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반려동물에게도 맞춤 식단이 필요하다. 질병을 앓는 반려동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처방식 사료로 좀처럼 건강이 회복되지 않는 반려동물에게 사료가 아닌 ‘제대로 짜인 일반식’을 먹이고 싶은 게 반려인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요에 따라 저마다 반려동물용 레시피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도 지속적으로 성장 추세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각종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유명 수의사들이 저마다 이름을 걸고 맞춤 식단을 처방해주면서 인기를 끌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너무 믿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것은 물론 오히려 반려동물에게 자칫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평소 식단보다 단백질 과다했지만, ‘수의사’라서 믿었다
지난해 10월 반려인 A 씨는 수의사 B 씨를 찾았다. B 씨는 병원을 운영하지 않지만 ‘맞춤형 식단’을 처방하는 사업으로 반려인이 모인 카페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수의사 B 씨는 사전문진표와 최근 한 달 내의 혈액검사 결과를 받아 그것을 토대로 식단을 짜서 반려인에게 보낸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동물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진 않는다. 식단을 한 번 제공받는 비용은 15만 원 정도다.
A 씨는 ‘수의사 레시피’가 ‘마지막 희망’과도 같았다고 말했다. A 씨가 키우던 15세 말티즈는 신기능저하와 무증상 만성췌장염을 앓고 있었는데, 처방식 사료는 물론 일반식으로도 BUN(혈액요소질소) 수치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BUN은 신장 기능을 나타내며 정상보다 높으면 신장 기능 이상을 의심할 수 있다.
그런데 A 씨는 식단을 받아보고 다소 의아했다고 한다. 말티즈가 섭취하는 하루 단백질 양이 기존의 식단보다 2.3배나 많았기 때문. 식단을 짜기 전 면담 때 B 씨가 “기존에 먹이던 식단보다 단백질의 양을 줄인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실제로는 단백질이 더 많이 함유된 식단이었던 것. 서울 시내 대학의 한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사람과 동물에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신장 기능이 떨어진 환자에게는 지방이나 단백질을 제한하라고 한다. 고단백의 식단을 짜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A 씨는 “우리 아이(말티즈)가 밥 이외에 간식이나 음수를 위해 타먹는 유산균에서도 단백질이 확보되기 때문에 식이 단백질을 적정선에서 맞춰야 한다고 몇 번 말했다. 신기능저하인 사람이 평소 200그램의 고기를 먹는다고 가정할 때 갑자기 400~600그램을 먹어도 좋다고 한 것과 똑같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수의사인 B 씨가 “이 식단대로 먹으면 BUN 수치가 떨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 점도 A 씨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A 씨는 식단이 다소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B 씨의 ‘전문성’을 믿고 말티즈에게 식단대로 밥을 내어줬다고 설명했다. A 씨는 “수의사가 짜준 식단이니 믿었다”며 “이 식단대로 먹고 얼마 안 가 BUN 수치가 급상승했다. 분명히 신장 결석에 대해서 고지를 했었는데 정말 아이 상태에 맞는 식단이었는지 의문이 간다”고 얘기했다.
A 씨는 지난해 10월부터 11월 3일까지 말티즈에게 해당 식단을 토대로 음식을 먹였다. 직후 동물병원에 검진을 받은 결과 급성신부전 판정을 받았다.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됐고 결국 말티즈는 지난 7월 세상을 떠났다. 물론 노령견이기도 하고 평소 지병을 앓고 있었던 터라 식단과 말티즈 사망의 인과관계를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A 씨는 식단이 말티즈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분노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수의사 B 씨는 “반려동물의 건강 유지 및 향상을 위해서는 식단뿐 아니라 수의학적인 치료와 가정 내에서 관리 등 다른 주요 요소들도 따져봐야 한다”며 “질병에 걸린 환자의 식단에 대한 계획을 수립할 때는 전문가에게 가능한 한 환자의 모든 정보와 정확한 수의학 검진 결과들을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 수의사도 완전한 전문가는 아니다, 맹신은 금물
이렇게 병원이 아닌 곳에서 동물의 식단을 짜주고 돈을 받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다. 수의사가 아닌 일반인도 가능하다. 수술이나 투약은 의료행위에 해당하지만 식단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행위는 의료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동물병원에서 수의사가 정식 진료를 한 뒤 사료를 처방했다가 이상이 생겼을 경우 수의사가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고 오진에 따른 책임을 따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식단을 짜주는 경우에는 식단을 제공한 주체보다는 이것을 따른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명확하게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렵다.
수의사가 직접 만든 식단이 좋다는 보장도 없다. 다른 수의사 C 씨는 “수의사가 식단을 만든다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 볼 수는 없다. 수의사라고 해도 식단이 전체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성분 등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며 “보통 식이 변경을 할 때는 건강검진을 하고 그에 맞게 제대로 처방해야 한다”고 의견을 표했다. 서울 시내 다른 대학의 식품영양학과 교수도 “동물의 상태를 확인하고 실험이나 분석을 거쳐야만 적절한 레시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식단으로 인해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과정이 매우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식단과 발생한 피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동찬 법무법인 오현 변호사는 “식단 때문에 문제가 생겼어도 정말 식단 때문인지 혹은 나이가 들어서거나 다른 질병 때문인지 확인해야 하는데 사실상 입증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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