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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최강 폭염보다 무서웠던 심은하의 초록눈 'M'

'낙태' 파격 소재와 CG로 오싹…2020년 리부트 예정, 심은하 연기 대체 가능할까

2019.08.07(Wed) 11:50:55

[비즈한국] 형형히 빛나는 초록색 눈과 기괴하게 변조된 목소리에 칼로 베일 듯 날카로운 미모로 공포를 배가시켰던 ‘M’의 심은하를 기억하는가. 폭염으로 뜨거웠던 1994년 여름, ‘납량특집 미니시리즈’란 이름의 10부작 드라마로 안방을 찾은 ‘M’은 엄청난 몰입과 기이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낙태된 태아의 원혼이 주인공에 빙의해 세상에 복수한다는 설정은 자못 파격적이었고, 지금 보면 조악하지만 당시에는 보기 드물었던 컴퓨터 그래픽(CG)의 향연은 20세기 시청자들의 눈을 붙잡았다. 거기에 “내 영혼이 아파오네~”로 시작하던 주제가 ‘나는 널 몰라’와 “아아아아아아아~”로 일관하는 OST ‘슬프도록 무서운’까지 곁들여지면, ‘전설의 고향’ 정도로 벌벌 떨던 꼬꼬마뿐 아니라 다 큰 어른들까지 공포에 떨게 된다.

 

1994년 8월, 10부작으로 방영한 ‘M’​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설정과 컴퓨터 그래픽 효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무엇보다 낙태라는 소재 자체가 당시 안방극장에서 보기 힘들었던 소재로, 이후 ‘​M2’​ 제작을 추진했다 무산되었지만 무려 26년이 지난 2020년 리부트 제작이 결정되는 등 여전히 다시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사진=MBC 홈페이지

 

‘M’은 열여덟 살 박마리(심은하)와 그의 친구 김은희(김지수)와 이예지(양정아)의 학창시절로 시작한다. 마리는 이따금 타인에게 닥칠 일을 예견하는 낯선 면모가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남학교의 축제에 놀러가거나 옆집 사는 대학생 송지석(이창훈)과 풋풋하게 교제하는 등 남다를 것 없는 여고생이었다.

 

10대 소녀 특유의 불안정함으로 가끔 폭주하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던 마리의 일상이 무너진 것은 친구들과 함께 바다로 여행을 갔다가 이들에게 몹쓸 마음을 품고 침입한 불량배들을 만나면서. 마리가 위험에 처하자 그녀 안의 또 다른 인격이 나타나 불량배 셋을 처참하게 죽인 것이다. 이 사건으로 마리를 관찰하던 최재민 박사(이형후)는 자신의 스승인 캘리포니아 소노머 뇌행동 연구센터의 프롬 박사(D.B. Campbell)에게 그녀를 보내게 된다.

 

주인공 박마리 안에 깃든 낙태된 태아의 기억분자 M이 발현될 때마다 마리의 눈은 초록색으로 빛나고, 심은하의 저음과 에코음을 변조해 합성한 기괴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훗날 임성한 작가의 ‘신기생뎐’​에서 아수라가 귀신에 빙의돼 초록색 눈을 빛낼 때 M을 떠올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으리라. 사진=MBC 홈페이지

 

여기서 우리는 마리 아버지 상철(박영태)의 입을 통해 마리의 출생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되는데, 이미 두 딸이 있었던 마리의 부모가 태아 시절 마리가 딸임을 알고 낙태수술을 받으려 했던 것. 이에 대해 프롬 박사가 의문을 품자 최 박사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아, 동양적 사고방식입니다. 아들 선호사상이죠”라고 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러니까, 1990년대만 해도 저런 말이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던 시기였던 거다.

 

마리에게 깃든 태아의 원혼 M(프롬 박사가 붙인 이름)은 당시 마리와 같은 날 낙태수술을 받아 죽은 남아의 인격이었지만 극중 1968년생이던 마리 세대는 물론 80년대, 90년대에 이르러서도 많은 사람들이 단지 뱃속 태아가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술대에 오르곤 했다. 그러니까 ‘M’은 여아 낙태수술을 비롯해 무분별한 생명 경시 풍조에 경종을 울린 작품인 셈이다.

 

여고생 시절의 박마리와 친구 은희, 예지의 모습. 모두 지석을 좋아했지만 지석과 실제 교제하는 건 마리였다. 8년 뒤 마리가 기억을 잃고 M에게 지배당하는 김주리가 되어 돌아오면서 이들의 관계도 어긋난다. 사진=MBC 홈페이지

 

미국 프롬 박사에게 보내진 마리는, 마리 안에 깃든 M을 깨어내 선과 악을 분리하고자 한 프롬 박사의 욕심으로 가족에게는 죽었다고 속인 채, 김주리라는 새로운 인격을 부여받아 8년 뒤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 사이 마리를 사랑했던 지석은 마리의 친구 은희와 연인이 되었고, 또 다른 친구 예지는 은희의 오빠 김도진(김형일)과 결혼을 약속한 20대 중반의 성인이 되었다.

 

친구들은 외과의사가 된 김주리가 예전 자신들의 친구 박마리임을 알아보고 그녀의 기억을 일깨우려 하지만, 이미 프롬 박사에 의해 M의 인격이 깨어난 마리는 세상을 향한 무차별적인 복수를 시작한다. 일명 ‘죽음의 키스’라 불리는 마리의 키스를 당한 사람은 모두 에볼라 바이러스 형태의 증상을 보이며 숨을 거두는 것.

 

죽은 줄 알았던 마리가 돌아오면서 은희와 사귀던 지석의 마음은 흔들린다. 후반부 M이 흔들리는 건 착하디 착한 은희의 마음씀씀이와, M의 지배하에서도 사랑하던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던 마리의 의식, 그리고 마리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했던 지석의 마음이 얽히면서부터. 사진=MBC 홈페이지

 

M의 복수 대상은 그야말로 광범위한데, 먼저 철저히 육체인 마리를 고립시키기 위해 마리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M을 탄생하게끔 만든 M의 생부와 생모, 그리고 수술을 자행한 의료 종사자들, 더 나아가 낙태수술을 한 사람이거나 과거 강간 등을 저지른 성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자신의 복수를 방해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

 

M이 발현할 때 마리의 눈은 초록빛으로 빛나며 음성 변조된 괴이한 목소리로 말하는데, 죽음의 키스처럼 바이러스를 옮기는 것 외에도 염력과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조종하는 능력 등 끝을 모른다. 동료 의사인 김주리를 두고 키스 내기를 하는 남자 의사가 죽음의 키스를 당하는가 하면, 주리의 약혼자였던 산부인과 의사 운철(이동신) 또한 낙태수술 일정을 말하다 M의 심기를 거슬러 죽임을 당한다.

 

M의 생부와 생모가 태아를 낙태하기로 결심하면서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갈갈이 찢긴 M의 기억분자가 수술도구에 깃들어, 같은 날 낙태수술을 하던 마리의 생모 몸에 유입되어 M은 탄생한다. 낙태수술로 죽은 태아가 낙태수술로 죽을 뻔한 마리를 살리고 이후 복수를 가한다는 설정은 당시 무분별하게 자행되던 생명 경시 풍조에 섬뜩한 메시지로 남았다. 사진은 염력으로 마리의 낙태수술을 방해하는 장면. 사진=MBC 홈페이지

 

재미난 건, 악의 화신이라 불리는 M 또한 부모에 대한 증오 외에도 사랑받고 싶었던 욕망이 남아 있었는지 생부인 의사 홍현우(신귀식)와 생모 윤정숙(남윤정)의 목숨은 끝내 거두지 않았다는 거. 심지어 더없이 착한 마음씀씀이를 지닌 마리의 친구 은희에게는 사랑까지 느끼니, 이 얼마나 인간적인(?) 악의 화신이냔 말이지.

 

그래서 ‘M’의 결말은? 마리를 지극히 사랑한 지석이 마리 대신 자신의 몸에 M을 받아들이고는 괴로워하며 첨탑을 오르고, 함께 첨탑을 오르던 마리가 당국의 명령에 의해 사살당해 함께 떨어져 죽는다. 결말까지 파격 그 자체다. 낙태당한 태아의 기억분자가 수술도구를 통해 또 다른 태아에게 유입되었다는 믿기 어려운 설정과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설정들, 조악한 CG가 지금 보면 웃음이 나겠지만 당시에는 정말 후덜덜한 공포감을 조성했다. 평균 시청률 38.6%, 마지막 회 최고 시청률 52.2%라는 기록을 봐도 알겠지만 그해 여름은 ‘M’으로 뜨겁고도 으스스했다.

 

초록색 눈 외에도 M은 이따금 마리의 배, 거울에 비친 마리의 얼굴 등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데, 기괴한 태아의 형상 또는 초록색의 괴생물체 정도로 표현된다. 지금에야 보면서 웃지만 당시는 얼마나 공포스러웠다고. 사진=MBC 홈페이지

 

무엇보다 ‘M’은 박마리와 김주리, M의 세 가지 인격이 깃든 다중인격체를 연기한 심은하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1994년 새해 벽두를 ‘마지막 승부’의 청순한 다슬이로 등장해 ‘다슬이 붐’을 일으켰던 심은하가 고작 반 년 만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다중인격의 팜므파탈(femme fatale)로 나타난 건 놀랍기 그지없었다.

 

내년 예정으로 ‘M’의 리부트 제작에 돌입한다는데, 과연 그 시절의 심은하를 대체할 배우를 찾을 수 있을까? 1994년과는 사뭇 달라진 낙태에 대한 시선을 어찌 풀지도 관건이겠지만. 아무쪼록 리메이크된 ‘전설의 고향’을 보면서 예전의 공포감이 짜게 식는 경험을 또다시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리(김주리)에게 키스를 당하는 사람들은 모두 온몸의 반점과 출혈 등 에볼라 바이러스 형태의 증상을 일으키며 죽음에 이르곤 한다. 유일하게 키스를 당하고도 죽지 않았던 건 M이 사랑의 감정을 품었던 마리의 친구 은희. 사진=MBC 홈페이지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이며,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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