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여름 무더위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35℃를 웃도는 날씨에도 배달 라이더는 온몸을 감싸는 보호 장비를 입고 헬멧을 쓴다. 전국 곳곳 폭염경보가 발효돼도 라이더들에게 별다를 건 없다. 콜이 뜨는 휴대폰 화면에 ‘더위에 대비하라’는 업체 측 공지문자 정도가 온다.
덥고 추운 날, 눈·비가 오는 날은 배달 주문이 늘기 때문에 콜 수가 더 많다. 배달대행업체 라이더 A 씨는 “오늘도 오는 길에 사고 현장을 봤다”며 “이런 날에는 탈수증이 생기고 집중력이 떨어지지만, 일부러 마음먹지 않는 이상 쉬지 못한다. 시간이 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일 서울 강남역 한 스터디카페에서는 가톨릭성모병원 김형렬 직업환경전문의의 ‘라이더를 위한 폭염 대비 강의’가 진행됐다. ‘앉아서 할 수 있는 스트레칭 방법’과 일대일 건강상담도 차례대로 이뤄졌다. 지난 7월 강서구에 이어 강남구에서 열린 이번 프로그램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라이더유니온,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주최했다.
이날 참석한 5명의 라이더는 여러 고민과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불규칙한 식사 시간과 빈번한 사고, 부족한 교육 체계와 가이드라인의 부재 등 여러 문제점이 쏟아졌다. 김형렬 전문의는 “몸이 고온에 적응하기 전인 이때가 가장 위험하다. 열 탈진과 열 실신, 열사병까지 이어질 수 있어 충분한 물 섭취와 휴식이 필요하다”며 “노동 조건이 힘들수록 음주와 흡연이 늘어난다. 온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에 건강을 잘 살펴야 하는데 라이더는 직고용이 아닌 특수고용노동자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개인에게 맡겨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폭염·폭우에 노출된 배달 노동자, 대책은 전무
올 5월 1일 배달 대행 기사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 유니온’이 결성됐다. 지난해 7월 박정훈 씨는 폭염수당 100원 지급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했다. 이후 라이더유니온을 결성해 라이더 건강관리 사업, 전국 라이더 체감온도 측정 활동 등을 했다.
지난 7월 9일에는 배달대행업체 ‘배달은형제들’과 업계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해 성과를 내기도 했다. 계약서를 쓰지 않는 관행을 깨고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했으며, 수수료 출혈경쟁 대신 ‘기본 배달료 3500원에 폭염·한파 시 500원 할증’ 조건도 넣었다.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은 “지난해 개인이 폭염수당 100원을 주장했다면 올해는 라이더유니온이 안전배달료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며 “배송대행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는데도 배달노동자 보호 법안은 전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국회서 뒤늦게 지원법 발의했지만 개인 아닌 산업에 초점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 외 22명은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안(생활물류서비스법)을 발의했다. 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생활물류서비스산업 분야에 금융 및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명시했다. 또한 이륜차로 대표되는 소화물배송대행서비스사업 인증제 도입 등의 내용도 담고 있다.
하지만 배달 노동자들을 위한 법안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정훈 위원장은 “해외에서는 라이더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에 대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먼저 논의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단 규제가 없는 산업을 법안에 넣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다”며 “지금 발의된 법안은 특수고용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확정짓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박정훈 위원장은 “배달은 상시적 위험업무이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많은 보호가 필요하다”며 “업체의 관리·감독을 다 받는데 왜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인가. 더 활발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도록 라이더유니온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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