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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업] 일본 제품 보이콧과 우리의 '클라스'

'부당한 행위에 맞선 저항' 의미…강자에 강하고 약자에 약해야

2019.08.05(Mon) 10:18:27

[비즈한국] 찰스 커닝햄 보이콧(Charles Cunningham Boycott)이란 사람이 있다. 19세기 아일랜드 대기근 때 아일랜드 북동부 지역의 한 경작지 지배인으로 부임해간 영국인이다. 기근이 심하다보니 소작인들이 지주에게 소작료를 낮춰달라고 요구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고 보이콧을 시켜서 소작료를 기존대로 다 징수한다. 결국 분노한 소작인들은 보이콧을 감금한다. 

 

영국이 공권력을 투입해 보이콧을 구하고, 소작료도 다 징수했다. 하지만 보이콧은 일자리를 잃었고, 이듬해 영국은 아일랜드 소작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법령을 제정하게 된다. 부당한 행위에 맞서 집단이 조직적으로 벌이는 거부운동을 일컫는 ‘보이콧(Boycott)’​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핵심은, 부당한 행위에 대한 저항은 정당한 권리라는 점이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 다음 날인 3일 저녁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역사왜곡·경제침략·평화위협 아베규탄 시민행동(아베규탄 시민행동) 주최로 아베정권 규탄 3차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사진=임준선 기자

 

아직도 남양우유를 먹지 않고, 피죤과 옥시 제품을 쓰지 않고, 대한항공을 타지 않고, 조선일보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이름을 검색창에 써보면 연관검색어로 ‘불매’가 나올 정도다. 불매 사유가 되었던 사건이 몇 년 전인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불매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보이콧이 집단적 거부운동이라면, 요즘은 개인적이고 자발적인 거부도 늘고 있다. 과거엔 불매를 하면 소비자 단체를 비롯한 조직이 주도했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 알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오래갈 수밖에 없다. 물건 자체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그 기업이 행한 부당하고 반사회적인 일에 대한 의사 표현으로서의 불매이기 때문이다. 소비는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다.

 

요즘 기업들이 플라스틱 포장재를 비롯한 환경 문제에 훨씬 민감해졌고, 윤리와 젠더 문제까지도 적극적으로 신경 쓴다. 갑질 문제가 나오지 않도록 극도로 경계하고, 사회적 책임에도 과거에 비해 적극적이다. 기업에 착해져서 그런 게 아니다. 소비자들이 물건 자체의 품질과 가격만 가지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이젠 기업의 사회적 역할까지 판단하기 때문이다. 

 

세상 제일 무서운 게 경제적 타격이다. 솔직히 나쁜 놈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도 경제적 타격이자 재산 손해지, 욕먹거나 법적 제재 받는 건 그리 무서워하지도 않더라. 정치도 경제를 제일 신경 쓴다. 국민도 경제에 제일 민감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는 경제적 타격을 무기로 아베 정권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카드였는데 그들의 예상과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한국 소비자들이 일본제품 보이콧, 일본여행 보이콧을 확산시켜가고 있고, 정부도 강경한 대응 자세고, 국제적 시선도 곱지 않다.

 

물론 일본이 우리 제품을 보이콧하면 인구가 더 적은 우리가 손해 아닌가 하겠지만, 우리와 달리 일본 소비자로선 보이콧할 명분 자체가 없다. 조직적으로 불매를 시도해본들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개별 소비자 개개인이 불매를 받아들일 이유를 스스로가 납득해야만 보이콧이 확산되고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퍼지는 가운데 서울 은평구의 한 마트에 일본 제품을 팔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이럴 때일수록 한국에 찾아온 일본인 여행자에겐 평소보다 좀 더 친절하고  관대해져도 좋다. 비즈니스 관계로 접하는 일본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우리나라에 여행 와서 돈 쓰는 사람이고, 우리 기업과 비즈니스 해서 경제적 기회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요즘 일본의 일자만 나와도 극도로 싫어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엄밀히 일본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우익 혐한 세력에게 가야 할 분노가 일반 일본인에게 가선 안 된다. 

 

보이콧을 하는 목적도 부당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압박이자 메시지이지, 감정적일 필요 없다. 이성적이되 냉정하게 목적을 이룰 때까지 지속하면 된다. 일본 정부는 정치적 이슈를 경제적 보복으로 연결해 무역을 무기로 악용했다. 보이콧은 감정이 아니라, 부당한 행위에 대한 저항이자 정당한 권리다.

 

이런 상황에서 마치 남의 나라 얘기하듯 정부 욕하기 바쁜 정치인도 있다. 부당한 행위, 즉 누군가가 갑질을 했으면 갑질한 사람을 비판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해야지, 피해당하는 사람을 욕하는 건 정치적 이해관계만 따져 소탐대실하는 경우다. 그리고 싸움에도 원칙이 있다. 부부싸움은 부부가 서로를 이기려고 싸우는 게 아니라, 부부가 한편이 되어 공동의 문제와 싸우는 것이다. 부부싸움이 정치권의 정쟁보다 훨씬 세련된 건 적어도 이 정도 원칙은 지킨다는 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싸움은 피하는 게 좋지만,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피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싸움이 부당한 행위에 대한 저항이라면 더더욱 피해선 안 된다. 권리를 자꾸 포기하다보면 권리 자체가 사라진다. 강자에 강하고 약자에 약한 것이 ‘클라스’다. 불의에 맞서는 것도 그렇다. 

 

우리나라가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일이 1910년 8월 29일​이다. 강제로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이 ​이날 ​공포됐다. 그리고 올해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자 3·1운동 100주년이다. 한일 관계에 근본적 변화를 위한 계기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한데, 공교롭게도 사건은 벌어졌다. 가끔 내가 100년 전 사람이었으면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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