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요 며칠 계속 소나기가 내렸다. 도로에 난 웅덩이에 빗물이 고였다. 고인 빗물 위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진다. 동심원이 생기며 작은 물결이 퍼진다. 물에 비친 밤하늘도 우주도 함께 물결이 인다.
# 춤추는 우리 은하의 주름치마
우리 인류가 살고 있는 고향 우리 은하도 이처럼 물결치듯 진동한다. 우리 은하는 태양과 같은 별 수천억 개가 모인 꽤 큰 은하다. 우리 은하는 지름 10만 광년 크기의 거대하고 납작한 원반을 이루고 있는 원반 은하(disk galaxy) 또는 원반 위에 나선팔을 그리는 나선 은하(spiral galaxy)로 분류된다. 하지만 우리 은하의 원반은 쟁반처럼 단순히 평평하지 않다.
지구 곁에 지구보다 크기가 작은 달이 맴돌듯이 우리 은하 곁에도 우리 은하보다 크기가 작은 왜소은하들이 맴돌고 있다. 탐험가 마젤란이 남반구 바다를 항해하면서 밤하늘에서 발견했다고 전해지는 크고 작은 대마젤란은하, 소마젤란은하가 우리 은하의 대표적인 위성은하(satellite galaxy)다. 이외에도 훨씬 더 규모가 작고 어두운 많은 꼬꼬마 위성은하들이 우리 은하 곁을 계속 맴돈다.
위성은하들은 우리 은하에 비해 무려 100배나 더 가볍고 작다. 하지만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우리 은하 곁을 맴돌면서 조금씩 우리 은하와 중력적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우리 은하의 원반을 이루며 돌던 별들도 작은 위성은하들의 움직임에 이끌려 조금씩 원반을 이탈한다. 결국 우리 은하의 원반은 마치 오래돼서 뒤틀린 레코드판처럼 크게 휘어진 형태를 갖게 된다. 이렇게 휘어진 원반을 은하의 워프(warp)라고 한다.
천문학자들은 2013년부터 우주에 올라 활동하고 있는 가이아(Gaia) 위성의 데이터를 활용해 우리 은하에 있는 별들의 정확한 거리를 측정한다. 이를 통해 입체 지도를 완성해 우리 은하의 정확한 형태와 각 별의 정확한 움직임을 추적하고 있다.
지난 4월 천문학자들은 가이아가 관측한 우리 은하 속 세페이드형 변광성 1300여 개의 데이터를 활용해 우리 은하 원반의 정확한 지도를 새로 완성했다. 당시 천문학자들이 관측한 세페이드형 변광성은 우리 태양에 비해 20배까지 더 무겁고 밝기는 10만 배 더 밝은 별들이다. 이를 통해 각 세페이드형 변광성까지의 거리를 정확하게 잴 수 있었다.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의 원반이 단순히 평평한 원반이 아니라 17도 이상 S 자 형태로 크게 뒤틀려 휘어져 있음을 확인했다. 마치 춤을 추는 무용수의 치맛자락이 아름답게 펄럭이는 듯한 모습이었다.[1]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의 원반이 S 자 형태의 워프를 그리며 휘어져 있을 뿐 아니라 원반 자체가 물결치듯 주름진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마치 연못에 작은 돌멩이를 퐁당퐁당 던지면 작은 물결이 일어나듯 우리 은하 원반의 외곽 부분도 물결치듯(ripple) 요동하고 있다.[2]
# 범인은 유령 은하?
대체 무엇이 우리 은하의 원반에 물결을 일으킨 것일까? 무엇이 우리 은하를 춤추게 하는 걸까?
최근까지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 원반에 물결을 일으킨 유력한 범인으로 우리 은하 곁을 맴도는 궁수자리 왜소은하(Sagittarius dwarf galaxy)를 의심했다. 궁수자리 왜소은하는 최소 3억에서 9억 년 전에 우리 은하의 강한 중력에 이끌려 본격적으로 우리 은하와 상호작용을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궁수자리 왜소은하는 계속 우리 은하 곁을 맴돌면서 많은 질량을 흘리면서 마치 헨젤과 그레텔의 빵가루처럼 긴 별 꼬리를 그렸다. 현재도 궁수자리 왜소은하가 그리는 기다란 별 꼬리의 흔적은 우리 은하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다.[3]
붉게 찍힌 점들이 우리 은하 주변에 궁수자리 왜소은하가 흘린 별 꼬리의 흔적을 의미한다.
그런데 최근 시뮬레이션 분석에 따르면, 우리 은하 중심에서 약 5만~6만 광년 떨어진 채 빠르게 우리 은하 곁을 스쳐지나가는 궁수자리 왜소은하는 우리 은하 원반의 아름다운 춤사위를 만들어내기에는 힘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또 크고 작은 두 개의 마젤란은하들은 비교적 우리 은하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 은하가 춤추게 만들기 어렵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 은하 원반에 춤바람을 불어넣은 범인은 누구일까?
최근에 발견된 아주 작은 왜소은하 안틀리아 2(Antlia 2)가 새롭게 용의선상에 떠오르고 있다. 안틀리아 2는 2018년 11월 가이아 위성이 새롭게 그려준 별 입체 지도를 통해 발견된 왜소은하다. 안틀리아 2의 전체 크기는 대마젤란은하와 거의 비슷하지만 질량은 만 배나 더 가볍다. 별과 가스가 아주 낮은 밀도로 성기게 모여 있는 아주 흐릿한 은하(UDG: Ultra Diffuse Galaxy)로 분류된다. 이런 흐릿한 은하들은 보통 눈에 보이는 별이나 가스 물질보다는 주로 빛으로 관측할 수 없는 암흑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너무 밀도가 낮아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유령 은하(ghost galaxy)’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4]
천문학자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질량과 궤도를 갖는 위성은하들이 우리 은하 곁을 맴도는 상황을 구현했다. 그리고 현재 관측되는 휘어지고 물결치는 우리 은하 원반의 모습을 가장 잘 재현하는 결과를 찾아냈다. 천문학자들은 이 분석을 통해 우리 은하를 춤추게 만든 범인으로 추정되는 용의자 은하의 질량과 궤도를 유추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천문학자들이 의심하고 있던 용의자 은하의 거주지 근처에서 정말로 몽타주와 비슷한 스펙을 갖고 있는 새로운 유령 은하가 발견되었다.[5]
정말로 안틀리아 2 왜소은하가 우리 은하 원반을 휘어지게 하고 물결치게 만든 진짜 범인인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안틀리아 2에 대해서는 더 많은 알리바이를 확인해야 한다.
천문학자들은 가이아 위성의 지속적인 관측을 통해 안틀리아 2의 궤도를 더 정확히 파악할 계획이다. 앞으로 2~3년 후에 우리 은하 원반의 별들의 위치가 정말로 예상한 대로 변화하는지를 비교해 안틀리아 2의 혐의를 밝혀나갈 계획이다.
안틀리아 2 왜소은하가 우리 은하 곁을 스쳐지나가면서 우리 은하 원반에 물결을 일으키는 과정을 재현한 시뮬레이션.
# 토성의 고리를 춤추게 하는 지휘자 다프니스
물결치듯 요동치며 춤을 추는 모습은 우리 태양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리를 갖고 있는 행성 토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토성은 태양계에서 목성 다음으로 덩치가 큰 가스 행성이다. 토성은 육중한 질량으로 그 주변에 크고 작은 위성을 60개가 넘게 거느린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우리 눈을 사로잡는 토성의 매력 포인트는 뚜렷한 고리다. 토성의 고리는 아주 얇다. 만약 A4 종이를 토성의 고리만 하게 그대로 확장한다면 크게 확장된 A4 종이의 두께가 토성의 고리 두께보다 더 두껍다. 멀리서 보면 마치 CD처럼 구멍이 뚫린 둥근 원판처럼 보이지만 사실 토성의 고리는 아주 작은 얼음 부스러기들로 이뤄져 있다.
실제로 최근까지 토성 곁을 맴돌며 토성을 관측했던 유일한 탐사선 카시니(Cassini)의 근접 비행을 통해 토성 고리의 자세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카시니 탐사선은 지난 2017년 9월 마지막 그랜드 피날레(Grand finale) 비행을 끝으로 토성의 구름 속에 추락하며 미션을 종료했다. 하지만 카시니가 마지막 순간까지 지구로 보낸 다양한 관측 데이터가 가득 쌓여 있다.
천문학자들은 2016년 12월에서 2017년 9월까지 이뤄진 두 차례 카시니의 마지막 비행에서 관측한 토성 고리의 영상을 분석했다. 이 데이터에서 지금껏 본 적 없는 아주 놀라운 모습을 확인했다.[6]
토성 고리의 가장 외곽 A 고리 바깥 가장자리에는 약 42km 두께로 고리가 끊겨 있는 구간이 있다. 이 구간을 킬러 간극(keeler gap)이라고 하는데, 이 간극에는 다프니스(Daphnis)라는 이름의 작은 위성이 돌고 있다. 다프니스의 크기는 겨우 6~8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작은 위성은 카시니가 토성 곁을 맴돌면서 2005년 처음 발견했다.
그런데 다프니스가 토성 곁을 맴도는 궤도는 아주 미세하게 토성의 고리 면에서 살짝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다프니스는 주기적으로 토성의 고리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궤도를 돌게 된다. 마치 천천히 돌면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놀이공원 회전목마와 비슷하다.
다프니스가 고리 사이 킬러 간극 궤도를 돌면서 주변 고리에 요동을 일으키고 지나가는 모습. 태양 빛이 비스듬히 비치면서 고리 위에 그려진 수직 구조의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다.
궤도를 돌면서 다프니스는 토성의 고리를 이루는 주변의 작은 얼음 부스러기들과 중력을 주고받는다. 그 결과 다프니스가 돌고 있는 킬러 간극 주변의 토성 고리들은 물결치듯 요동치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번에 공개된 카시니의 마지막 데이터에는 꼬마 지휘자 다프니스의 지휘에 맞춰 아름답게 요동치는 토성 고리의 모습이 세밀하게 담겨 있다.[7]
토성 고리 위로 태양 빛이 비스듬하게 내리쬐는 동안에는 그 모습을 더 확연하게 볼 수 있다. 고리 위아래로 수직으로 뻗어나오는 미세한 구조가 고리 위로 그리는 그림자를 통해 수직으로 진동하고 물결치는 토성 고리의 춤사위를 느낄 수 있다.
# 우주의 아름다운 댄스를 볼 수 있는 짧은 기회
사실 토성의 고리는 아주 어린 구조다. 흔히 약 40억 년 전 토성이 만들어질 때부터 아름다운 고리를 갖고 태어났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고리가 만들어진 것은 토성이 탄생한 지 한참 후의 일이다.
카시니 탐사선은 토성의 구름 속으로 완전히 추락하기 전까지 토성의 표면과 토성 고리 사이를 총 22번 비행했다. 최후의 비행을 하는 동안 카시니는 토성이 탐사선을 끌어당기는 중력과 토성의 고리가 바깥으로 탐사선을 끌어당기는 미미한 중력을 함께 분석하며 토성 고리의 전체 질량을 추정했다. 이를 통해 천문학자들은 토성의 고리가 언제쯤 만들어진 것인지 측정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토성의 고리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1억 년이 채 되지 않는다.[8]
탄생 이후 거의 40억 년 동안 토성은 고리가 없는 행성이었던 것이다. 지구에 공룡이 막 살기 시작하던 때에야 토성은 고리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토성의 리즈 시절은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 토성의 매력 포인트인 고리는 금방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1980년 토성 곁을 지나가며 관측한 보이저호의 데이터에 따르면, 토성의 강한 자기장에 의해 고리의 얼음 부스러기들이 다시 토성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고리 강수(ring rain) 현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평균적으로 1년간 올림픽 수영 경기장에 버금가는 양의 얼음과 물이 고리에서 토성 속으로 유출되고 있다. 이 속도라면 지금과 같이 아름다운 토성의 고리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불과 3억 년밖에 남지 않았다.[9]
앞으로 태양계에서 토성의 고리를 볼 수 있는 기회는 3억 년밖에 남지 않았다. 고리가 다 사라지기 전에 토성의 리즈 시절을 눈에 담자.
S 자 곡선으로 아름답게 휘어진 우리 은하 원반의 춤사위 역시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사그라지는 중이다. 은하의 댄스도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다. 주변을 도는 위성은하와 상호작용을 한 뒤 많은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우리 은하 원반의 별들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공연이 끝나면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는 무용수처럼 우리 은하의 아름다운 춤사위 역시 영원하지 않다.
원반 은하의 휘어진 원반 워프 구조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지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억 년이 지나면 우리 은하의 아름답게 휘어진 춤사위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10]
어쩌면 우리는 마침 운 좋게 토성과 우리 은하가 가장 아름다운 춤의 절정에 다다른 때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애석하게도 우주는 한 번 지나간 장면은 다시 보여주지 않는다.
우주의 춤사위는 서서히 잦아들고 있다. 오늘밤의 우주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격렬하게 춤추는 우주다.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주를 볼 기회를 부디 놓치지 마시길.
[1]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18-0686-7
[2]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0004-637X/801/2/105
[3]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10417
[5] https://ui.adsabs.harvard.edu/abs/2019arXiv190604203C/abstract
[6]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64/6445/eaat2349.full
[7] https://www.jpl.nasa.gov/news/news.php?feature=7425
[8]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64/6445/eaat2965
[9]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019103518302999?via%3Dihub
[10] https://academic.oup.com/mnrasl/article-abstract/481/1/L21/5071966?redirectedFrom=fulltext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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