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나라에서도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들이 치료 목적으로 대마를 구입할 수 있게 된 지 100일가량이 흘렀다. 대마를 의약품으로 사용할 길이 열린 것은 대마 단속 48년 만의 일이었다. 과연 의료용 대마가 합법화된 후 처방은 얼마나 이뤄졌을까?
‘비즈한국’이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안전국 마약정책과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및 시행규칙(의료용 대마법)’이 개정·시행된 지난 3월 12일부터 6월 30일까지 대마 성분 의약품의 ‘취급승인’ 건수는 총 259건으로 나타났다. 이때 취급승인이란 처방과 동일한 말이다. 대마 성분 의약품은 식약처에 취급신청을 한 뒤 승인을 받은 환자에 한해 서울에 있는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희귀센터) 혹은 전국에 30개 있는 거점약국에서 공급된다.
# 국내 뇌전증 환자 40만 명…처방 건수는 259건
아직 시행 초기지만 대마 성분 의약품을 필요로 하는 환자 수에 비해 공급된 양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마 성분 의약품의 주요 소비층인 국내 뇌전증 환자만 40만 명을 웃돈다. 뇌전증을 앓는 자녀를 둔 황주연 씨는 “생각보다 의사들이 많이 처방해준 것 같다”면서도 “약을 복용하고 싶어 하는 환자들은 더 많다. 아직 (처방이) 제한적이다”고 말했다.
월평균 취급승인 건수는 65건에 그쳤다. 4월이 72건으로 가장 많았고 6월이 66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3월은 62건, 5월은 59건이었다. 식약처 마약정책과 관계자는 “취급신청을 해서 승인이 안 난 경우는 1건밖에 없다”며 “월별 승인 건수가 차이 나는 이유는 신청인들이 그 달에 신청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식약처가 조정하는 부분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취급승인 건수는 인구가 많은 지역일수록 많았다. 7대 특별·광역시 중 서울특별시가 76건으로 가장 많았고 부산광역시가 23건, 인천광역시가 13건, 대구광역시가 11건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울산광역시는 4건에 그쳤다. 9개 도 지역 중에서는 경기도가 60건으로 취급승인이 다소 활발했고 충청북도와 제주도가 2건을 기록했다.
# 치료 기회 늘리려면 건강보험, 오프라벨 확대해야
희귀·난치 질환자들에게 대마 성분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치료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취지를 살리려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국내 공급하는 대마 성분 의약품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지난 2월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보건복지부와 대마 성분 의약품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식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가격이 부담돼 취급신청조차 못하는 환자들도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공급을 허용한 대마 성분 의약품은 마리놀(MARINOL), 세사메트(CESAMET), 사티백스(Sativex), 에피디올렉스(Epidiolex), 총 네 종이다. 특히 수요가 많은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는 100mL 한 병당 165만 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다. 하루 2mL를 복용한다면 50일간 투여가 가능하다. 황주연 씨는 “형편이 웬만큼 되지 않으면 처방받기가 부담된다. 주변에 처방을 받았는데도 가격 때문에 못 사는 분들도 있다”고 밝혔다.
대마 성분 의약품에도 오프라벨(off label·허가범위 외) 처방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오프라벨은 적합한 약이 없거나 환자의 치료를 위해 의료기관이 식약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와 승인을 거쳐 의약품용도(적응증) 이외의 목적으로 처방하는 행위다.
현재 에피디올렉스의 경우 드라벳증후군(영아기 중근 근간대성 간질)과 레녹스가스토증후군(소아기 간질성 뇌병증) 환자에게만 처방된다. 강성석 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 대표는 “두 질환이 아닌 비슷한 병을 앓는 환자들 중에도 (대마 성분 의약품을) 먹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상당히 제한적으로 처방된다”고 의견을 표했다.
환자가 약을 공급받기까지 우려했던 것만큼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대마 성분 의약품을 구입하기 위해서 신청서와 진단서, 진료기록, 의학적 소견서 등을 제출해 환자가 식약처에 취급승인 신청을 하면 희귀센터에서 약을 수입한 후 환자가 수령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황주연 씨는 “신청하고 약을 받기까지 5일 정도 걸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대마 성분 의약품은 치료제가 아니다. 일시적 증상 완화를 위해 환자가 비싼 돈을 들여 살지 말지를 판단하는 것 아니겠느냐. 처음에는 (대마 성분 의약품이) 획기적인 약인 것처럼 얘기됐지만 (처방건수를 살펴보면) 실상은 다름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라고 설명했다. 건강보험 적용에 대해서는 “복지부와 논의 중이다”고만 짧게 답변했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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