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인터넷에서 우주의 모습과 신경세포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주와 신경세포의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것을 근거로 우리 우주가 어쩌면 아주 거대한 생명체의 몸속일 수도 있다는 상상력을 펼치기도 한다.
(재미있는 상상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그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해서 차원이 다른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연결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얼핏 보면 그물처럼 얼기설기 얽혀 매듭이 지어져 있는 듯한 모습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우주와 신경세포는 스케일이 완전히 다를 뿐 아니라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으로 만들어진 세계다.
신경세포는 큰 나뭇가지에서 작은 나뭇가지 여러 개가 갈라져 나오듯이 하나의 세포에서 여러 갈래의 세포로 분화되면서 만들어진다. 중심의 큰 매듭에서 여러 갈래의 작은 가닥들로 분화되어 나간다.
우주의 경우는 반대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 시절 우주에 분포하던 암흑물질 등 다양한 물질이 오로지 중력에 의해 이끌려 서서히 모이면서 구조를 만들어간다. 물질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그물의 매듭처럼 형성되고 그곳을 중심으로 모여들어가는 물질의 흐름이 마치 매듭에서 퍼져나가는 그물 가닥처럼 보이는 것이다. 중력에 의해 가닥이 먼저 잡히고 그 가닥들이 모이는 곳에 매듭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주의 전반적인 모습을 우주 거대 구조(LSS, Large Scale Structure)라고 한다.
우주 초기 중력 매듭을 중심으로 암흑물질이 흘러들어가면서 긴 필라멘트(Filament)를 형성하게 된다. 이 가닥들이 이후 우주의 거대 구조를 만드는 기본 골격 역할을 한다. 암흑물질이 다져놓은 이 초기의 필라멘트를 따라 이후 가스 물질 등 다양한 물질이 흘러들어가며 필라멘트끼리 만나고 교차하는 지점으로 모이게 된다. 필라멘트끼리 연결되는 우주 거대 구조의 매듭(knot)에 해당하는 지역에 물질이 모이면서 이후 이곳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은하단이 빚어진다.
필라멘트를 따라 물질이 모여 흘러가면서 필라멘트와 필라멘트 사이 거의 물질이 분포하지 않는 텅 빈 공간들이 많이 형성된다. 이런 텅 빈 공간을 보이드(void)라고 한다. 우주 거대 구조의 모습을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비눗방울 거품으로 가득 찬 욕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비눗방울 속 텅 빈 공간을 보이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비눗방울 거품끼리 만나는 얇은 면이 바로 필라멘트다.
만약 비눗방울 거품으로 가득 찬 욕조의 단면을 잘라서 본다면 텅 빈 보이드와 필라멘트들이 그물처럼 얽혀 있는 우주 거대 구조와 같은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그물처럼 얽힌 우주 거대 구조의 모습을 우주 거미줄(cosmic web)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우주 거미줄 가닥의 흔적들은 우주 곳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오래전 빅뱅 직후 필라멘트를 따라 물질을 흘려보내며 우주의 구조를 다잡아갔던 암흑물질 디자이너가 남긴 낙관이라고 볼 수 있다.[1][2]
최근 천문학자들은 자기장 관측을 통해 처음으로 암흑물질 디자이너의 낙관을 확인했다. 이번에 천문학자들은 지구에서 약 10억 광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두 은하단 아벨 0399와 아벨 0401이 서로 가까워지면서 충돌하려는 현장을 관측했다. 그리고 바로 이 현장에서 약 1000만 광년 거리의 두 은하단을 연결한 아주 희미한 우주 ‘오작교’의 존재를 확인했다. 두 은하단을 잇고 있는 우주 거미줄 가닥의 흔적을 찾은 것이다.
암흑물질들이 중력에 의해 모이고 흘러가면서 만든 우주 거대 구조의 필라멘트 가닥. 암흑물질이 모이면서 초기 우주의 인프라를 구축해가는 과정을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한 것이다. 영상 속 검게 표현된 것이 암흑물질의 분포를 나타내며 밝은 노란색은 암흑물질을 따라 모이는 가스 물질의 분포를 나타낸다. 암흑물질 가닥이 꼬여 있는 매듭을 중심으로 가스가 많이 모이면서 거대 은하단이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영상=Simulation: Y-Y. Mao, R. Wechsler, KIPAC/Stanford/SLAC; Visualization: R. Kaehler, KIPAC/SLAC
우주 공간에 분포하는 이런 자기장은 사실 세기가 아주 약하다. 지구에서 나침반의 바늘을 움직이게 하는 지구 자기장보다 더 미약하다. 그래서 우주 공간 속 자기장을 관측하고 파악하는 것은 아주 까다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약한 자기장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우주 공간을 떠돌아다니는 아주 작은 먼지 티끌이나 가스 구름 속 분자들은 우주 공간 속 자기장에 따라 누워 있는 방향이 결정되고 또 자기장을 따라 입자들이 흘러들어가는 방향이 결정된다.
천문학자들은 우주 공간 속 자기장의 흔적을 어떻게 추적할까? 아주 에너지가 강한 전자들이 자기장을 따라 움직이면 서서히 가속되면서 방향을 틀어 자기장에 수직한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게 된다. 전자에게 자기장이 지속적으로 가해지면 거의 빛의 속도에 가까운 아주 빠른 속도로 전자가 가속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가속 운동을 하게 되면 전자는 서서히 지치면서 아주 특정한 에너지를 잃어버리며 바깥으로 방출하게 된다. 전자가 계속 자기장 속에 갇혀서 원 또는 나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동안 특정한 에너지의 빛을 방출하는 이러한 현상을 싱크로트론 복사(synchrotron radiation)라고 한다.
싱크로트론 복사 덕분에 블랙홀 자체는 빛을 내지 않지만 블랙홀이 뿜어내는 강한 제트에서 나오는 싱크로토른 복사로 블랙홀의 흔적을 관측으로 확인할 수 있다. 초특급 먹방을 찍는 당사자는 볼 수 없지만 폭발적인 식사로 토해내는 용트림의 흔적을 통해 그 먹방의 주인공의 모습을 상상하는 셈이다. 영상=NASA's Goddard Space Flight Center
천문학자들은 바로 이 싱크로트론 복사의 흔적을 쫓기 위해 아주 특별한 망원경을 활용했다. 이번 관측은 낮은 주파수 어레이(Low-frequency Array) 또는 로파(LoFar)라고 불리는 안테나 어레이를 활용했다. 로파 어레이는 대략 10~240메가헤르츠의 아주 낮은 주파수 영역에서 우주를 관측한다. 유럽 전역에는 2만 5000개가 넘는 납작한 전파 안테나들이 총 51개의 기지에 분산, 설치되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접시 모양의 안테나가 아닌 바닥에 깔린 납작한 태양판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3]
유럽 전역에 설치된 바로 이 납작한 안테나들을 동원해 천문학자들은 두 은하단 아벨 0399와 0401 사이를 연결하는 자기장 오작교의 흔적을 확인했다. 이는 마치 지구의 자기장을 따라 극지방에 모여 있는 하전된 입자들이 만들어내는 오로라의 모습을 본 것과 비슷하다. 지구에서 약 10억 광년 거리에 떨어진 채 두 은하단 사이에 1000만 광년 길이로 펼쳐져 있는 거대한 우주 오로라(Cosmic Aurora)의 모습을 본 셈이다.[4]
이번 관측을 통해 드디어 천문학자들은 오래전 빅뱅 직후 우주의 초기 인프라를 구축하고 형태를 다잡아갔던 디자이너, 암흑물질의 역할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암흑물질이라는 디자이너의 화풍은 아주 뚜렷하고 독특하다. 초기 우주에 존재했던 아주 미세한 밀도와 중력의 차이에서 시작해 물질이 모여들어가기 시작한다. 그 초기 씨앗을 중심으로 물질이 점점 더 뚜렷하게 모여 흘러가면서 중력의 매듭을 중심으로 혈관이 이어지듯 물질이 흘러가게 된다. 이러한 필라멘트는 건물을 지을 때 먼저 자리 잡는 골조처럼 거대한 우주의 구조를 지탱하고 다잡아가는 골격 역할을 한다.[5]
초기 우주의 작은 밀도 씨앗에서 시작해 초기 우주의 인프라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재현한 시뮬레이션. 초기 우주의 디자이너 암흑물질은 아주 분명한 낙관을 자신의 작품에 남긴다.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 사이를 연결하는 크고 작은 왜소 은하들은 무작위하게 분포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 두 은하를 따라 특정한 방향으로 길게 나열되어 정렬되어 있다. 이러한 은하들의 정렬(galactic alignment)은 초기 우주에 은하들을 만들었던 암흑물질의 필라멘트의 흐름을 반영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 은하 역시 바로 이러한 초기 우주의 인프라 건설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중력 매듭에 자리하고 있다. 초기 우주의 모습을 다잡은,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손’ 암흑물질들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졌고 우리가 살아갈 우리 은하라는 거대한 도시의 자리가 정해졌다. 인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이 거대한 우주가 구축되고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던 데에는 긴 세월 동안 쉬지 않고 활약해준 숨은 주역들의 노력이 있었다.
우주의 모습은 마치 어두운 밤, 높은 빌딩이나 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모습과 비슷하다. 우리의 도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활약 덕분에 도시의 기본 골격을 완성하고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어두운 밤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자동차들의 행렬, 도시 블록블록 마다 이어지는 불이 꺼지지 않은 채 이어져 있는 빌딩들의 흔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우주는 바로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활약 덕분에 바로 우리 세상의 인프라가 구축될 수 있었다. 바로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로 인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소설 ‘어린왕자’ 중에서
[1]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1742-6596/31/1/004/meta
[2] https://link.springer.com/chapter/10.1007/3-540-45043-2_3
[3] https://www.aanda.org/articles/aa/abs/2013/08/aa20873-12/aa20873-12.html
[4]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64/6444/981
[5]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11717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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