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 ‘빅딜’ 성사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5월 31일 노동조합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주주총회 장소와 시간을 기습 변경하는 수법으로 끝내 한국조선해양 법인분할(물적분할) 안건을 통과시켰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노조는 이를 ‘위법주총’으로 규정하고 지난 3일 각각 8시간 전면파업과 4시간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감정의 골이 깊어진 사측과 노조는 엇갈린 주장을 펼치며 대립 중이다. 노조는 이번 빅딜이 경영승계를 위한 포석일 뿐이라며 국내 조선산업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측은 노조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며 이번 빅딜은 국내 조선산업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받아쳤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한 가운데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안개에 휩싸인 국내 조선산업의 방향을 결정할 키는 현대중공업에 넘어갔다. 현대중공업의 다음 행보에 업계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현대중공업이 ‘빅딜’ 성사 전후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존재한다. 그중 주목할 만한 지점이 있다.
# 해외 공정당국의 기업결합 심사 통과할 수 있을까
현대중공업은 시장지배력 강화로 인한 불공정거래 시비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는 물론 해외 공정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세계 1위와 2위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지난해 말 기준 수주잔량은 각각 13.9%와 7.3%였다. 빅딜로 두 조선소가 합치면 수주잔량은 21.1%로 세계 3위인 일본 이마바리조선소의 6.6%에 크게 앞선다.
현대중공업의 국내 기업결합 심사는 문제없어 보인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빅딜 계획이 발표된 지난 1월 말 이후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왔다. 해외 기업결합 심사가 관건이다. 조선산업 최대 경쟁국인 일본과 중국은 물론, 세계 최대 해운사 머스크가 있는 유럽 당국의 반발이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조선해양이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강력한 가격 협상력을 가지면 선박 가격이 올라가고, 해운사에게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의 저자 양승훈 경남대 조교수는 “현재 몇 개의 국가에서 기업결합 심사를 받아야 하는지, 각 국가의 기준은 어떻게 되는지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현대중공업이 내부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국가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내다봤다.
# 정기선의 현대글로벌서비스는 한국조선해양에 넘어갈까
이번 빅딜은 경영승계를 위한 포석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현대중공업그룹 총수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아들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에게 그룹 승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이번 빅딜을 성사시켰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은 이번 빅딜로 정기선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현대글로벌서비스가 내부규제를 피해갈 여지를 만들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현대중공업의 선박 사후관리(A/S) 부문을 떼어낸 회사로, 정몽준·정기선 부자가 지분 30.2%를 가진 현대중공업지주의 100% 자회사다. 현대글로벌서비스의 2017년 내부거래 비율은 35.6%(약 849억 원)에 달했다. 현 공정거래법(제23조의 2)은 강화될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다만 현대글로벌서비스가 현대중공업지주의 자회사에서 손자회사로 탈바꿈하면 강화될 공정거래법도 피해갈 수 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한국조선해양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1조 5000억 원을 지원할 예정으로 이때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지분을 현물 출자할 가능성이 크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2016년 29억 원이던 현대글로벌서비스의 매출액은 지난해 4132억 원으로 늘었다”며 “현대중공업 경영승계는 2017년 지주사 체제 전환으로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고 보지만,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정기선 부사장의 경영 능력에 챌린지가 들어올 때 방어막이 되어줄 ‘알짜 회사’”라고 전했다.
# 대우조선은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 칼날 피해갈까
노조를 비롯해 지역사회와 정치권이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합병에 반발한 가장 큰 이유는 구조조정이다. 친환경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건조 등 사업 구조가 유사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합쳤을 때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릴 만큼 현대중공업의 의중을 읽기란 쉽지 않다.
이런 불안감을 의식했는지,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과 한영석·가삼현 현대중공업 공동대표는 기자회견과 담화문을 통해 여러 차례 “구조조정은 없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지금처럼 사업을 따로 둔다”고 밝혀왔다. 더불어 빅딜을 이끄는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 측은 지난 1월 말 빅딜 계획을 발표하면서 내세웠던 ‘산업 구조 재편’과 ‘경영 효율화’라는 단어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의 불안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김형균 현대중공업 노조 정책기획실장은 “대우조선을 인수해서 대내외 경쟁력을 높인다고 하지만 결국 구조조정을 통해 인건비를 줄이고 경영 효율을 한다는 말”이라며 “고용을 안정시키겠다는 말과 효율을 높이겠다는 말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핫클릭]
·
[울산 현장] 법인분할 가결, 긴박했던 현대중공업 '주총 전쟁'
·
"대우조선 주인 찾아야…" KDI의 이례적 입장 공개, 왜?
·
[현대중 경영승계 빅픽처3] 4조짜리 대우조선, 현금 7천억이면 산다?
·
[현대중 경영승계 빅픽처2] 중간지주 '우산' 내부거래 칼날 피하나
·
[현대중 경영승계 빅픽처1] 지주사 전환과 정기선의 현대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