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 회사의 시장 가치를 가늠하는 지표로 보통 주가지수를 참고한다. 그렇다면 기업의 가장 중요한 무형 재산인 ‘브랜드’의 가치는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정답은 브랜드 트래킹 연구(Brand Tracking Research)다. 장기간에 걸쳐 타깃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회사에서 선정한 중요성과지표(KPIs: Key Performance Indicators)에 반영하고 브랜드의 성장 변화를 주기적으로 측정하여 지속적으로 마케팅 전략에 반영하는 것이다.
# 1200조 ‘의외의 거대시장’ 미국의 개인보험
브랜드 트래킹을 수없이 해봤지만 여러 국제 시장을 상대로 진행하는 브랜드 트래킹을 제외하고 미국 내 시장에서 투자와 시장 규모가 거대한 분야는 뜻밖에도 개인 보험이다. 2017년 한 해 미국 개인 보험 시장 규모가 무려 1.2조 달러(1200조 원)이었으니, 그 규모가 감이 오는가.
이 엄청난 시장 가능성을 놓고 스테이트팜(State Farm), 파머스 보험(Farmers Insurance), 얼스테이트(Allstate), 가이코(GEICO),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 등 이른바 ‘빅 5’ 보험 브랜드와 수도 없이 많은 자잘한 보험회사들이 경쟁을 한다.
이들은 TV, 라디오, 온라인, 빌보드, 스폰서십 등 가능한 모든 광고 채널을 총동원하여 소비자들의 뇌에 깊숙이 각인되도록 메시지를 보낸다. 가이코의 경우만 해도 1년에 쏟아붓는 광고 예산이 우리 돈으로 1조 원이 넘는다.
광고를 하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는 이유가 뭘까? ‘보험’이라는 상품의 특수한 성격 때문이다. 개인 보험이란 소비자들이 곁에 두고 사용하거나 생각하는 일상적인 제품이 아니다. 보험료가 올라서 다른 상품을 알아봐야 할 때, 아니면 차를 새로 사거나, 가족이 늘었다거나, 집을 샀거나 뭔가 생활에 특별한 일이 일어났을 때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보험 상품 구매다.
옷이나 식료품, 생활가전 등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상품 카테고리는 소비자들의 기호가 결정에 큰 몫을 하는 데 반해, 보험 구매는 그 과정부터가 복잡하고 돈을 써도 ‘득템’의 즐거움이 없다. 또 차량 소유자로서 보험이 있어야 한다든가 하는 규제 때문에 마지못해 가입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귀찮고 골치 아픈 상품’이라는 인식을 깨고 소비자들의 기억에 남기 위해 자기 브랜드만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일, 그것이 수조 원이 달린 시장을 공략해야 하는 보험회사들의 숙제다.
그래서 보험회사마다 한 해에만 수십 개의 광고를 연이어 제작하고, 다문화층을 공략하기 위해 영어, 스페인어 버전으로 만들기도 하는 등 미국 내 잠재적 보험 구매자들을 상대로 가능한 모든 광고 채널을 동원해 치밀한 전략과 엄청난 예산을 투입한다.
# 내 광고는 얼마만큼 효과가 있을까
자, 이렇게 투자를 했으니 보험 회사로서는 그 많은 광고 비용이 어디로 가느냐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른바 투자자본수익률(ROI: Return On Investment) 측정이다. 이때 광고가 갖는 효력을 가늠하는 작업에 맞춤형 소비자 연구가 쓰인다.
보험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TV 광고가 연중 쉬지 않고 나가는 업계는 1년 내내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한 클라이언트의 경우는 일주일에 300~500명의 보험 구매 의향이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20분 내외의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브랜드 인지도, 브랜드 이미지, 광고 인지도, 광고에 대한 의견 등을 물어 어떤 광고가 효과가 있는지, 광고를 몇 개 보면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가는지, 광고로 인해 브랜드 이미지가 어떻게 개선되었는지를 총체적으로 살펴야 했다.
그때그때 확인되는 브랜드의 성과는 다음 예산을 수립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 어느 광고가 효과가 있고, 어떤 채널(TV, 라디오, 빌보드 등)이 효과가 있는지 알면 다음 예산을 그에 따라 적절하게 안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경쟁사들의 실적 또한 같은 설문조사에서 측정해 그들의 광고와 효과까지 두루두루 살핀다.
거의 모든 브랜드의 KPI로 손꼽히는 브랜드 인지도의 경우는 그 중요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인지도 성적에 따라 사원들의 연말 보너스가 결정되는 경우도 많이 봤다.
# 회사마다 ‘맞춤 트래킹’으로 브랜드 가치 측정
트래킹은 회사의 니즈에 맞춰 조절할 수 있는데, 그 좋은 예가 미국의 대표 리테일 브랜드가 매년 추진하는 홀리데이 브랜드 트래킹(Holiday Brand Tracking)이다. 이 클라이언트는 리테일 분야에서 가장 바쁜 시기인 11월 추수감사절 직전에 설문조사를 시작해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 사이버 먼데이(Cyber Monday), 12월 크리스마스를 지나 1월 초(New Year)까지 집중적으로 브랜드의 성적을 측정하는 작업을 의뢰했다.
우리는 일주일에 1000명 이상의 명절 쇼핑 고객을 상대로 20분 내외의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는 카테고리별로 세분해 패션, 가전제품, 장난감, 크리스마스트리와 같은 연말용 홈데코레이션 파트를 각각 측정했다.
20분의 설문조사를 통해 기본적으로 지난주 어느 브랜드 제품을 샀는지, 그 브랜드를 이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광고를 봤는지, 세일이나 프로모션을 이용했는지, 쇼핑 패턴을 다각적으로 분석한 후 인사이트를 바로바로 클라이언트에게 전달했다. 인사이트를 보고 받은 클라이언트는 즉각적으로 수정 가능한 미디어 전략을 재정비하고, 경쟁사들의 동향을 살피며, 자사의 프로모션 전략이 효과가 있는지를 따져볼 수 있다.
처음 소비자 연구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 것은 홀앤파트너스(Hall & Partners)에서였다. 영국의 미디어 기업 옴니콤(Omnicom) 산하의 회사라 유독 브랜드 트래킹을 많이 했다. 클라이언트마다 분야, 공략 대상, 공략 시장, 광고 전략 등등이 다르기 때문에 연구 방식은 비슷해도 똑같은 연구는 거의 없었다.
미국 내 시장만 보는 브랜드 트래킹부터 미국, 영국, 호주, 아시아 각국을 포괄하는 글로벌 브랜드 트래킹,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클라이언트를 위한 브랜드 트래킹부터 이미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전통 기업을 위한 브랜드 트래킹, 제품에 초점을 둔 브랜드 트래킹부터 광고에 초점을 둔 브랜드 트래킹, 미국 일반 인구를 공략하는 브랜드 트래킹부터 히스패닉이나 아시아계 소비자만을 상대로 하는 작지만 뚜렷한 타깃을 상대로 하는 브랜드 트래킹, 1년 내내 설문조사를 하거나 혹은 1년에 한 번씩 진행하는 브랜드 트래킹…. 브랜드의 니즈에 따라 연구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다양성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브랜드 가치가 기업에 갖는 중요성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브랜드의 효력. 그것을 가시화하고 기업의 전략 수립을 가능하게 하는 작업이 브랜드 트래킹이다.
필자 황지영은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엔터테인먼트 경영 석사를 마치고 Fox Television, Warner Bros. Television 리서치 부서에서 일했다. 글로벌 소비자 마케팅 리서치 회사 Hall & Partners, Kelton Global에서 경력을 쌓고 2015년 소비자 마케팅 연구 회사 마인엠알(MineMR)을 설립, 현재 미국 LA에서 글로벌 기업들을 클라이언트로 소비자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황지영 MineMR 대표·마케팅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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