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디즈니 만화를 리메이크한 실사 영화 ‘알라딘’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어 디즈니는 ‘인어공주’ 리메이크 프로젝트에서 주인공 에리얼 역에 흑인을 캐스팅했다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해 찬사와 반발이 극단적으로 대립해,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보통 “더 다양한 공주가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디즈니 공주는 다들 비슷하게 생겼고, 백인처럼 생긴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번 에리얼 캐스팅은 이를 바꾸려는 디즈니의 전향적인 시도라는 거죠.
반대하는 사람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인어공주’는 원래 북유럽인 안데르센 원작에서 따왔습니다. 덴마크에서 일어난 이야기고, 원래 백인이 주인공인 이야기에서 왜 흑인이 나와야 하느냐는 비판입니다.
그러면 대체 인어공주로 캐스팅된 사람은 누구일까요? 오늘은 ‘인어공주’ 캐스팅으로 갑자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할리 베일리(Halle Bailey·19)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클로이와 할리(Chloe x Halle)가 재해석한 비욘세의 ‘베스트 띵 아이 네버 해드(Best Thing I Never Had)’.
할리 베일리는 미국 애틀랜타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LA)에서 자랐습니다. 2015년 그녀는 언니 클로에(Chloe Bailey)와 ‘클로이와 할리(Chloe x Halle)’라는 듀오를 결성했습니다. 클로이는 13세, 할리는 11세 때 일이었습니다. 둘은 유튜브에 비욘세 등 유명 흑인음악 뮤지션의 노래를 재해석해 부르며 관심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비욘세의 노래를 단순히 잘 부른 게 아닙니다. 자기식으로 편곡하고, 멜로디를 바꾸고, 화음을 넣어 전혀 다르게 재해석했죠. 이들 재능에 주목한 비욘세는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듀오를 출현시키고, 유럽 콘서트에 오프닝으로 세우는 등 본격적인 지원에 나섭니다.
비욘세의 ‘올 나이트(All Night)’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클로이와 할리.
전 영부인 미셸 오바마 또한 클로이와 할리의 광팬이었습니다. 미국 음악 축제인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WSX)’에서 미셸 오바마가 연설하기 전 오프닝을 클로이와 할리가 맡았습니다. 이후 미셸 오바마가 진두지휘한 ‘렛 걸스 런(Let Girls Learn)’ 캠페인의 주제가인 ‘디스 이스 포 마이 걸(This is For My Girls)’에 참여해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10대 흑인 소녀 가수로서 상징적인 존재가 된 셈입니다.
둘은 연기 활동도 병행했습니다. 최근 드레이크(Drake) 등 배우 출신의 가수가 늘고 있는데요, 이에 맞춰 클로이와 할리도 영화와 텔레비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프로젝트에 출연했습니다. 클로이와 할리가 쌍둥이 대학생 역으로 출연한 ‘그로운-이시(Grown-ish)’가 대표적입니다. 여기서 둘은 고정 출연은 물론, 직접 오프닝 음악을 프로듀싱하고 불렀습니다.
클로이와 할리가 부른 ‘그로운-이쉬(Grown-ish)’의 사운드트랙 ‘그로운(Grown)’.
클로이와 할리는 차트에서 성적이 좋았던 적이 없습니다. 10대인 클로이와 할리가 발매한 정규 앨범은 단 한 장이었습니다. 둘은 외모나 매력이 뛰어난 아이돌이라기보다는 진지하게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에 가까웠지요. 직접 곡을 쓰고, 다양한 악기를 연주해 편곡합니다. 그 음악을 집에 있는 홈레코딩 장비로 녹음합니다. 이런 진지한 아티스트에게 10대는 성공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일지 모릅니다.
그런 그들에게 너무도 빠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동생인 할리가 ‘인어공주’에 주인공 에리얼 역으로 캐스팅된 겁니다. 디즈니는 대체 왜 그런 결정을 한 걸까요?
먼저 ‘알라딘’의 성공이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기존 디즈니 실사 영화와 달리, 알라딘은 주인공 자스민을 도전적인 여성으로 만들고, 지니 역에 흑인 배우 윌 스미스(Will Smith)를 기용하는 등 새로운 맥락을 적극적으로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되었지요. ‘인어공주’를 같은 방법으로 재해석하겠다는 생각은 이상할 게 없습니다.
‘라이온 킹’ 프로젝트의 영향도 있어 보입니다. 영화 ‘라이온 킹’은 차일디쉬 감비노(Childish Gambino), 비욘세 등 가수를 적극적으로 기용했습니다. 또 아프리카 뮤지션과 협업해 아프리카 음악을 적극적으로 구현했죠.
‘인어공주’ 원작의 무대는 덴마크지만, 인어공주가 사는 곳은 ‘아틀란티카’라는 해저 국가입니다. 디즈니 만화영화 속 해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레게입니다. 캐리비안 흑인 음악이죠. ‘언더 더 씨(Under The Sea)’가 대표적입니다. 리아나(Rihanna), 로린힐(Lauryn Noelle Hill), 니키 미나즈(Nicki Minaj) 등이 모두 카리브해 출신이거나 캐리비안 흑인 음악을 불러 성공한 팝스타입니다. 비욘세의 초기 음악을 지휘했던 그의 아버지도 카리브해 출신이었으니, 캐리비안 흑인 음악이 힙합 못지않게 미국 음악을 지배해왔던 셈입니다.
‘인어공주’ OST 중 ‘언더 더 씨(Under The Sea)’. 레게음악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크게 성공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왜 디즈니는 할리 베일리를 인어공주로 택한 걸까요? ‘레게 음악영화를 대표할 수 있는, 가장 상징적인 10대 흑인 여성 가수’를 택해야 한다면, 클로이와 할리가 아마 가장 돋보일 겁니다. 10대 흑인 여성 가수 중 앨범을 낸 적이 있고, 비욘세와 해외 월드 투어를 해본 경험이 있으며, TV와 영화에 출연한 연기 경험이 있고, 흑인 영부인과 함께 캠페인 곡을 부른 경험이 있는 상징적인 가수이기 때문이지요.
디즈니가 라이온 킹처럼 ‘10대 흑인 여성 가수를 기용해 캐리비안 음악 뮤지컬을 만들겠다’면. 그리고 알라딘처럼 ‘흑인 공주를 통해 재해석을 하겠다’면 할리 베일리는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면 할리 베일리는 잘 한 선택이 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관객이 보기에 흥미롭고 재미있어야 합니다. 재료가 무엇이든, 이를 잘 요리해야 비로소 멋진 작품이 될 수 있겠죠.
다만 이 이야기는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인어공주’는 혁신적이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인어공주’는 디즈니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디즈니는 창업자 월트 디즈니의 죽음 이후 ‘인어공주’가 나오기 전까지 20년간 암흑기를 보냈습니다. 긴 시간 동안 디즈니는 흥행과 비평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지 못했지요.
클로이와 할리 - ‘워리어(Warrior)’
디즈니의 암흑기를 끝내고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작품이 바로 ‘인어공주’입니다. ‘인어공주’는 이전의 디즈니 영화와 많은 면에서 달랐습니다. ‘인어공주’는 당대의 혁신적인 뉴욕의 브로드웨이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만화 속 문어 마녀 ‘어술라(Ursula)’는 당대의 드랙 퀸(Drag queen·여장남자) ‘해리스 글렌 밀스테드(Harris Glenn Milstead·일명 디바인)’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인어공주’의 음악을 담당한 작곡가 앨런 멩켄(Alan Menken), 작사가 하워드 애쉬먼(Howard Ashman)은 브로드웨이의 당대 히트작 ‘리틀 숍 오브 호러’를 만든 콤비였지요.
스토리 또한 과거 수동적인 공주를 주변인이 구하는 이야기에서, 적극적인 두 여성이 대결하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남성 캐릭터들이 상황에 끌려 다니는 느낌마저 들지요. 지금 보기에는 편안한 추억의 작품이지만, 당대에는 가장 도전적인 작품이었던 셈입니다.
디즈니는 두 번째 전성기를 연 첫 작품 ‘인어공주’를 리메이크하기 위해 반드시 이전 못지않은 새로움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기존 ‘인어공주’가 당시 새로운 시도로 디즈니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작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이들은 ‘당대의 인어공주’처럼 혁신을 시도합니다. 뮤지컬 ‘해밀턴’과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를 만들었고, 라틴 음악을 잘 구사하는 린 매뉴얼 미란다(Lin-Manuel Miranda)를 음악에 기용했습니다. 그리고 레게음악 영화를 대표할 수 있는 10대 흑인 여성 가수를 영화에 주연으로 발탁했죠.
신인 흑인 가수를 인어공주로 선택한 디즈니의 결정, 분명 도박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작품으로 확인해 볼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1980년대 최고의 혁신을 다시 재현하려는 새로운 시도, 흑인 인어공주 할리 베일리였습니다.
김은우 NHN에듀 콘텐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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