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반도체는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한국 경제의 중추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들의 기술력과 양산능력은 미국·중국 기업들을 압도하며 D램 시장에서 세계 75%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반도체가 일본으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일본은 자국 총수출의 0.001%에 불과한 에칭가스·포토레지스트·플루오린폴리이미드 등 세 품목의 한국 수출을 제한해 한국 경제 전체를 흔들었다. 여기에다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 명단에서 제외함으로써, 경제 보복 강도를 높여갈 계획이다. 과연 한국 반도체 산업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려가 커진다.
일단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치명적 타격은 없다고 분석한다.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이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정의 필수재지만, 대체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일본의 99.999% 순도 에칭가스는 고정밀 나노공정에 쓰이지만, 하위 공정에는 한국·중국 등이 생산하는 99.99% 순도로 대응이 가능하다. 당장 고정밀 나노공정 제품이 전체 제품군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수입처 다변화와 자체 기술 개발 등까지의 시간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7월 초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이후 반도체 생산 차질 소식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에칭가스의 보관기간이 1개월 남짓에 불과하며 일반 통관절차가 90여 일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8월 초에는 반도체 생산에 문제가 생겼어야 한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가 떨어진 직후 선제적인 물량 확보와 그간 확보해 놓은 재고, 생산량 조절 등을 통해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번에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배제하면서 웨이퍼·블랭크 등 반도체 생산의 핵심 소재·부품 수급에도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데, 국내 업체들은 7월 초부터 조달처 다변화 등의 대책 마련에 나섰다. 웨이퍼의 경우 미국·독일을 비롯해 국내 업체도 생산하기 때문에 대체 수급처가 많은 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단 수출 금지가 아닌, 통관절차 강화이기 때문에 대응 능력을 넓히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밴더사와의 부장급 미팅을 부사장급으로 격상시켜 협상력을 높이는 등 포괄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는 소재·부품 관련 업무를 정부 당국자와 논의하는 한편, 정보의 외부 유출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메모리 반도체는 어떤 식으로든 대응할 수 있어 보이지만, 비메모리 반도체 상황은 심각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설계 구조가 더욱 복잡하고, 제품에 따라 맞춤 설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생산 공정이 더욱 정교해 일본산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비메모리 반도체 식각·세척에는 99.999% 순도의 에칭가스가 필요하며, 차세대 반도체 공정인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역시 일본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 올 초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 확대에 나선 삼성전자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반도체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고정밀 공정에 필요한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업체도 있지만, 그간 일본 벤더와의 가격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육성한 측면이 있다”며 “당장 일본산 제품을 대체하기는 어려워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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