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5월 전 세계 스타트업과 테크 업계의 관심은 온통 우버의 기업공개(IPO)에 쏠렸다. 페이스북과 알리바바 이후 최대 규모의 테크 IPO로서, 한때 기업 가치가 미국의 빅3 자동차 메이커 GM, 포드, 크라이슬러를 합친 것보다도 높은 12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 공유 경제와 스타트업의 대명사 우버가 마침내 상장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우버의 기업가치가 IPO 당시에는 많이 현실화되어 820억 달러(96조 원)까지 떨어졌으나, 여전히 엄청났다.
하지만 우버라고 해서 시장 영역과 고객의 니즈를 모두 장악한 것은 아니다. 우버만큼의 규모는 아니지만 비슷한 사업 모델을 가진 리프트(Lyft), 중국의 디디추싱(Didi Chuxing) 등 직접적인 경쟁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아직 채워지지 않은 시장과 고객 수요의 빈틈을 노리고 속속 모빌리티 시장에 뛰어드는 스타트업들이 많다. 그만큼 모빌리티 시장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그 중 하나가 우버의 IPO 바로 며칠 전인 5월 8일에 3800만 달러(440억 원)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한 프랑스의 히치(Heetch)이다.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님에도 우버의 기업 가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한지라 거의 주목을 못 받았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꽤나 재미있는 스토리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이번 라운드의 메인 투자자인 토탈 에너지 벤처(Total Energy Ventures: TEV)를 주목할 만하다. 먼저 2013년에 창업한 이 스타트업부터 살펴보자.
프랑스의 차량 및 승차 공유 앱·서비스 시장은 이미 우버를 비롯하여 독일의 다임러 벤츠가 2017년에 인수한 쇼푀 프리베(Chauffeur-Privé: 개인 운전기사를 뜻하는 프랑스어. 비프랑스어권 확장을 위해 올해 초 Kapten으로 이름 변경) 등 쟁쟁한 업체들이 경쟁하는 레드 오션이다. 이 피 튀기는 시장에서 히치가 주목한 틈새는 20대 젊은이들이었다.
가령 파리 외곽의 위성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이 파리의 클럽에서 밤늦게까지 놀다가 대중교통이 끊어지면 어떻게 집에 돌아갈 것인가? 이들과 마찬가지로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드라이버 역할을 해서 클럽에 갈 비용을 번다는 것이 히치가 생각한 시나리오였다.
파리 주변부 젊은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간파한 히치는 초기에는 거의 순수한 P2P 플랫폼으로서 드라이버 등록을 간편화하고 수수료도 경쟁사보다 훨씬 싸게 하는 등의 전략으로 상당수의 열성 팬을 확보했다. 지금도 히치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의 드라이버는 귀걸이에 레게 머리를 한, 클럽에서 흔히 만날 법한 쿨한 젊은 남자를 모델로 한다. (나 같으면 밤늦은 시간에 이런 외모의 드라이버가 태워주는 차로 귀가하고 싶지는 않을 듯한데 어쨌든 나는 이들의 타깃 계층은 아닐 테니 어찌 보면 정확한 세그멘트 타기팅이라 하겠다.)
히치는 드라이버 등록을 너무 쉽게 한 것이 화근이 되어 2017년 초에 규제 당국의 철퇴를 맞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을 통해 초기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순수한 차량·승차 공유를 표방했던 우버의 초기 모델과 유사하면서도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또래 젊은이들의 충성도 높은 커뮤니티를 확보한 히치는 사업 모델만 손보면 충분히 성장 가능성이 있어 보였던 것이다. 같은 해 9월 런던의 펠릭스 캐피털로부터 1200만 달러, 4개월 뒤 추가로 2000만 달러를 합쳐 총 3200만 달러(370억 원)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한 히치는, 한 가지 전략을 더 추가했다.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로의 진출이다.
사하라 사막 이북의 북아프리카 3국(알제리, 모로코, 튀니지)을 비롯해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들은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지속된 식민 통치의 잔재가 남아 있어 여전히 프랑스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유럽이나 북미 등 서구 선진국이나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비해 아직 개발이 덜 되어 있고, 교통 인프라 또한 열악하다. 하지만 ‘검은 대륙’ 아프리카는 가장 ‘젊은 대륙’이자 아시아를 제외하고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히치의 창업자들과 투자자들은 파리 승차 공유 시장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던 ‘젊은 층 공략, 저렴한 수수료, 커뮤니티 중심’ 등의 특성이 아프리카에도 적합하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즉 선진국에서 특정 세그먼트의 틈새시장에 먹혔던 방식이 저개발·고성장 국가의 열악한 인프라의 빈틈을 메우는 전략으로 기능할 수도 있더라는 것이다. 언어 장벽 또한 낮아, 프랑스에서 사용하던 앱과 엔진을 약간만 고치면 바로 아프리카 국가에도 적용할 수 있다.
히치가 처음으로 진출한 아프리카 국가는 모로코와 코트디부아르였다. 특히 모로코의 중심 도시인 카사블랑카에서의 선전이 눈에 띄는데, 진출한 지 2년도 채 되기 전에 파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으로 부상했다. 카사블랑카 내 19개의 택시 조합과 협업해 히치 앱으로 택시 호출을 가능하게 하는 등 규제 환경에도 잘 적응했다. 프랑스의 복잡한 사법 체계와 까다로운 규제 환경에서 이미 쓴맛을 본 히치에게 모로코의 환경은 식은 죽 먹기였던 모양이다.
히치는 모로코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알제리, 카메룬, 세네갈 등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국가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이번 시리즈 B 투자는 이를 위한 맞춤 투자였던 셈이고, 이 부분이 흔히 ‘슈퍼메이저’로 불리는 세계 6대 석유 회사 중 하나인 토탈의 스타트업 투자 방향과도 맞아떨어졌다. (이 대목에 관해서는 다음 칼럼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우여곡절을 겪은 히치의 성공 스토리는 이미 막강한 경쟁자들이 자리 잡아 빈틈이 없어 보이는 시장에서도 얼마든지 잠재된 수요를 찾아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시장이 모빌리티와 같이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막대한 경제·사회적 임팩트를 가진 분야라면 말할 것도 없다. 히치와 같이 특정 대상 고객 집단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밀착 해결해 충성도 높은 또래 집단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이제는 거의 교과서적이라고 할 확장 전략 또한 여전히 유효함을 알 수 있다.
필자 곽원철은 한국의 ICT 업계에서 12년간 일한 뒤 2009년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현재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 담당으로 일하고 있으며, 2018년 한-프랑스 스타트업 서밋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기재부 주최로 열린 디지털이코노미포럼에서 유럽의 모빌리티 시장을 소개하는 등 한국-프랑스 스타트업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곽원철 슈나이더일렉트릭 글로벌전략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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