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여성 성욕 장애 치료제가 과연 우리나라에도 정식 출시될 수 있을까.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5년 최초의 여성 성욕 장애 치료제 ‘애디(Addyi)’를 허가한 데 이어 지난 6월 21일 ‘바이리시(Vyleesi)’의 품목 허가를 승인했다. 바이리시는 AMAG 파마슈티컬과 미국 팰러틴 테크놀로지스가 공동 개발한 일회용 피하 주사제다. 지난 15일 광동제약은 바이리시를 2022년 국내에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동제약은 팰러틴사와 국내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국내 출시 이후 최소 10년간 독점 판매 권리를 가진다. 물론 시판까지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허가 절차가 더욱 까다로울 것으로 예상될 뿐만 아니라, 설령 허가를 받는다고 해도 시장성 역시 확신하기 어렵다.
# 효과·안전성 검증 부족한데도 여성단체 압력에 허가?
바이리시는 신약 물질 ‘브레멜라노타이드(Bremelanotide)’의 제품명으로, 여성의 성욕 저하 장애(HSDD, Hypoactive Sexual Desire Disorder)를 치료한다. 브레멜라노타이드는 성 기능에 관여하는 중추신경계 멜라노코르틴 수용체에 작용해 성적 반응과 욕구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 환자가 성행위 45분 전에 복부나 허벅지 피부에 자가 주사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피하주사가 알약 복용보다 효과가 더 빨리 나타난다.
그런데 바이리시는 기대만큼 획기적인 약이라고 보긴 어렵다. 임상시험에서 한 달에 두세 번 이 약을 투여한 1247명의 폐경기 여성 중 불과 20%만이 성적 욕망 점수가 높아졌다는 결과를 보였다. 효과가 낮은 것도 문제지만 이 약을 만든 개발사는 물론 FDA도 이 약물이 어떻게 여성의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임상시험 대상자의 40%가 메스꺼움을 경험했고, 얼굴과 가슴이 흑색으로 변하는 부작용도 보고됐다.
2016년 FDA는 ‘여성에 대한 낮은 성적 관심 및 또는 각성: 치료를 위한 약물 개발’이라는 지침 초안을 발표하고,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에 적극 협력할 것을 약속한다. 이후 최초로 허가 신청을 낸 여성 성욕 장애 치료제 애디도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미국의 소비자 연합단체는 “여성의 성 문제를 남성과 똑같이 치료해달라”며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결국 2009년과 2013년에 두 번 퇴짜를 놓았던 FDA는 부작용을 ‘블랙박스 경고문’에 삽입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2015년에 애디를 허가했다.
약학정보원이 발간하는 소식지 ‘신약평론’ 2015년 12월호에는 “애디의 미국 FDA 승인은 ‘캠페인을 통한 압력의 승리’로 간주되며, 임상연구에서 안전성과 유용성에 관한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승인에 소홀한 것이 아닌지 의심해본다. 따라서 국내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았지만 만약 소개된다면 어떠한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다”는 내용의 글이 게재됐다.
# 보수적 국내 시장서 ‘남성용’만큼 안착 쉽지 않을 것
현재 우리나라에 출시된 여성 성욕 장애 치료제는 없다. 반면 남성 발기부전치료제 복제약(제네릭) 경쟁은 상당히 치열하다. 2019년 7월 기준 비아그라(실데나필) 제네릭만 39종에 달한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처럼 여성 성욕 장애 치료제 시장이 형성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일단 광동제약이 팔을 걷어붙였지만 아직 넘어야 할 관문이 많다. 우선 약사법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임상시험허가신청을 한 뒤 국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임상시험(가교시험)을 다시 거쳐야 한다. 바이리시는 현재 미국인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거쳐 승인받은 만큼 한국인에게 적용했을 때는 반응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식약처에서 임상시험 자료를 토대로 승인 심사에 들어간다.
광동제약의 적극적 움직임에도 제약업계는 일단 관망하는 분위기다. 미국에서조차 아직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논란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허가를 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 우세하다. 게다가 힘들게 허가를 받는다고 해도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확실하지 않은 효능과 효과에 대한 의구심도 있고,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이런 약을 이용하는 것에 다소 보수적이어서 상품이 나오더라도 많이 팔릴 것 같지는 않다”며 “남성용 비아그라도 시장이 큰 것처럼 보이지만 1000억 원 규모에 불과하다. 건강·생명과 직결된 약이 아니기에 시장이 성장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약이 성폭력에 악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애디의 경우 알약 형태로 돼 있어 꾸준히 복용해야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문제가 없지만, 바이리시는 주사제 형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이리시가 시판된다면 엄격한 관리체계가 요구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앞서의 업계 관계자는 “자가주사제 형태이기 때문에 타인이 강제로 주사할 가능성도 있다”며 “약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식약처나 제약회사에서 제대로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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