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강원도 인제군 대암산(해발 1,304m) 정상 인근에 자리잡은 용늪은 우리나라 유일의 고층습원이다. ‘고층습원(High Moor)’은 식물 군락이 발달한 산 위의 습지를 일컫는다.
일찍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73년 용늪을 포함하는 대암산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89년에는 용늪만 따로 생태계보전지역이 되었다. 1997년에는 경남 창녕군 우포늪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람사르 협약 습지로 등록되었다. 람사르 협약은 물새가 서식하는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1971년 이란의 람사르에서 채택된 국제조약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101번째로 람사르 협약에 가입했다.
용늪 탐방은 대암산 동쪽의 인제군과 서쪽의 양구군에서 각각 출발할 수 있다. 아이와 함께라면 개인 차량으로 용늪 입구까지 이동할 수 있는 인제군 가아리 코스가 좋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용늪을 둘러본 뒤에는 대암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등산로는 비교적 평탄하지만 막바지에는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니 비가 오거나 안개가 낀 날이라면 주의할 것.
인제군의 또 다른 코스인 서흥리 코스는 용늪평화생태마을에서 출발해 용늪까지 오르는 왕복 5시간 남짓의 트레킹 코스다. 올해 10월 람사르 협약의 습지 도시 인증을 기다리고 있는 용늪평화생태마을은 용늪의 생태를 미리 볼 수 있는 전시관과 펜션, 식당 등을 갖추었다.
# 용늪 탐방 전 ‘예약 필수’
생태계보전지역인 용늪을 탐방하기 위해서는 미리 방문 신청을 해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신청은 인제군 생태관광 사이트와 양구군 생태식물원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인제군은 방문 2주 전, 양구군은 20일 전까지 신청을 마쳐야 한다. 하루 허가 인원은 인제군이 150명, 양구군이 100명이다. 용늪 탐방 가능 기간은 5월 16일부터 10월 31일까지인데, 변동될 수 있으니 홈페이지에서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용늪에 도착하면 지역 주민 가이드의 해설로 본격적인 탐방이 이루어진다. 용늪이란 이름은 ‘승천하는 용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란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습지보호지역을 가로지르는 탐방 나무 데크를 사이에 두고 큰용늪과 작은용늪,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애기용늪 등이 자리잡았다. 융단처럼 자란 습지 식물들이 바람에 따라 출렁이는 습지 전체의 면적은 1.36㎢에 이른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지에 용이 쉬어 갈 만한 크기의 늪이 생긴 것은 대략 400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단군 할아버지가 태백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열고 한반도 최초의 나라를 세울 무렵 용늪이 태어난 셈이다. 전체가 온통 바위투성이인 대암산의 정상부는 1년에 5개월 동안이나 기온이 영하에 머물면서 안개가 자주 낀다. 이처럼 춥고 습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바위로 스며든 습기가 풍화작용을 일으켜 우묵한 지형이 만들어졌고 여기에 빗물이 고이면서 습지가 생겨난 것이다.
# 순백의 자작나무숲 걷기
하지만 바위 지형에 빗물이 고였다고 곧바로 다양한 생물들이 둥지를 트는 건 아니다. 용늪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너무 추워 죽은 식물이 채 썩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 이탄층(Peat Deposits)이다.
이탄층이 켜켜이 쌓인 뒤에야 비로소 여러 생물이 자리를 잡았는데 특이한 지형과 기후 덕분에 끈끈이주걱이나 비로용담, 삿갓사초 같은 희귀식물들이 군락을 이루게 되었다. 여기에 산양과 삵, 하늘다람쥐 같은 멸종위기 동물들도 살고 있다. 평균 1m, 최대 1.8m에 이르는 용늪 이탄층은 수천 년에 이르는 식물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 한반도의 식생과 기후 변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용늪이 자리잡은 인제군에는 다른 볼거리도 많다. 인제읍을 가로지르는 소양강변에는 인제산촌민속박물관과 박인환문학관이 나란히 붙어 있다. 인제산촌민속박물관에서는 강원도 인제의 산촌 생활을 계절별로 전시한다. 각종 유물과 영상, 디오라마, 체험을 통해 산촌 사람들의 생활을 생생히 알아볼 수 있다. 인제가 고향인 시인 박인환을 기념해 세운 박인환문학관은 그가 활동하던 1940~1950년대 명동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전시관이 인상적이다.
인제산촌민속박물관을 지난 소양강은 내린천과 인북천이 합쳐 이룬 강이다. 이 두 강이 만나는 자리에 조선 시대 정자인 합강정이 있다. 조선 숙종 2년(1676년)에 처음 지었다가 화재로 소실된 것을 영조 32년(1756년)에 다시 지었다. 정자 옆에는 가뭄이나 전염병을 막으려 제사를 지냈던 강원도 중앙단이 보인다.
인제군 원대리의 자작나무 명품숲은 수십만 그루의 자작나무가 모여 이룬 순백의 세상이다. 입구 주차장부터 한 시간 남짓 임도를 걸으면 하얀 숲을 만날 수 있다. 인제군 남면 수산리에 또 하나의 자작나무숲이 있는데, 원대리 자작나무숲이 더 크고 둘러보기 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여행정보>
대암산 용늪
△위치: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 산 170
△문의: 033-460-2081(인제군 문화관광)
△관람 시간: 9시, 10시, 11시 출발, 3~5시간 소요
인제산촌민속박물관·박인환문학관
△위치: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인제로156번길 50
△문의: 033-462-2086
△관람 시간: 9시 30분~18시, 1월 1일·설날·추석 당일, 매주 월요일 휴관
합강정
△위치: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설악로 2254
△문의: 033-460-2081(인제군 문화관광)
△관람시간: 24시간, 연중무휴
원대리자작나무숲
△위치: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산 75-22
△문의: 033-460-2081(인제군 문화관광)
△관람시간: 24시간, 연중무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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