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전력공사(한전)는 국내 전역(구역전기사업자 판매지역 제외)에 소비되는 전력량 대부분을 판매하는 시장형 공기업이다. 2018년 연결 기준 매출이 60조 6276억 원에 달하며 원자력‧화력발전 및 기타 사업을 영위하는 국내외 106개 자회사를 가졌다. 지난해 우리나라 2350만 2000호에 총 52만 6149GWh(양수동력 제외)의 전력을 판매했다.
김종갑 한전 대표이사 사장은 영업적자가 가시화되던 2018년 4월 취임한 한전의 20번째 수장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서 태어나 안동중, 대구상고,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김종갑 사장은 고향에서 보충역으로 근무하던 1975년 1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했다.
상공부에서 공직생활 첫발을 내디딘 김 사장은 통상협력 담당관과 미국 허드슨 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1999년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 2001년 산업정책국장에 올랐다. 2004년 제18대 특허청장에 임명된 김 사장은 2006년 산업자원부 제1차관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쳤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2007년 하이닉스반도체 대표이사 사장, 2011년엔 글로벌 에너지기업인 한국지멘스 대표이사 회장을 맡은 ‘산업통’이다.
취임 후에는 ‘격식을 파괴하는’ 인사 방식과 소탈한 행보로 주목 받았다. 민간기업의 실리 중심 경영에 공기업의 책임의식을 결합했다는 게 내부 평가다. 김 사장은 취임 직후 상임이사 임명과 본부장급 인사를 위해 대상자 40여 명의 보직 의향서를 받아 직접 면접했다. 상명하복식 인사에서 벗어나 인사 대상자가 희망 부서를 제안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도록 한 것은 한전에서 유례가 없다.
불필요한 보고서나 파워포인트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메일 또는 구두 보고를 늘렸다. “내용이 중요하다. 보기 좋게 만드는 데 시간을 들이지 말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경영진 전용 엘리베이터를 모든 직원에게 개방하고 600여 석의 구내식당을 매일 이용하는 소탈함도 보였다. 김 사장은 2007년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취임 후에도 ‘보고라인 간소화’와 ‘의전 문화 타파’를 강조했다.
취임 후 김종갑 사장은 전기요금 개편에 방점을 둔 발언을 이어왔다. 2018년 6월 취임 후 처음 연 기자간담회에서 “2017년 경부하 요금(산업용)으로 쓴 전기가 전체 전력사용의 49%에 이르렀다. 특히 대기업이 오후 11시에서 오전 9시까지 심야시간에 전기의 53%를 쓰고 있다. 산업용 경부하 전기요금 조정은 확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해 7월에는 개인 소셜네트워크 계정에 ‘두부 공장의 걱정거리’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게시물에서 김 사장은 “수입 콩 값이 올라갈 때 그만큼 두부 가격을 올리지 않아 이제는 두부 가격이 콩 가격보다 더 싸지게 됐다”며 한전을 두부공장에 비유해 발전단가에 맞게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2차에너지인 전기보다 전기를 만드는 석유‧가스 등 1차에너지 원료가 비싼 현실을 꼬집은 것.
김 사장은 올 1월 기자간담회에서도 “2018년 원가 이하로 판 전기가 4조 7000억 원 정도다. 원가를 반영해 전기요금체계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사장이 이 같은 주장을 계속하는 건 한전이 2017년 4분기부터 한 분기(2018년 3분기)를 제외하고 매 분기 적자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한전은 지난해 1조 1745억(연결기준) 적자를 낸 데 이어 올 1분기 7611억 원의 손실을 봤다. 한전 측은 “석탄 등 연료비 상승과 그에 따른 구입전력비(민간 발전사에서 구입하는 전력비) 상승이 영업손실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 전기요금 인상에 의욕적이던 김 사장, 정부 추진안 이후 정중동
6월 3일 한전과 정부, 소비자단체와 학계 등으로 구성된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는 전문가 토론회를 열며 세 가지 누진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TF가 내놓은 개편안은 크게 △여름철 누진 1, 2구간 확대 △여름철 누진 3구간 폐지 △1~2구간 사이 요금으로 연중 요금 단일화(누진제 폐지)로 나뉜다. ‘누진 3단계’로 불리는 현행 전기요금은 한 달 전기 사용량이 0~200kwh일 때 93.3원/kwh, 200kwh~400kwh일 때 187.9원/kwh, 400kwh 이상일 때 280.6원/kwh이 적용된다.
국민에게 돌아가는 총 할인 규모는 최대 2985억 원 수준. 한전은 1~3 개편안을 추진했을 때 가구에 돌아가는 총 할인 규모를 평년(2017년) 기준 각각 2536억 원·961억 원·0원, 폭염이 있는 해(2018년) 기준 2847억 원·1911억 원·2985억 원으로 내다봤다. 111년 만의 폭염이 찾아온 지난여름 두 달간 누진 구간을 확대(1안과 동일)하면서 발생한 총 할인 규모는 3611억 원이다.
김종갑 사장의 바람은 TF가 내놓은 주택용 전기요금 개편안으로 또 한 번 고비를 맞게 됐다. 정부가 최대 2985억 원에 달하는 할인 재원의 부담을 일차적으로 한전에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3일 열린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 토론회에 참석한 권기보 한전 영업본부장은 “세 가지 개편안이 국민 부담은 경감시키지만 한전의 영업이익에는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추가적인 재정 부담에 대해 이사회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나왔다. 누진제 개편에 따른 재원은 정부 재정이나 전력산업기반자금 등으로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찬기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시장과장은 “소요 재원은 한전이 공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부담할 예정이다. 정부도 국민 냉방 부담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소요 재원 일부를 지원할 계획”이라며 “작년의 경우 111년 만의 폭염 때문에 한시적으로 할인했고, 당시 정부는 예산 신청을 했지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의견 수렴 과정 등 법적 절차를 거쳐 한전의 전기요금표가 바뀌고 상시화되면 정부 지원도 제도화되기 때문에 작년과는 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전 측은 ‘비즈한국’에 “전기요금 인상(1416만 가구에게 가구당 월 평균 4335원 인상) 내용을 포함한 세 번째 안이 (셋 중) 그나마 낫다고 볼 수 있지만, TF에서 제시한 개편안 중 어느 것이 채택되더라도 한전에게는 마이너스(손실)가 될 것”이라며 “한전이 손해보는 전기요금 구조를 개선하고자 필수사용량 공제(4000원)를 없애자는 주장도 했지만 좌절됐다. 전기요금을 현실화하는 것이 한전 수익성을 개선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지만,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고 단정한 정부 방침이 TF에서 나와 한전 입장이 곤란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취임 초기 한전 및 전기료 개편에 의욕적이던 김종갑 사장은 최근 정중동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정부의 전기료 개편이 김 사장의 생각과 반대 방향으로 추진되기 때문이다. 최근 김 사장의 근황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최근 특별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전기료 개편 관련 의견에 대해서는 “올 1월 기자간담회에서 (김종갑 사장이) 말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주주들로부터 배임 소송을 당할 우려가 있어 정부가 추진하는 전기료 개편안의 이사회 통과는 예측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일군 기업들은 창업 1~2세대를 지나 3~4세대에 이르고 있지만 최근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서 가족 승계는 더 이상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사회적으로도 카리스마 넘치는 ‘오너경영인’ 체제에 거부감이 커지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담당 업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늘고 있다. 사업에서도 인사에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전문경영인이며 그 자리는 뭇 직장인들의 꿈이다. ‘비즈한국’은 상시 기획으로 각 업종별 전문경영인 최고경영자(CEO)의 위상과 역할을 조명하며 한국 기업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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