아 ​노재헌 변호사는 2012년 한중문화센터를 설립하고 원장으로 취임했다. ​2018년 2월에는 중국과의 교류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민간 주도의 ‘일대일로연구원’을 출범했다. 연구원은 최재천 법무법인헤리티지 대표변호사가 이사장을, 노재헌 원장과 취환 한중문화우호협회 회장이 공동원장을 맡았다.​

유시혁 기자

evernuri@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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