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가끔 기발한 제품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다. ‘아니, 이 대박 예감 아이템을 여태 왜 아무도 안 만들었지?’ 넘치는 의욕과 설레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구상을 해보지만, 정작 현실로 실현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시간 부족, 자금 부족, 경험 부족, 의지 부족 등 많은 이유로 인해 아이디어는 대부분 아이디어로 그치고 만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활성화에 힘입어 이런 현실의 벽을 조금이나마 낮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온라인 플랫폼들이 등장했다. 제품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에게 꿈을 이룰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주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들이다. 미국에서는 올해 론칭 10주년을 맞이한 킥스타터(Kickstarter)가 대표적이다.
# 내가 원하는 제품은 내가 후원한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들은 사업 아이디어의 리스크와는 상관없이 도전하려는 의지가 있는 메이커들에게 소비자를 직접 만나고 팬층을 구축할 수 있는, 전에 없던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는 제품 개발을 하려는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대중에게 소개하고 제품 제작과 유통에 필요한 자금을 ‘후원금’의 형태로 받는 일종의 ‘소셜네트워크 플랫폼’이다. 후원금 목표액을 달성한 킥스타터 캠페인은 모인 지원금으로 제품 제작에 돌입한다. ‘후원자(Backers)’들은 제품 제작이 완료되면 일반 시장에 론칭되기 전, 자신이 ‘투자’한 제품을 배송받는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는 예술, 영화, 테크 제품, 패션, 액세서리, 만화, 게임 등등 장르를 막론하고 자신의 꿈을 펼치려는 스타트업들이 바글바글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활성화되고 있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는 꿈을 가진 창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기회를 제공한다.
△ 자본금을 모을 수 있다
사람들이 창업을 망설이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자본금 부족인데 킥스타터 캠페인을 통해 제품 제작 비용을 마련할 수 있다. 미국에서 크라우드 펀딩의 수혜를 본 분야 중 하나는 보드게임(Board games)이다. 제작과 배급난에 허덕이며 많은 보드게임 업체들이 감축을 하거나 사장되고 있었는데, 중간 과정이 많아 거품이 많이 들어갔던 비즈니스 모델 대신, 새로운 게임 제작자와 게이머들이 직접 연결되어 시장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들이 소비자의 지원으로 자본금을 확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킥스타터를 통해서 많은 인디 보드게임들이 출시되어서 몇 년 전부터는 지금이 ‘보드게임의 르네상스’라는 말까지 나왔다.
△ 기존 유통망 없이 직접 제품을 론칭할 수 있다
기존에는 제품을 론칭하려면 일반적인 유통망을 거쳐야 했다. 예를 들어, 영화, 게임, 만화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한 아이디어가 작품이나 제품으로 제작되려면 스튜디오 관계자와 같이 프로젝트 결정권을 쥔 자(Gatekeeper)의 그린라이트(Greenlight)가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제작자들이 우선으로 보는 것은 시장 가능성이다. 나중에 수익을 낼 만한 작품인가 아닌가가 결정에 큰 역할을 하는데, 워낙에 사활이 달린 문제라 성공을 담보하는 뭔가가 없으면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는다. 따라서 주류 감성이 아닌 아이템들은 정치적인 이유나 기업적인 이유, 혹은 결정권자의 개인적 취향 등 작가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로 인해 사장되는 일이 빈번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창작 활동에서 리스크란 결코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것이 나오려면 도전을 해야 하는데, 전통적인 비지니스 모델은 실패에 대한 공포 때문에 새로운 도전이 쉽게 허용되지 않았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들은 이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큰 역할을 한 셈이다. 물론 아이디어에 대한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후원금이 모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캠페인도 다음 단계로 진행될 수 없다.
△ 사전에 실제 소비자를 상대로 제품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다
킥스타터를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면 본격적으로 제품 개발에 자본을 쓰기 앞서서 일종의 ‘소비자 연구’를 할 수 있다. 중간 제작자나 기업의 간섭 없이 직접 지원자 및 팔로어와 소통할 수도 있다.
내가 자문을 해줬던 킥스타터 캠페인, ‘RPG Stamps: Commemorate Deaths and Track Accomplishments(RPG 도장: 캐릭터의 죽음과 업적을 기리다)’는 테이블 탑 롤플레잉 게임 액세서리 도장 아이템을 론칭하는 일이었다. 우리나라나 미국에서나 일반 대중에겐 생소한 장르일 수 있는데,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 오프닝 신에서 대표적인 테이블 탑 롤플레잉 게임인 ‘던전 앤 드래곤(Dungeons & Dragons)’이 소개되면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내가 도운 팀은 롤플레잉 게임 ‘덕후’들이지만 제품 제작 경험은 전무했다. 평소 게임을 하다 이런 아이템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제품 개발을 진행했고 사업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킥스타터라는 플랫폼을 이용한 것이다. “시도나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재미 반, 설렘 반으로 시작했던 캠페인은 이들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대박’을 쳤다.
처음 후원금 목표액은 2000달러(약 200만 원)였다. 캠페인 페이지를 만들어 제품 소개를 하고 론칭을 했는데, 24시간 만에 목표액을 달성했다. 제품 수요가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결국 이 캠페인은 611명의 후원자를 확충하고 초기 목표액의 9배인 약 1만 8000달러(약 1800만 원)를 제작 자본으로 확보하면서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성공 요인이 무엇이었을까? 이 캠페인이 독특하게 활용한 점이 있다면 제품 개발에 소비자들이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신생 브랜드로서 난제는 자신의 제품, 브랜드, 킥스타터 캠페인의 인지도와 참여도를 높이는 것이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한 끝에 우리는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는 캠페인을 만드는 데 목표를 두었다. 이 목표를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로 우리 소비자 연구팀은 설문조사 질문지를 만들고 온라인 설문조사를 프로그래밍하고 이 설문조사를 ‘던전 앤 드래곤’ 덕후들이 모이는 페이스북 그룹에 배포했다.
설문조사는 제품 디자인에 관한 반응 테스트를 목적으로 쉽고 빠르게 응답할 수 있는 5~6개 정도의 문항이 전부였다. 론칭하고자 하는 다양한 디자인의 도장을 다 제품화할 수 없으니, 우리끼리 ‘감으로’ 제품 라인업을 선정하지 말고 타깃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하자는 의지였다. 이 설문조사에 직접 들어간 돈(하드 코스트, Hard cost)은 페이스북 광고에 들어간 300달러(약 30만 원)였다. 그러나 캠페인은 투자에 비해 많은 것을 얻었다.
타깃마켓 확충: 일단 도장 디자인 설문조사를 통해 잠재적 고객을 찾아내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열렬한 팬덤을 구축했다. 아울러 설문조사를 통해 킥스타터 캠페인이 자연스레 공략 대상인 롤플레잉게임 덕후들에게 소개가 되었다. 그리고 설문조사 마지막 질문인 캠페인 업데이트 소식을 받는 뉴스레터 발송 의사 체크로 300개의 팔로어 이메일주소를 수집했다. 광고비가 300달러였으니 1달러에 한 명꼴로 새 가입자가 생긴 것이다.
팔로어들 간의 소통채널: 일반 소비자들에게 제품 디자인의 결정권이 주어진다는 것은 팬으로서 매우 특별한 경험이다. 설문조사와 캠페인 페이지로 이어지는 팔로어들과의 교류를 통해 두터운 팬덤을 구축했다.
제품 라인업 결정: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고려대상이던 9개의 도장 디자인을 6개로 줄여 소비자들에게 반응이 좋은 제품만을 론칭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인기 있는 제품을 선정하는 데 국한되지 않고, 향후 제작 효율을 높이고 유통비를 최소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소비자 연구의 핵심을 알면 대기업이 아니라도 누구든지 사업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 꿈이 있고 열심히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시도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크라우드 펀딩. 앞으로 이런 채널을 통해 어떤 기발한 제품들이 탄생할지 기대된다.
필자 황지영은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엔터테인먼트 경영 석사를 마치고 Fox Television, Warner Bros. Television 리서치 부서에서 일했다. 글로벌 소비자 마케팅 리서치 회사 Hall & Partners, Kelton Global에서 경력을 쌓고 2015년 소비자 마케팅 연구 회사 마인엠알(MineMR)을 설립, 현재 미국 LA에서 글로벌 기업들을 클라이언트로 소비자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황지영 MineMR 대표·마케팅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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