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의 목표는 진정한 의미의 중간 미술 시장 개척이다. 역량 있는 작가의 좋은 작품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미술 시장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시즌 5를 시작하면서 이를 구현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식을 제시하려고 한다. 본 프로젝트 출신으로 구성된 작가위원회에서 작가를 추천하여 작가 발굴의 객관성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오픈 스튜디오 전시, 오픈 마켓 등 전시 방식을 획기적으로 제시해 새로운 미술 유통 구조를 개척하고자 한다.
동양의 가장 오래된 조형 언어인 서예는 자연 현상이나 이치에서 뜻을 추출해 함축된 형태나 상징 기호로 보여주는 예술이다. 19세기 우리나라 화가들은 이러한 서예의 본질에서 새로운 회화의 길을 찾으려고 했다.
즉, 글에 담긴 깊은 정신성을 그림으로 담아내려고 했던 것이다. 글자의 기운을 회화에 담으려는 노력인데, 문자의 형상미를 좇거나 서예의 필력으로 회화를 만들려는 시도들이었다. 이를 두고 미술사가들은 ‘글의 정신’ 혹은 ‘글자의 정신’이라고 칭했다.
서예의 예술성은 서양미술에서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195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나타난 새로운 추상미술운동 가운데 ‘타시즘’이라는 것이 있다. ‘얼룩’이라는 프랑스어 ‘타슈(Tache)’에서 나온 말로 작가의 자유로운 붓놀림을 중히 여기는 경향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적 미술 흐름으로 유행한 추상표현주의의 한 갈래인 타시즘은 필력과 거친 붓 터치, 붓에서 뚝뚝 떨어져 생긴 점 등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화선지에 붓으로 글씨 쓰듯 밑그림 없이 한순간에 무엇인가를 그려내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숙련된 손놀림과 순식간에 빈 화면을 구성할 수 있는 직관력 없이는 불가능한 그림이다.
서예의 기본인 직관적인 제작 태도를 서양에서 따라한 셈이다. 타시즘의 생명은 서예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필력에서 나온다. 그래서 타시즘을 ‘서법적 추상’이라고 부른다. 서예의 필법을 따라한 추상회화라는 얘기다.
이태량의 제작 태도도 서법적 추상 방법을 따르고 있다. 그는 어떠한 밑그림이나 계획적인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작업을 한다. 빈 캔버스를 그저 바라보다가 순식간에 붓을 잡고 무언가를 그려낸다. 색감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팔레트에 물감을 미리 짜놓지도 않는다. 즉흥적으로 물감을 선택하고 붓에 묻혀 비어 있는 캔버스에 선이나 면을 그린다. 마치 전사가 전투에 임하듯이.
완성된 그림도 그냥 스치듯 보면 미완성처럼 보인다. 작가 자신도 그림에서 손을 떼는 순간이 완결된 그림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림은 무질서한 낙서처럼 보이지만 일정한 질서가 보인다. 필력이 잘 드러나는 여러 성격의 선의 조화, 세련된 색채 감각, 숫자와 기호, 메모같이 보이는 문장들. 그리고 여백도 있는데 그의 회화에서 그림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서는 본능적 직관력이 잘 드러나 있다. 계획된 회화가 아니라 철저하게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그림이다. 그래서 필력과 세련된 감각이 작업의 성공 여부를 가늠한다. 이런 방법으로 그가 회화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는 인간이 해석하지 못하는 세상이 존재합니다. 그것을 표현하려는 노력의 결과가 제 작업입니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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