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100km 지점을 통과했을 때, 살이 8kg 정도 빠졌지만 더할 나위 없이 건강했다. 순례 중엔 물을 하루 평균 3리터 이상 마셨고 새벽에 일어나 걷고, 저녁엔 양껏 먹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면 꼬박꼬박 화장실에 가게 됐다.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은 단단해졌고, 가방을 메는 요령도 나름 터득해 어깨가 아프지도 않았다.
처음엔 한 시간에 3.5km 걷기도 벅찼지만 몸이 가뿐하니 어느새 한 시간에 5km를 거뜬히 걸었다. 순례자들은 주체할 수 없는 속도를 문득문득 자각하며 더 자주 걷기를 멈추고 더 오래 휴식을 취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아껴둔 초콜릿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 기분이었다.
“무아, 우리 얼마나 앉아 있었어? 몇 시야?”
“지금 11시, 한 30분쯤 앉아 있었나?”
“아직 시간 많이 남았네. 맥주나 한잔 더 하고 가자. 괜찮지?”
동행하던 이탈리아 소녀 아나리사가 말했다. 안 될 거 없었다. 이때쯤엔 아무리 쉬어도 시간이 남았다. 쉬다가도 시간 보면서 화들짝 놀라 출발하던 예전과는 달랐다.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표석을 바라보며, 숫자가 작아지는 것에 아쉬워했다. 카사노바(Casanova)라는 마을을 지나 뿔뽀(스페인식 문어 요리)가 유명한 멜리데(Melide)를 향하는 숲길을 걷는 중에 보슬보슬 비가 내렸다. 갑작스레 눈물이 날 것 같아 나보다 걸음이 빨랐던 리사를 먼저 보냈다.
우의를 뒤집어썼다. 다리에 힘이 넘쳤지만 걷다 지친 순례자인 양 터덜터덜 땅을 보며 걸었다. 눈앞이 흐려지면 빗물이 얼굴에 흘러 불편한 듯 손바닥으로 얼굴 전체를 쓸어내렸다. 누가 봤을까 슬쩍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내게 관심 갖는 이는 없었다. 기분 탓인지, 유독 땅을 보고 걷는 순례자가 많았다.
안도와 확신이 불러온 눈물이었다. 이 길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의심했다. 의심은 걱정으로 돌아왔다. 스스로를 더 채찍질했고, 더 빨리 더 많이 걸으려 욕심내다가 발에 물집 스무 개쯤 얻었다. 왼쪽 무릎이 부풀어 올라 걷지 못할 때도 있었다. 30여 일의 대장정 끄트머리에 서고 보니 완주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도 마음먹으면 이 정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안도했다. ‘낙오하지 않았다. 괜찮다. 고생했다’며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는 것 같았다.
이맘때 한국인을 만나면 “몇 살이냐”로 시작해서 “어어구, 돌아가면 취업해야겠네”로 마침표를 찍는 대화가 발생하곤 했다. 평소 카미노에서 받지 못하던 ‘자연스러운’ 질문과 대답이 다시 오가기 시작했다. 정말 끝을 향해 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예전 같았다면 “아, 네…”라며 의기소침해졌겠지만 “뭐라도 하겠죠”라며 웃어보였다.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고, 걱정만 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뚜벅뚜벅 걷다보면 늦더라도 남들이 도착하는 마을에 도착한다.
괜스레 길이 아름다웠다. 지나가던 길고양이가 눈에 들어왔고, 순례자들의 뒷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며칠 후면 그리워질, 앞으로 줄곧 그리울 평범함이었다. 목적지 6km 이전에 위치한 몬테 도 고소를 가는 길이었다. 보엔테부터 걷기 시작해 이미 40km를 넘게 걷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온 메리를 만났다. 메리는 4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10년 전 온 뒤 두 번째 순례 여정이라고 했다.
“10년 전엔 이 길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야. 사전 정보도 없고, 사람도 많이 없었지. 그때 결혼하려던 남자랑 헤어져서 우울할 때였어. 간호사 일을 할 때였는데, 너도 알겠지만 간호사는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한 직업이야. 무작정 떠났고, 이 길에서 큰 위로를 얻었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갔을 때 조만간 또 올 수 있을 줄 알았거든 이 길을. 근데 벌써 10년이 지났네. 지금이라도 온 게 어디야.”
메리는 연신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걷는 중에 손을 허리에 갖다 대며 숨을 골랐다. 가만 서서 걱정되는 눈길을 던지면 “넌 젊잖아”라며 민망한 듯 웃었다.
“나도 다시 오려면 10년쯤 걸릴까? 그땐 나도 걷기 버겁겠지?”
“그럴지도? 혹시 다시 오고 싶으면 오고 싶을 때 당장 오렴.”
“에이 그게 쉽나.”
“무아야, 나는 스페인에 다시 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스스로에게 10년 동안 말했어. 이 길을 다시 걷는 게 꿈이라면서도. 꿈을 꿈으로 남겨두면 정말 꿈으로 남는단다.”
어느새 몬테 도 고소에 도착했다. 이곳은 몬쇼이(Monxoy)라고 불리기도 한다. 프랑스어로 ‘나의 기쁨이여(Mon Joie)’라는 뜻이다. 언덕에 서서 산티아고 대성당의 탑을 내려다보며 나온 감탄일 것이다. 몬테 도 고소의 새로 지어진 알베르게는 수용력이 컸지만 대부분 순례자들은 이 작은 마을을 지나 곧장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들어갔다. 몬테 도 고소는 언덕에 위치한 거점인데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과 6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메리도 몬테 도 고소에서 묵기로 했던 마음을 바꿔 곧장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녀는 “‘꿈꾸는 사람’이 되지 마(Don’t be a dreamer)”라고 말했다. 꿈꾸는 사람이라는 단어를 말할 땐 양손의 검지와 중지를 머리 위에서 까딱거렸다. 메리를 떠나보내고 몬테 도 고소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28일 완주를 목표로 했지만 이미 31일째를 걷고 있었다. 하루쯤 더 걷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었다. 목적지를 내려다보며 31일을 정리하고 싶었다. 하늘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박현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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