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음악과 디저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건조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입가심하기에 적당하다는 것. ‘가토 드 뮤지끄(gâteau de musique)’는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뮤지션과 디저트를 매칭해 소개한다.
선우정아는 노래를 정말 잘 부른다. 가창력을 판단하는 기준을 여섯 항목으로 나눠 육각형으로 표현한다면 선우정아의 노래는 꼭짓점 모두가 최고치를 한참 초과한 거대한 육각형이 될 테다. 나의 스피커와 이어폰을 원망 섞인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선우정아의 목소리를 오롯이 느끼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로 예리하게 갈고닦은 목소리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리스너가 받는 선물이라면 선우정아는 가장 좋은 선물을 가장 많이 주는 산타클로스다.
선우정아 – 쌤쌤
게다가 선우정아는 노래를 정말 잘 만든다. 각 분야의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각자 잘하는 것을 중심으로 분업을 하고 비교우위에 따라 무역을 한다. 곡 잘 쓰는 사람이 곡을 쓰고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업계의 규칙이거늘 선우정아는 둘 다 아주 잘한다. 그래서 곡을 직접 쓰고, 부르고, 다른 사람의 노래를 프로듀싱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보컬 선우정아와 프로듀서 선우정아 두 명이 있었다 하더라도 두 명 다 이렇게 잘하기는 쉽지 않다.
선우정아 – 구애
주차장을 지나 길을 건너 불타는 골목 안 멀리 보이는 마트에 도착하면 복슬복슬 복숭아가 있다. 복숭아가 요즘 제철이다. 달력이 넘어가고 제철 과일이 바뀌면 매의 눈으로 양과자점들을 주시한다. 거품기를 손에 들고 오븐과 반죽기에 둘러싸인 파티셰들이 제철 과일을 소재로 고심과 연구 끝에 내놓을 쁘띠가토를 기다린다. 도약을 준비하며 궁둥이를 좌우로 흔드는 고양이 같은 자세로 힘을 모으고 있다 새로운 가토 소개에 ‘복숭아’라는 글씨가 보이면 바로 튀어간다.
선우정아 – 고양이 (feat.아이유)
제철 과일을 활용한 가토는 제철에만 즐길 수 있다. 마트 과일코너에서 그 과일이 슬슬 사라지면 양과자점 쇼케이스에서도 그 가토는 자취를 감춘다. ‘한정판’이다. 한정판은 구매욕을 500배 상승시키는 마법의 주문이다. 나는 길을 걷다 내게 전혀 쓸모없는 물건이라도 한정판이라 쓰여 있으면 한 번 되돌아본다.
프로듀싱을 하던 선우정아가 ‘노래를 불러야겠다’라고 다짐을 한 후에야 우리는 선우정아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것처럼 제과 클래스를 운영하던 르 페셰 미뇽(le péché mignon)의 파티셰가 ‘가토를 팔아야겠다’라고 다짐을 한 덕에 복숭아버베나 파블로바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복되고 은혜로운 결정이다.
선우정아 – 봄처녀
이만한 가창력의 소유자라면 이것을 청룡언월도처럼 양손에 그러쥐고 난폭하게 휘두를 법도 하지만 그러기엔 선우정아는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있다. 재즈, 일렉트로니카, 알앤비, 포크 등 여러 장르를 자유롭게 활용하며 당장 듣기에 산뜻한 스타일을 보여줌과 동시에 시간이 흐른 뒤에 들어도 감탄이 나오는 훌륭함을 겸비했다. 유행이 착실하게 반영된 세련된 뮤직비디오와 이따금 뮤직비디오 속에서 등장하는 선우정아의 독특한 패션, 헤어와 메이크업은 안구에 상쾌함을 뿌려준다. 듣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팝 아티스트가 바로 선우정아다.
르 페셰 미뇽의 복숭아버베나 파블로바는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요즘 유행하는 디저트 장르 중 하나인 파블로바를 안에 숨기고 있다. 버베나 향이 물씬 풍기는 하얀 바닐라 크림과 새콤달콤한 복숭아 마멀레이드, 그 아래 바삭한 파블로바를 반드시 한 번에, 요령껏 한 포크에 찔러 입안에 가져간다. 가토 위에 얹어진 머랭은 바삭하는 동시에 안개처럼 사라지고 가토 안에 숨은 파블로바는 입안에서 꾸준하게 바삭바삭 씹히며 복숭아 마멀레이드, 그리고 버베나 크림과 운명을 함께한다. 복숭아버베나 파블로바는 복숭아를 아름답게 즐기는 방법이다. 복숭아가 과제였다면 이 가토는 장원급제다.
선우정아 – 순이
이번 주 금요일(9일)엔 선우정아를 보러 제천에 간다. 여름밤, 음악 영화, 호수 옆 근사한 무대, 그리고 선우정아. 선우정아를 몰랐던 푸딩은 몇 년 전 바로 그곳에서 선우정아의 노래에 홀리고 말았단다. 이제 허탈한 표정으로 나의 이어폰과 스피커를 바라볼 필요가 없다. 직접 들으러 간다.
필자 이덕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두 번의 창업, 자동차 영업을 거쳐 대본을 쓰며 공연을 만들다 지금은 케이크를 먹고 공연을 보고 춤을 추는 일관된 커리어를 유지하는 중. 뭐 하는 분이냐는 질문에 10년째 답을 못하고 있다.
이덕 작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가토 드 뮤지끄]
변화무쌍 '티아라' 10주년, 오페라 케이크로 기념하라
· [가토 드 뮤지끄]
여름이니까 노라조와 '샤워'하고 살구
· [가토 드 뮤지끄]
그토록 기다렸던 김오키와 이스파한 슈
· [가토 드 뮤지끄]
라이언클레드와 라뚜셩트의 알싸한 실험
· [가토 드 뮤지끄]
'빵도둑'과 '공중도둑'에겐 탈출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