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몇 주 동안은 신생 스타트업이 아니라 기존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이던 시절, 그리고 현재 어떻게 스타트업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번주는 새로이 떠오르는 유니콘 스타트업 얘기로 다시 돌아온다.
프랑스의 인공지능(AI) 기반 사진 서비스 스타트업 미로(Meero)가 지난주 2억 3000만 달러(2700억 원)의 시리즈 C 투자 유치에 성공해 창업 3년 만에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2019년 6월 현재까지 프랑스에서 발표된 시리즈 C 투자로는 최대 규모이다. (두 번째로 큰 규모의 3차 투자는 이 칼럼에서도 소개한 인섹트가 올해 2월에 유치한 1억 2500만 유로다.)
작년 7월에 4500만 달러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한지 불과 1년도 채 안 되었으니 놀라운 성장세가 아닐 수 없다.
일단 미로의 현황을 살펴보자. 현재 100개 이상의 국가에 3만 곳 이상의 고객사를 확보했으며 이들을 전 세계 5만 8000명의 포토그래퍼에게 연결하고 있다. 즉 기본적으로 B2B 플랫폼이다. 25초마다 한 장의 사진이 고객에게 전달되며 현재까지 1000만 장 이상의 상업용 사진이 미로를 통해 처리되었다. 현재 파리, 뉴욕, 상하이, 도쿄, 방갈로르 등 전 세계 5개 오피스에서 49개 국적의 직원 600명이 일한다. 올 초 새로 연 호주의 시드니 오피스를 포함해서 2019년 내에 직원을 2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들어서는 이 회사가 어떤 면에서 특별한지 갸우뚱할 수도 있다. AI를 이용해서 사진을 보정하고, 상업사진작가들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것이 사업 모델인 이 회사에, 투자자들은 어떤 부분을 보고 1조 원이 넘는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물론 앞서 말한 수치 역시 창업 3년 만에 이룬 성과로는 대단하지만, 투자자들은 그 몇 배를 뛰어넘는 성장 가능성을 본 것이다.
미로의 주요 B2B 고객들을 한번 보자. 우버이츠(우버의 음식 배달 서비스), 부킹닷컴(호텔 예약 서비스), 익스피디아(여행 예약 서비스), 에어비앤비…. 이제 살짝 감이 오는지? 모두가 서비스 제공자들을 전 세계 다양한 고객들에게 연결하는 플랫폼 사업자들이다.
음식 배달도 그렇고 숙박 예약도 그렇고, 실물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려면 사진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규모 사업자는 (때론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고객을 유인할 고품질의 사진을 적은 비용으로 얻기가 쉽지 않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박 예약을 해본 사람이라면, 평범한 개인이 호스트인 집의 사진이 너무 ‘고퀄’이라 궁금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많은 경우 에어비앤비가 미로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상업사진작가를 연결해 사진을 찍게 도와준 것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왜 에어비앤비에 올라 있는 집 사진들이 왜 그토록 매력적인지 감이 왔을 것이다. 더 나아가 사진이 기본적인 정보 교환의 매개체가 되는 온라인 거래 플랫폼 중에 사진 퀄리티가 아직 그리 높지 않은 분야들이 떠오를 것이다.
미로에 거액을 투척한 투자자들은 현재 여행, 음식, 부동산 등에 주력하는 미로의 사업 모델을 다른 분야로 확장할 경우 가능성이 무궁무진함을 본 것이다. 상업사진작가와 사업자 고객들을 연결하는 단순한 플랫폼을 넘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온라인 상거래의 핵심 기반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면, 1조 원 넘게 평가한 지금의 기업 가치는 오히려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
듣고 나면 무척 유망한 사업 영역이지만 놀랍게도 아직까지 특별한 경쟁자가 없다. 상업용 사진은 이미 100조 원이 넘는 시장이지만 니콘, 캐논 등의 장비 업체와 어도비 같은 소프트웨어 공급자 등 양 극단의 몇몇 대기업과 그 사이를 많은 소규모 사업자들이 채우고 있을 뿐이다. 미로의 사업 모델 중 일부 영역에서는 로컬 경쟁자들이 있지만, 누구도 미로와 같은 규모와 비전을 갖추지 못했다.
이제 30대 초반인 창업자이자 CEO 토마 르보(Thomas Rebaud)는 기존의 영역에서 경쟁자를 물리치고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카테고리를 정의하고 그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는 것이 미로의 목표라고 강조한다. 즉 검색의 구글, 여행의 에어비앤비처럼 되겠다는 것. 나라도 기회가 된다면 투자하고 싶을 지경이다.
미로와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은 보통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필요한 수요자와 이를 제공하는 공급자를 연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 미로의 경우 공급자인 상업사진작가들을 핵심 고객으로 보고 이들을 위해 크게 두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첫째, 사진작가들이 돈을 더 잘 벌 수 있게 해준다. 일단 실력 있는 상업사진작가들을 다양한 수요자들에게 맞춤 연결해줌으로써 더 많은 공급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에 더해 사진작가들의 사업을 돕는 다양한 도구를 무료로 제공한다. 이를 통해 작가들은 고객 반응 및 평가 관리를 비롯한 고객 관리에서부터 마케팅 자동화 도구, 견적, 계약서, 회계장부 작성 등 골치 아픈 부가 업무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또 클라우드 플랫폼을 통해 사진 작업물을 교환함으로써 이메일로 사진을 주고받지 않아도 된다. 미로는 결혼식이나 초상, 가족, 아기 사진 등을 찍고 싶어하는 개인들을 상대로 B2C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도 갖고 있다.
둘째, 작가들이 사진을 더 잘, 효율적으로 찍게 해준다. 여기에 AI 기술이 적용된다. 미로에 따르면 상업용 사진작가들은 보통 사진을 찍는 데 60분 정도를 쓰고 그 4배에 달하는 시간을 편집, 보정 등 사후 작업에 매달린다. 미로의 인공 지능은 이 사후 작업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작가들은 사진을 찍는 데 집중하고 사후 작업은 미로의 인공지능에 맡기라는 것. 80여 명의 AI 전문 개발 인력이 25명으로 구성된 아트팀과 긴밀히 협업하고 있다고. AI의 알고리즘이 걸러내고 편집하고 보정한 사진들을 훈련된 아트팀이 ‘인간의 눈과 마음’으로 선별하는데, 이 결과가 다시 머신러닝을 통해 되먹임(feedback)되어 알고리즘을 향상시킨다.
이쯤 되면 미로를 ‘사진 서비스계의 우버’라고 생각할 법하다. 그러나 창업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버의 목표는 이동 수단(transportation) 자체를 바꾸는 것이지, 운전자들을 돕는 것이 아니다. 우버를 비롯한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주력하는 자율주행차량이 상용화·보편화되어 우버 드라이버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더라도 이는 우버가 알 바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미로의 서비스는 어디까지나 사진작가의, 사진작가에 의한, 사진작가를 위한 서비스다. 미로를 사용하는 사진작가는 월 평균 1000달러 정도의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하는데, 미로는 이를 2020년 말까지 1500달러로 높이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있다. 사진작가를 고객과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초보 사진작가들을 위한 무료 온라인 강좌를 개설하고, 종군 기자와 페미니즘 등 심층 취재를 위한 포토저널리즘에 투자하고, 지역별 작가 커뮤니티 활성화에 아낌없이 지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혹시 창업자가 사진작가 출신이기라도 한 걸까?
그건 아니다. 창업자 토마 르보는 경영대학에서 재무와 경영 석사를 받고 졸업하자마자 2013년에 소액 대출 거래를 주선하는 핀테크 스타트업을 창업했고, 이와 별도로 IT 컨설팅 업체를 창업해 인재를 확보해왔다. 다만 무용수 아내 때문인지 예술가들을 도울 플랫폼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구상을 오래도록 해왔다고 한다. 르보는 2016년에 부동산 컨설턴트이자 사진작가인 기욤 르스트라드(Guillaume Lestrade)를 만났는데, 대화 끝에 무용보다는 사진 분야가 지금으로선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깨닫고 의기투합해 미로를 공동 창업하게 됐다(기욤은 지난해에 회사를 떠났다).
르보는 사진 분야의 성공을 발판으로 향후 무용수뿐 아니라 배우,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창조적 직업군을 돕는 플랫폼을 구축할 포부를 갖고 있다. 이 젊은 CEO가 또 어떤 서비스를 만들어낼지 궁금해진다.
필자 곽원철은 한국의 ICT 업계에서 12년간 일한 뒤 2009년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현재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 담당으로 일하고 있으며, 2018년 한-프랑스 스타트업 서밋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기재부 주최로 열린 디지털이코노미포럼에서 유럽의 모빌리티 시장을 소개하는 등 한국-프랑스 스타트업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곽원철 슈나이더일렉트릭 글로벌전략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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