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휴가철이다. 하루, 아니 1시간이 금쪽같다. 하지만 항공 지연으로 공항에서 1~2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잦아졌다. 항공편을 이용해 제주나 해외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이 많아진 만큼 항공 지연 역시 일상다반사가 된 것. 아예 지연을 염두에 두고 스케줄을 짜야 정상적인 휴가 일정을 보낼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많이 공항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일까. 왜 항공사들은 지연을 미리 예측하고 대처하지 못하는 것일까.
# 노선·승객 늘면서 지연도 늘어, 최악 공항·항공사는?
항공 정보 포털에 따르면 국내 항공사들의 여객은 2000년부터 2009년까지 4200만~5200만 명(회) 수준에서 유지되다가 2010년을 기점으로 큰 폭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는 2000년 대 말 진에어, 이스타항공, 티웨이 등의 저비용항공사(LCC)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 시점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국내선으로 시작한 LCC들이 단거리 해외 노선을 확충하면서 여객 수송도 크게 늘었다. 항공 지연 역시 늘어난 LCC의 운항스케줄과 관련이 깊다.
국내 항공사들이 국내외로 실어 나른 여객의 수는 2010년 6000만 명에서 2014년엔 8100만 명, 2018년에는 1억 1800만 명으로 증가했다. 매년 평균 9.6%의 상승률이다. 그 중 국제선 여객 수송은 2010년 4000만 명에서 2018년 8600만 명으로 늘었다. 국내선 여객 대비 매해 2배 수준이다가 2011년부터는 2배를 넘기 시작해 2018년에는 2.7배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항공 운송의 80%를 차지하는 국내 주요 공항인 인천과 김포, 제주 공항에서 뜨는 항공의 지연율도 함께 높아졌다. 국내 3대 공항의 평균 결항률이 2010년 0.4%이던 것에서 2014년부터 0.1%로 낮아져 2017년까지 유지되는 반면 지연율은 해마다 증가 추세다.
주요 국제선이 뜨는 인천공항의 경우 2010년 4.0%이던 지연율이 2017년에는 7.2%로 증가했고, 김포공항도 2010년 4.2%였던 지연율이 2017년엔 9.1%로 늘었다. 제주공항은 상황이 좀 더 심각해서 2010년 0.3%이던 것이 2017년 13.8%로 폭증했다.
중국의 사드보복이 시작되기 전, 중국 단체 관광객인 유커의 유입이 한창이던 2016년에는 김포의 지연율이 14.3%, 제주의 지연율은 22.1%이나 됐다. 제주의 경우 비행기 5대당 1대가 늦게 뜬 셈이다. 국내선은 30분 이상, 국제선은 1시간 이상 지연돼야 국토부 지연율 통계에 잡히는 점을 감안할 때 실제 지연율은 훨씬 더 높을 수밖에 없다.
# 연결시간 무시한 LCC의 타이트한 운항스케줄
소비자 배상신청 기준으로는 국내선 1시간 이상, 국제선 2시간 이상을 지연으로 본다. 이노바타(Innovata)와 배리플라이트(VariFlight)의 항공 출·도착 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공항에서 국제선 2시간 이상 지연 편수는 2018년 기준 아시아나항공이 1위로 1228건, 대한항공이 2위로 822건이었다. 제주항공이 429편, 티웨이항공이 389편, 진에어가 275편, 이스타항공이 204편, 에어부산이 156편, 에어서울이 111편으로 조사됐다. 건수로만 보면 풀서비스 항공사(FSC)가 더 많지만, 항공기수와 편수가 적은 LCC들이 지연율은 더 높다.
국내선에서 1시간 이상 지연된 국내 항공의 경우는 2018년 기준 진에어가 2034편으로 1위. 지연율은 10.6%다. 다음으로 이스타항공이 1640편으로 지연율은 13.3%를 기록했다. 반면 풀서비스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의 국내 지연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 아시아나항공은 1159편이 지연됐지만 지연율은 3.4%, 대한항공은 1029편으로 지연율 2.0%다.
이를 두고 항공업계 관계자는 “후속편의 연결시간이나 공항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LCC의 빡빡한 운항스케줄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보통 그라운드 타임(Ground Time)이라고 하는 항공기 연결은 최소 항공기 규모에 따라 1~2시간이 필요하다. 항공기 연결시간에는 수하물 하역·적재, 기내 청소, 기내식 운반, 간단한 정비 등을 하게 되는데 충분한 연결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연쇄적인 지연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공항 수용 능력 등 공항 사정 등에 따른 관제상의 이유도 있지만 그것까지 예측해 연결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항공사의 역할이다.
항공 배상신청을 대리하는 로에어 김민정 변호사는 “LCC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저렴한 항공료를 지불하는 대신 항공편 취소와 변경이 아예 불가하거나 수수료가 크다는 리스크를 감수한다. 작은 기체가 지난 위험도와 좁은 자리, 기내식과 담요 구매 등의 불편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며 “하지만 늦어지는 것까지 감수하고 LCC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싸게 타니까 뭐든 참으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소비자의 권리를 강조했다.
# 공정위 소비자분쟁 해결 기준 상 지연 배상은?
한 해 국내 공항의 항공 지연 건수를 합치면 6만~7만 건에 달한다. 비행기 한 대에 LCC 기준으로 평균 180여 명이 탄다고 쳤을 때 100만 명이 넘는 승객들이 지연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2018년 개정된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분쟁해결기준상의 항공사 지연에 대한 면책 사유는 다섯 가지. 국토교통부에서 정한 항공기점검, 기상사정, 공항사정, 항공기 접속 관계, 안전운항을 위한 예견하지 못한 조치 등으로 이를 항공사가 증명할 수 있어야 면책이 가능하다.
다섯 가지 사유 가운데 국내 항공사에서는 항공기 접속 관계에 의한 지연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대부분은 항공사 수익을 높이려는 무리한 운항 스케줄 편성과 여력기 미확보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유럽연합에서는 항공기 접속 관계를 지연의 면책 사유에 포함하지 않는다. 이 경우는 항공사의 직접 책임으로 규정하고 배상의 여지를 두고 있다.
승객들은 어떤 이유에서 항공편이 지연되고 있는지 명확한 설명을 듣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기상상황이나 공항사정이라고 둘러대는 승무원의 말을 무조건 믿기도 어렵다. 별다른 항공 지식이 없는 일반 승객이 면책 사유인지 아닌지를 직접 가려 적절한 보상을 받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히 지연에 대한 손해배상 기준은 있다. 국내선은 1~2시간 이내 지연 시 지연된 해당 구간 운임의 10%를 항공사로부터 배상받을 수 있다. 2~3시간 지연은 20%, 3시간 이상 지연은 30%다. 국제선의 경우는 2~4시간 지연 시 해당구간 운임의 10%, 4~12시간 지연 시 20%, 12시간 초과 지연 시 30%를 배상 받을 수 있다. 단 유류할증료와 공항세 등을 제외한 순수 항공 운임이 기준이다.
항공이 지연되면 먼저 승무원에게 지연의 이유를 확실하게 확인하는 것이 필수다. 승무원은 승객에게 지연의 명확한 이유를 설명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지연 이유가 면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을 때 승객은 항공사를 상대로 배상신청을 할 수 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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