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이 한국조선해양 초대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권오갑 부회장은 현대중공업그룹 총수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복심’으로 정몽준 이사장의 의중을 그대로 실행에 옮겨왔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서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까지 경영승계 과정으로 평가되는 일들을 사실상 진두지휘한 것으로 전해진다. 권 부회장이 전면에 등장한 배경을 두고, 현대중공업그룹 경영승계 징검다리 역할의 마침표라는 해석이 나온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3일 법인분할 보고 총회를 열고 한국조선해양(전 현대중공업)의 초대 대표이사로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부회장을 선임했다. 권오갑 부회장은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와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를 겸직한다. 권오갑 부회장은 1951년생으로 한국외국어대 포르투갈어과를 졸업한 뒤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권 부회장은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전 명예회장에게 발탁된 뒤 일찌감치 선박 건조 현장을 벗어나 그룹 업무를 맡기 시작했다. 그가 42년 동안 현대중공업에서 일했지만 ‘조선업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다.
권오갑 부회장은 현대중공업 런던사무소 외자구매부 부장을 거쳐, 1990년부터 학교법인 현대학원 사무국장을 지냈다. 흥미롭게도 권 부회장이 정몽준 이사장의 복심이 된 계기는 축구였다. 축구 관련 업무를 함께하면서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권 부회장은 2007년 현대중공업스포츠 대표이사 사장을 시작으로 2013년부터 지금까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를 맡고 있다. 이후 권 부회장은 2010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를 거쳐, 2014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권오갑 부회장은 정몽준 이사장 아들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의 경영 승계를 이어주는 가교로 지목되며, 총수 일가를 제외한 그룹 내 최고 실세로 평가된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과 지난해 여름부터 대우조선 매각을 논의해온 당사자도 권 부회장이다. 또 권 부회장은 순환출자 고리(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를 해소하고 지주사가 자회사(현대중공업, 현대건설, 현대일렉트릭, 현대오일뱅크, 현대글로벌서비스)를 지배하는 지주사 체제 마련을 주도했다고 알려졌다.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를 역임하는 동안 권오갑 부회장에게 주어진 역할은 크게 기업결합 심사 통과, 경영승계 완성, 노동조합과의 갈등 봉합, 세 가지로 예상된다. 당장 해외 공정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아울러 권 부회장은 8시간 전면 파업 중인 현대중공업 노조와 4시간 부분 파업 중인 대우조선 노조를 달래야 한다.
판교 R&D(연구·개발)센터 건립도 권 부회장이 챙겨야 할 현안 중 하나다. 권 부회장은 지난 11일 사내 이메일로 임직원에게 보내는 담화문에서 “조선업을 더 이상 노동집약적 산업이 아닌 기술 중심의 산업으로 전환시켜 나가야 한다”며 “판교에 건립 예정인 글로벌 R&D센터에 최대 5000명 수준의 연구개발 인력이 근무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채용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R&D센터가 권오갑 부회장의 고향인 판교에 지어지는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김형균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실장은 “R&D센터 건설로 울산 인력이 빠져나갈 것이다. 한국조선해양 물적분할 이전부터 예견된 상황이었다”며 “젊은 인력은 판교로 가고 나이 든 인력은 남게 된다. 앞으로도 추가 채용이 이뤄지지 않아 울산은 공장만 남은 빈 깡통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현재 그룹 내 연구개발 인력은 4000여 명이다. 판교 R&D센터 건설은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분포된 인력을 한 군데로 모아 효율성을 높이는 의미가 있다”며 “나머지 1000명은 신입이든 경력이든 신규채용 할 예정이다. 울산에서 인력을 빼 오는 형태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양승훈 경남대 조교수는 “현재 조선소 내에서 일하는 R&D 인력은 ‘산업기술연구원’에 편제돼 있다. 이 인력은 공정의 원가절감이나 기능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현장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인력이 전체 R&D 인력의 15~20% 된다고 본다. 나머지는 현재도 수도권에 분포돼 있는 것으로 안다. 결국 울산에서 인력 유출은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R&D센터는 되도록 현장과 붙어 있는 게 좋은데 현대중공업그룹이 어떤 계획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판교 R&D센터가 경영승계의 큰 그림 중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 판교 R&D센터 건립 주체는 현대중공업지주다. R&D센터가 현대중공업지주 소유가 되면, 계열사가 지주사에 특허권 사용료를 내는 형태가 된다. 이 경우 지적재산권(특허권·상표권) 사용료가 일종의 배당의 형태로 현대중공업지주 지분을 30.9% 가진 총수 일가에 전해지는 셈이다. 물론 기술 유출을 극도로 꺼리는 조선 산업 특성상 주요 기술은 특허권조차 내지 않기 때문에 특허권 사용료로 인한 총수 일가의 실익은 크지 않을 거란 전망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일군 기업들은 창업 1~2세대를 지나 3~4세대에 이르고 있지만 최근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서 가족 승계는 더 이상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사회적으로도 카리스마 넘치는 ‘오너경영인’ 체제에 거부감이 커지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담당 업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늘고 있다. 사업에서도 인사에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전문경영인이며 그 자리는 뭇 직장인들의 꿈이다. ‘비즈한국’은 상시 기획으로 각 업종별 전문경영인 최고경영자(CEO)의 위상과 역할을 조명하며 한국 기업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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