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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출규제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 '무반응' 까닭

기습 발표에도 '정치적 이슈'라 대응 자제…반도체 산업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 우세

2019.07.03(Wed) 18:16:43

[비즈한국] 일본 정부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 세 가지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을 규제할 방침이라고 지난 1일 밝혔다. 우리나라 대법원이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린 데 따른 보복 조치로 해석된다.

 

4일부터 규제 대상에 오르는 품목은 OLED 디스플레이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초정밀 설계에 필요한 포토 레지스트, 웨이퍼 불순물 세척에 사용되는 고순도 불화수소다. 세 품목 모두 일본 기업의 수입 의존도가 70~9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품목은 수출할 때마다 일본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며, 허가를 받기까지 통상 90일 정도의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수입 자체가 막힌 것은 아니지만 일본 정부의 태도에 따라서 얼마든지 공급량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통제나 다름없다.

 

G20 정상회담 직후 일본은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를 발표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 자유 무역 의지에 대한 의심을 받고 있다. ​G20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청와대 제공

 

수출 규제 발표 직후 한일 양국 언론은 물론 전 세계 주요 언론이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방침만 밝힌 상황.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반도체 기업 관계자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말을 아끼면서도 공통적으로 한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이번 일본의 반도체 핵심 수출 규제가 산업적 이슈가 아닌 정치적 이슈라는 사실이다.

 

# 대체 불가능한 반도체 소재는 없다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대중의 관심은 한마디로 우리나라 핵심 산업인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느냐에 집중된다. 실제로 이들 품목이 생산에 따른 필수 소재인 것은 분명하며, 현재 각 사에는 완제품을 포함해 3~4개월의 재고만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일본 기업이 아닌 다른  나라의 기업 혹은 국내 생산으로 인한 대체 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이 오랜 기간 연구 개발을 통해 해당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가 반도체 생산을 중단해야 할 정도로 대체 불가능한 품목은 아니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대체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는 일부 국내 기업의 주가가 요동치고 있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3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호텔에서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19 코리아’​를 개최하고 향후 전략을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 기자들로부터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질문이 나왔지만 삼성전자 측은 극도로 말을 아끼며 원론적으로 대응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수십 년간 반도체 업계에 종사해온 한 관계자는 “특정 국가의 특정 기업만 생산 가능한 반도체 소재는 사실상 없다고 본다”면서 “시간이 조금 걸리고 그에 따른 약간의 기회비용이 발생할 뿐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일본의 수출 규제가 국내 반도체 기업에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가 생산 원가보다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산업적 특성 때문이다. 따라서 수요는 그대로거나 확대되는 상황에서 공급이 둔화되면 반도체 가격이 오르게 되고 이는 수익성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최근 몇 년간 폭발적인 수요로 인해 반도체 산업이 호황을 누린 이른바 ‘슈퍼사이클’이 끝나가고 있는 시점이라서 더욱 반갑게 느껴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소재 국산화를 위한 상당한 예산을 투입함에 따라 반도체 산업에 더욱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3일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정부 합동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의 규제 품목과 관련된 소재에 매년 1조 원가량을 집중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일본은 진짜 무역전쟁을 원할까

 

이렇듯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을 종합하면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가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에 어떤 타격을 입힐지는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오히려 호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올 정도로 다양한 관측이 쏟아지는 상황. 이는 통상적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수입 규제와 달리 수출 규제는 국제 역학적인 다양한 이유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는 이번 수출 규제가 오는 7월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강대강’ 대응에 나설 경우 자칫 아베 신조 총리와 자민당의 선거를 돕는 꼴이 된다.

 

오히려 우리 정부가 차분하게 대응하자 일본에서는 단 하루 만에 규제 품목이 더욱 확대될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본 ‘교도통신’​은 지난 2일 “(수출 규제 품목이) 군사 목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전자 부품 및 관련 소재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어떻게든 우리 정부를 자극하려는 모양새다.

 

EUV 공정은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 세계 1위인 TSMC를 추격할 핵심 기술로 꼽힌다. 일본이 한국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말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우리 입장에서는 이번 무역 규제가 선거용으로 그치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반도체 산업에 미칠 영향은 차치하고서라도, 미중 무역전쟁과 같이 전면적인 통상마찰로 이어지는 것은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규제 발표 이후 관련 품목을 생산하는 JSR, 토요오카공업, 신에츠화학 등과 일본무역협회는 사전에 어떠한 협의 없이 이뤄진 조치라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내놨다.

 

우리나라는 2000년 이후 지금까지 계속 대일 무역적자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2000년 약 12조 8400억 원의 적자에서 계속 확대돼 2018년에는 적자액이 무려 27조 2050억 원에 이르렀다. 얼핏 보면 이번 기회에 적자폭을 줄여야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주요 수입품목이 첨단 소재 및 부품이라는 점에서 수입에 차질을 빚을 경우 우리 제조업 전반이 타격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 역시 수출규제를 계속 끌고 가기에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 가령 수출 규제품목에 오른 포토 레지스트는 기존 공정에 사용되는 제품이 아닌 차세대 EUV(극자외선) 공정에 사용하는 제품만으로 한정했다. 따라서 지금까지 주력하던 제품 양산에는 큰 문제가 없는 상황. 반면 차세대 반도체 공정 개발에는 다소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EUV 공정 기반 차세대 비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한 곳이 애플, 퀄컴 등 주로 미국 기업이라는 점이다. 또 이들 미국 기업이 완제품 생산을 의뢰하는 기업은 대부분 중국에 몰려 있다. 따라서 일본의 수출 규제가 장기화되고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의 제품 양산이 차질을 빚게 될 경우 이는 자연스럽게 미국, 중국 기업에도 여파가 미치게 된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포토 레지스트 수출 규제가 EUV에 한정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통해 “일본 정부의 조치가 우리 기업의 반도체 생산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으로 본다”며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일본 기업의 피해도 불가피한 만큼 이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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