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편집은 힘이 셉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영상으로 꾸며낼 수 있지요. 최신 기술을 쓰지 않아도 전통적인 편집 기술로 순서나 말을 바꾸면 실제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사실로 만들 수 있습니다.
SNS, 유튜브 등 인터넷 플랫폼의 대세가 영상으로 바뀌면서, 편집 영상의 유통 또한 인터넷으로 그 중심이 바뀌었습니다. 더 빠르게, 더 많은 사람에게 영상을 퍼뜨릴 수 있게 된 거지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영상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상의 유통이 문제가 되는 사례가 나타났습니다. 한 의원의 영상을 편집, 왜곡한 영상이 큰 화제가 된 겁니다. 오늘은 한 정치인의 발언을 왜곡한 영상의 파급 효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낸시 펠로시(Nancy Pelosi)는 현재 미국 하원의장입니다. 가장 오랜 경력을 가진 민주당 의원이기도 하죠.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과 셧다운 관계로 대립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 장벽 예산을 포기해 낸시 펠로시에게 패배하는 모양새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롱의 박수’를 치는 장면으로 더욱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죠.
그녀의 영상이 최근 영미권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낸시 펠로시가 취한 듯 말하는 영상이었습니다. 실제 발언 영상을 교묘하게 편집해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만든 것이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가 소개한 낸시 펠로시 가짜 영상 논란.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로 이 영상을 소개했습니다. 트럼프뿐만 아니라, 영미권 인터넷 전체를 뜨겁게 달궜죠. 낸시 펠로시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의 감정을 그대로 저격한 비디오로 소비된 겁니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페이스북은 낸시 펠로시의 영상을 지워달라는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정치적인 풍자 등에서 페이스북은 중립을 지킨다는 이유에서였죠. 심지어 경고 메시지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낸시 펠로시는 이를 두고 “트럼프와 러시아 정부가 함께한 2016 대선 조작에 페이스북이 함께한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비판이 커지자,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나서 연락을 취했으나 낸시 펠로시는 받지 않았습니다.
페이스북은 자신들이 미디어가 아닌 소셜미디어이며, 메시지 선택은 사람이 하는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책임감을 알고 있으며, 이를 위해 팩트 체크단을 만들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낸시 펠로시 왜곡 영상은 화제가 된 후로도 오랫동안 경고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나오기 시작했지만, 이미 민주당 지지자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은 후였지요.
낸시 펠로시 영상 원본과 왜곡 편집된 버전의 비교.
사실 이 편집 자체는 대단한 영상도 아닙니다. 속도를 조절해서, 명확하고 명료한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처럼 느리게 표현한 데에 불과하죠. 누군가는 이를 가짜 비디오라기보다 짓궂은 농담이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섣불리 이런 영상을 지우는 일 또한 또 하나의 ‘검열’이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죠.
다만 이번 사건을 통해 페이스북이 신뢰를 잃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됐습니다. 페이스북은 이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개인정보를 팔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는데요. 이번 사건도 특정인에게는 페이스북에 대한 불신을 굳히는 계기가 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왜곡된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세상입니다. 편집의 힘은 기성 방송사에서도 지겹도록 써온 겁니다. 왜곡된 영상에 대한 책임이 왜 플랫폼에 있다는 건지, 인터넷 플랫폼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제는 인터넷 플랫폼에 모두가 의지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까요. 플랫폼의 책임을 보여주는 사건, 낸시 펠로시 영상 논란이었습니다.
김은우 NHN에듀 콘텐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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