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국 재무부가 5일(현지시각)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가뜩이나 일본 무역보복 및 대북 문제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한층 격화된 미중 무역 갈등이 불러올 파장에 관심이 집중된다.
미국이 특정 국가를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크게 1988년 제정된 ‘종합무역법’과 2015년 제정된 ‘교역촉진법’이 있다. 이 중 이번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법적 근거는 ‘종합무역법’이다.
교역촉진법에는 환율조작국 기준이 미국으로부터 200억 달러 이상 흑자를 내고, GDP 대비 경상흑자 2% 이상, GDP 대비 달러 순매수 2% 이상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했을 때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고, 2개가 해당할 경우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다. 중국은 대미 무역흑자가 3233억 2000만 달러(392조 6721억 원)로 최근 10년 내 가장 높았지만, 13조 6082억 달러(1경 6523조 원) 규모의 2018년 중국 GDP를 감안하면 나머지 조건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그래서 트럼프 정부는 관련 규정이 비교적 모호한 ‘종합무역법’을 꺼내들었다. ‘종합무역법’은 미국을 상대로 흑자를 기록하기만 하면 해석에 따라 지정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미무역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도 종합무역법에 의거해 1988년 환율조작국에 지정된 전례가 있다.
대미무역에서 막대한 흑자를 기록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달러를 사들여 가치를 높이는 행위를 방어하는 것이 환율조작국의 핵심이다. 최근 중국 위안화는 심리적 지지선인 달러당 7위안을 돌파하면서 2008년 5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른바 7이 깨진다는 의미의 포치(破七)라는 말도 생겼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부터 무역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벌이고 있다. 최근 트럼프 정부는 중국산 제품에 추가 관세 10%를 부과하기로 발표하고, 중국은 미국 농산물 수입을 중단하는 등 강대강으로 맞붙었다.
이번 환율조작국 지정 역시 이러한 미중 무역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미국이 내민 카드로 해석된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경우 중국 기업이 미국 기업에 투자할 때 해외민간투자공사의 금융지원 및 보험, 보증 등이 제한되며, 조달 시장 진입은 아예 금지된다.
반대로 미국 기업 역시 중국 투자 시 정부의 각종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환율 압박과 이외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각종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생긴다. 다만 지정 직후 조치가 취해지는 것은 아니며 1년간 유예를 둔다.
환율조작국 지정 이후 중국의 반응이 아직 나오지 않은 가운데 글로벌 금융 시장은 전반적으로 관망하는 분위기다. 당장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일 수 있지만, 양국 갈등이 계속 이어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진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노림수는 다른 곳에 있는 듯하다. 환율조작국 지정이 대외적으로는 중국을 겨냥한 카드이지만, 내부에서는 연방준비은행(Fed)을 압박해 기준금리 인하의 근거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2~2.5%다. 기준금리가 인하되면 미국 달러 가치가 하락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는 미국의 수출경쟁력을 증가시키고 각종 경제지표를 회복시켜, 이른바 ‘아메리칸 퍼스트’로 불리는 일자리 확대 공약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심지어 아예 미국 재무부가 환율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7월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7월 17일 열린 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담에서 “달러화 정책을 장래에 고려해볼 수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에서 주목한 지점은 ‘장래에 고려해볼 수 있다’는 부분. 파문이 커지자 26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참모회의에서 환율개입은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미국 CNBC가 보도하기도 했다.
이렇게 달러가 약세로 돌아설 경우 대미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불확실성도 만만치 않다. 수출 둔화 및 금융 불안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일본의 무역보복 대응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큰 변수가 생긴 셈이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6일 오전 열린 관계기관 합동점검반 회의에서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모습이며 향후 국내 금융 및 외환 시장에도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상존한다”면서도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엄중한 상황인식을 가지고 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다.
봉성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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