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눈물은 나지 않았다. 32일간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광경을 실제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꿈 같았다. 눈앞에 놓인 산티아고 대성당은 웅장하고 아름다웠지만 자꾸 시선은 아래로 떨어졌다. 32일간의 순례를 되감아보기 위함이었다. 실제보단 추억이 아름다웠다. 성당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너른 광장에 우두커니 서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내일부터는 걷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해방감과 동시에 어색함이 밀려왔다.
몬테 데 고소에서 대성당까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알람은 아침 9시에 맞췄지만 습관이 들었는지 아침 6시 30분에 정확이 눈이 떠졌다. 베이컨과 달걀 스크램블로 전에 없이 느긋한 아침으로 배를 채웠지만 8시쯤 걸을 채비가 끝났다. ‘아, 오늘은 끝인가’라는 생각에 괜스레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내기도 했다. 마치 십수 년 만에 짝사랑하던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길 같았다. ‘내 상상과 다르면 어쩌지’라는 설렘과 걱정, 기대가 한데 섞였다.
광장 한가운데 서자 지난 저녁에 맞췄던 알람이 울렸다. 아침 9시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순례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다른 순례자들은 이렇게 이른 시간에 도착하지 않았다. 눈물이 펑펑 날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았다.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자 쥐어짜봤지만 헛수고였다. 오히려 허무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더 이상 노란 화살표가 길을 안내하지 않는 끝 지점이었다.
“순례를 마친 걸 축하해. 10년 전엔 성당이 거뭇거뭇 떼가 껴서 엄청 더러웠는데, 지금은 많이 벗겨냈네. 물론 공사 중이라 그 아름다움을 다 느낄 순 없지만, 훨씬 보기 좋네.”
메리였다. 어제 도착한 메리는 슬리퍼를 신고, 옆으로 매는 작은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마실 나온 듯했다.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고 우두커니 서 있는 날 보고 인사를 건넸다.
“그치?”
메리는 그 기분 다 안다는 듯 물었다.
“내가 그렇게 고생해서 왔지만 산티아고 대성당에 들어설 때 아무도 박수 쳐주진 않아. 그래서 조금은 허무하지. 하지만 그 노고와 교훈은 네 마음속에 남아 네 영혼이 알거야. 피니스테라에 가니? 아니면 묵시아까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순례길의 종착역이지만 보통 순례자들은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피니스테라까지 여정을 연장해 아쉬움의 끝을 붙잡다. 영화 ‘더 웨이’에서도 주인공 넷이 순례가 끝난 뒤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허전함에 말없이 멀뚱멀뚱 서 있다가 피니스테라로 발걸음을 옮긴다. 피니스테라는 이베리아반도 끝 바닷가 마을로, 옛 중세 유럽인에겐 그곳의 세상의 끝이었다. 순례자들은 피니스테라에서 옷과 신발을 태우고 가리비 껍데기에 음식을 올려 먹는 의식을 치른다.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고 한다.
“아니, 안 가려고. 거기까지 다녀오면 순례길에 다시 오르지 못할 거 같아. 아껴둘래.”
“그것도 좋은 생각이야. 정말 다시 올 거라면 나처럼 10년이나 걸리지 않길 내가 기도해줄게. 행운을 빌어!”
순간적인 결정이었다. 사실 피니스테라와 묵시아를 두고 대성당 광장에 들어오는 순간까지 고민했다. 일주일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시간은 넉넉했다. 이제껏 떠밀리듯 걸어왔는데, 마지막까지 빡빡하게 일정을 채워 걷고선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싶지 않았다. 갈 곳을 남겨둬야 다시 오고 싶을 것 같았다.
한 시간쯤 멍하니 서 있었을까. 순례자들이 광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로를 끌어안고 축하를 나눴고, 먼 여정을 함께해 정든 배낭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마중 나온 아들과 딸, 며느리, 손자를 안더니 무릎 꿇고 오열했다. 끝난 기쁨을 만끽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비로소 눈물이 찔끔 흘렀다.
정신을 차리고 대성당에서 100걸음 정도 거리에 위치한 순례자 사무소를 찾았다. 순례를 증명하기 위해서 중간중간 마을에서 스탬프를 순례자 여권에 찍는다. 순례자 여권을 사무소에 내고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왔다고 말하면 직원이 증명서에 799km를 손으로 적어준다. 증명서를 손에 들고 나오는 길에 마지막 여정을 함께했던 이탈리아 소녀 아나리사를 만났다. 리사의 얼굴에 웃음이 만개했다.
“무아! 왔구나! 내일 안 걷는다니 믿기지가 않아! 죄스럽기까지 하다니까.”
리사는 뺨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맞대는 인사를 걸어왔다. 어색한 제스처로 조우한 기쁨을 표현한 뒤 함께 대성당에서 열리는 미사에 참석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선 순례자를 위해 매일 미사를 연다. 내부는 이미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미사는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되는데, 대형 향로가 공중을 휘젓는 압도적 광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처음과 마지막에 울려 퍼지는 성가대의 합창은 순례자의 마음을 때린다. 합창이 끝날 때쯤 주위를 둘러보면 훌쩍거리는 순례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눈물로 순례의 고됨을 씻는다. 비로소 순례가 끝나는 셈이다. 미사를 끝내고 나오면 정말 순례가 끝났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제 돌아가면 뭐 할 거야?”
“몰라. 너는?”
“나도 모르겠어. 일단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대학을 졸업하려고.”
“무아, 근데 걱정돼? 나는 이상하게 걱정이 하나도 안 된다? 뭐든 하겠지 뭐. 우린 800km도 걸었는걸!”
리사는 진정한 이탈리아식 카르보나라를 선사하겠다며 알베르게의 공용 주방으로 이끌었다. 참고로 이탈리아식 카르보나라는 크림을 사용해 국물을 자작하게 끓이지 않고, 삶은 면을 후라이팬에 볶다가 불을 끄고 날달걀과 치즈를 넣어 크리미하게 만든다. 한국식 카르보나라 만드는 법을 설명했더니 “이탈리에서 가서 그렇게 요리하면 칼 맞을지도 모른다”는 다소 겁나는 답변을 듣기도 했다.
“무아, 나 사실 계획은 없지만 두렵지 않아. 오히려 설레.”
“응?”
“생각해보니 비우는 건 겁나고, 채우는 건 설레는 일이더라고. 비울 땐 내가 갖고 있는 걸 잃는 기분이야. 이건 버리면 안 돼, 저것도 버리면 안 돼, 혹시 잘못 버려서 나중에 절실히 필요하면 어쩌지? 이런저런 걱정이 들기 때문이지. 근데 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어. 사실 다 버려야 채울 수 있는데, 여태 그걸 몰랐던 거야. 아니, 알지만 모른 체한 거지 겁나니까. 지금은 다 버리고 채울 수 있는 그릇을 넓힌 기분이야.”
고개를 끄덕이며 카르보나라를 국수 먹듯 후루룩 들이켰다. 리사는 면과 함께 먹으라며 돼지 턱살 한 조각을 덜어줬다. ‘진정한 카르보나라’의 맛은 돼지 턱살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카르보나라를 먹으려고 내가 이 길을 걸었나봐. 이 여정을 떠나지 않았다면 진짜 카르보나라 맛을 몰랐을 거야”라며 리사를 향해 엄지를 추켜세웠다.
‘아! 산티아고’ 연재를 마치며
돌이켜보면 순례길을 걷던 시간은 비우는 시간이었다. 현실로 돌아와 손에 쥔 게 많아질수록 괴로웠고, 그 시절이 떠올랐다. ‘아! 산티아고’를 연재하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순례길 가세요”가 아니라 “한 번쯤 손을 펴서 다 내려놓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라고 현실에 찌든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손을 펴서 가진 것을 조금 내려놓으면 그만큼 다른 것들을 쥘 수 있다. 오늘도 내가 가진 걸 잃진 않을까 끙끙대지 않는 하루이길 바라본다.
박현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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