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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병원 의료소송이 환자에게 특히 불리한 이유

서울중앙지법 한방병원 감정촉탁기관 '0개'…감정 기간 늘어지고 공정성에도 '의문'

2019.06.26(Wed) 17:27:46

[비즈한국] 얼마 전 한의원을 상대로 의료소송을 진행한 변호사 A 씨. 그는 의료사고 여부를 감정받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운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A 씨는 “한의원에서 등에 침을 맞은 환자였다. 그런데 감염이 돼 균이 척수를 타고 눈까지 들어갔다”며 “하지만 감정해줄 병원을 구하지 못해 제대로 된 의료감정을 받지 못했고 결국 패소했다”고 말했다.

 

변호사 B 씨도 같은 고충을 겪었다. 한의원 의료사고 사건을 수임받아 감정을 받기까지 무려 1년 넘게 기다렸다. B 씨는 “환자가 한의원에서 이틀 치료받았는데 진료기록지에 하루는 ‘감기’로, 그다음 날은 감기를 뜻하는 한방용어로 적혔다. 진료명이 다르다 보니 공단에서 ‘허위진료를 받은 게 아니냐’며 입증을 요구했다”며 “입증을 받으려면 한방병원에서 감정을 받아야 했는데 법원에서 감정해줄 한방병원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고 밝혔다.

 

한의원에서 발생한 의료사고로 인한 소송이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부천의 한의원에서 봉침 치료를 받던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문제는 환자 측이 피해사실을 입증하려면 의료사고 여부를 감정받아야 하는데, 한의원에서 일어난 의료사고는 일반 양방병원에서 발생한 사고보다 감정을 받기가 더욱 힘들어 시간적, 정신적 고통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들은 한의원에서 일어난 의료사고는 일반 양방병원에서 발생한 사고보다 감정을 받기가 더욱 힘들어 그만큼 정신적 고통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해당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 한의학을 다루는 감정촉탁기관이 부족하다

 

보통 의료소송이 진행되면 법원은 협약을 맺은 병원, 즉 ‘감정촉탁기관’에 감정을 촉탁한다. 재판부가 전문적인 의료 지식이 없으니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식이다. 법원행정처는 매년 국·공립병원과 종합병원장들에게 전문의들을 추천받아 ‘감정촉탁병원 및 담당 의사 명단’을 만든다. 이 명단을 받아 각 법원은 권역 내에 있는 병원을 중심으로 자체적으로 명단을 작성한다. 이후 법원은 재판이 벌어질 때마다 각 법원 명단에 올라와 있는 병원을 무작위로 선정해 감정을 의뢰한다. 다만 한의원처럼 양방병원에서 감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때는 사유를 적은 후 한방병원에서 감정받게 하고 있다.

 

문제는 감정촉탁기관으로 지정된 한방병원이 극소수라는 점이다. ‘비즈한국’이 인터뷰한 두 명의 변호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에는 감정촉탁기관으로 지정된 한방병원이 아예 없다. 법원이 재판의 공정성을 이유로 병원 명단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다른 법원도 사정이 비슷하다는 전언이다. A 변호사는 “한방병원 감정촉탁기관은 부산대 한방병원과 경희대 한방병원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다른 법원 권역에 있는 한방병원에서 감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때는 법원에 특별한 이유를 소명해야 하므로 과정이 다소 까다롭다. 해당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 김신혜 변호사는 “촉탁이 와도 병원에서 반려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의 주요 업무도 아닌 데다 감정을 하면 환자들이 항의하는 경우도 있어서 일부러 감정을 늦게 해주는 경우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감정을 거부하거나 감정촉탁 회신이 늦어진다고 해서 다음 감정촉탁기관 명단에서 제외하거나 법원이 빨리 내라고 재촉하는 것 외에 별다른 제재는 없는 실정이다.

 

최근 한방병원 의료사고 소송을 담당한 복수의 변호사에 따르면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에는 감정촉탁기관으로 지정된 한방병원이 없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고성준 기자


복수의 변호사들에 따르면 한의원 의료소송의 경우 법원은 대한한의사협회를 통해 감정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인 등 선정과 감정료 산정기준 등에 관한 예규’에 따르면, 감정에 적합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명단에 없다면 외부의 공공단체, 교육기관, 연구기관 등에 의뢰해 적격자를 감정인으로 지정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이 역시 실효성이 낮다. 한의사들끼리 알음알음 아는 경우가 많아 감정을 해주기 꺼려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감정이 늦어지는 사이 환자들과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의 고통은 계속 커진다.​

 

# ‘팔은 안으로 굽는다’ 근본적인 대안 마련 절실

 

이렇게 감정촉탁기관으로 지정된 한방병원이 적은 이유는 우선 전국에 3차 병원급 한방병원 자체가 얼마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감정촉탁기관으로 선정되려면 공신력이 있는 대학병원급의 병원이어야 하는데, 그런 한방병원이 전국에 많지 않다. 그마저도 감정촉탁기관으로 지정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지정된다 해도 병원에서 감정하지 않거나 감정서를 늦게 보내주면 소송 자체가 지지부진해진다.

 

한의원 의료사고에 대한 문제의식이 아직 크지 않은 것도 이유로 지적된다. 기존의 한약 요법에서 시술 요법으로 한의원 치료행위가 바뀌고 있고 이에 따라 관련 사고와 소송은 늘어나는데, 아직 법원에서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해 대안책을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수의 변호사들은 한의원 의료사고를 더 원활하게 감정할 수 있도록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A 변호사​는 “법원에서 더 많은 한방병원과 협약을 맺어서 감정기관으로 지정하고, 감정의 강제성을 좀 더 강화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한의사들의 자정 노력도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감정촉탁기관으로 지정된 한방병원이 극소수인 이유는 3차 병원급 한방병원 자체가 얼마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의원 의료사고를 공정하게 다룰 수 있는 별도의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병원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임준선 기자


독일의 의료소송 체계도 참고해볼 만하다. 우리나라는 의료소송에서 의사의 감정서가 ‘판결문’처럼 작용할 정도로 그 역할이 크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의료소송에 들어가기 전 의사와 의료사고 경험이 많은 패널 등으로 위원회를 꾸린 뒤 이들이 해당 의료사고에 대한 조정 방안을 함께 논의한다. 물론 독일도 소송 과정에서 의사가 감정을 진행하지만, 의사는 위원회 중 한 패널에 불과하기 때문에 책임에서 좀 더 자유롭다.

 

한편 감정이 어려운 게 비단 한의원 의료소송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이용환 변호사는 “한방병원이어서 감정이 늦는다고 보진 않는다. 일반 양방병원의 경우에도 감정을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법원이 ‘제3의 기관’인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감정을 의뢰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90일 내에 하도록 돼 있어 시간은 단축되지만 감정이 의사들에게 치우쳐 있다는 비판이 있다. 개선할 수 있는 문제일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라고 의견을 표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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