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뭐랄까, 썩은 무말랭이 냄새? 행주 삶는 냄새? 가끔 지하철 탈 때 맡는 냄새….”
한국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방에 사는 기택(송강호 분) 일가족이 글로벌 IT기업 박사장(이선균 분) 저택에 대거 취업하는 모습을 그린다. 박 사장 부부는 집안 운전기사로 들어온 기택에게서 이런 냄새가 난다며 수군거린다.
딸 기정(박소담 분)은 기택과 어머니 충숙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는 박 사장 아들 말을 듣곤, 그 냄새가 반지하 주택에서 나는 냄새란 걸 단번에 알아챈다. 이들이 사는 집에 신선한 공기를 들일 통로는 거실에 난 창문과 출입구뿐. 어른 키 정도 높이의 창밖으로는 아스팔트 도로와 행인들의 다리가 보인다.
기택네 가족은 이 창문으로 신선한 공기와 방역기에서 나온 소독 연기, 주민들의 소음, 집안이 잠길 정도의 빗물까지 모조리 들인다. 영화의 주된 공간이 되는 반지하(지하 포함) 주택, 우리나라 땅 밑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을까.
# 전체가구 중 1.9% 반지하 주택 거주, 서울‧광진구에 가장 많아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1.9%는 기택네처럼 반지하(지하 포함) 주택에 산다. 통계청이 5년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2015년)’에 따르면 전국 36만 3896가구가 반지하 주택에 산다. 2010년 조사보다 15만 4000가구가 감소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다.
통상 건물 바닥에서 지표면까지 높이가 해당 층의 2분의 1 미만인 경우를 반지하, 2분의 1 이상인 경우를 지하층이라 부른다.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반지하와 지하층을 구분하지 않기에 ‘2018년 주거실태조사’의 ‘반지하 주택’에는 지하 주택을 포함시켰다. 국토교통부 조사(2017년)에서 서울시 반지하 주택은 전체 주택의 6.6%, 지하 주택은 전체의 0.5%였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반지하 주택 가구 수와 비율은 서울이 각각 22만 8467가구, 6.03%로 가장 많았다. 경기도가 9만 9291가구(2.26%), 인천 2만 1024가구(2.01%)로 그 뒤를 이었다. 서울시가 국토부와 함께 서울시민 1만 60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7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7.1%가 반지하 주택에 살고 있다. 전체 가구 대비 반지하 주택 거주 가구 비율은 광진구가 13%로 가장 높았고, 강북구가 10.9%, 강동구가 10.8%, 관악구와 은평구가 각각 9.5% 순으로 높았다.
광진구 구의동의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는 “학생들이나 교포가 주로 반지하 주택을 찾았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반지하 주택이 공실이다. 반지하 임대가 안 나가서 건물주가 신축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며 “광진구 소재 26.45㎡(8평) 규모 반지하 원룸의 경우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수준”이라고 전했다.
인근의 다른 부동산공인중개사도 “과거엔 청년들이 반지하 주택을 꽤 찾았지만 지금 청년들은 그런 집을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공실이 많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 "장마철도 아닌데 늘 습해"…화장실·부엌 습도는 연평균 88%
반지하 주택 거주 가구의 가장 큰 적은 습도다. 영화 속 기택에게서 퀴퀴한 냄새가 났던 이유기도 하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인근 반지하 주택에서 1년째 거주 중인 A 씨(23)는 “가장 싼 집을 찾다 지난해 2월 전세 4000만 원에 입주했다”며 “햇빛이 들기 않기 때문에 창문을 열지 않으면 굉장히 습하다. 창문 바로 앞이 주차장이라 소음과 먼지가 신경 쓰여 쉽게 문을 열 수 없다. 날벌레도 많다”고 토로했다.
2017년 가을부터 1년 동안 강북구 수유3동 반지하 주택에 살았던 B 씨(37)도 “장마철이 아닌데도 항상 집안이 습했다. 습도계를 사뒀는데 문을 열지 않으면 습도가 85%까지 올랐다. 빨래는 마르지 않고 벽에 곰팡이가 피었다. 가전제품을 잘 사지 않는 편인데 버티다 못해 당시 제습기를 구매했다”며 “보통 반지하 주택에서는 환기를 위해 대문을 열기도 하는데, 반지하에만 세 가구가 살고 있어 그마저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현재 B 씨는 반지하에서 나와 다가구주택 옥탑방에 살고 있다.
대진대학교 류동우 교수가 2018년 반지하 거주 가구 10곳을 대상으로 주거환경실태를 분석한 결과, 모든 가구에서 결로 및 곰팡이가 발생했으며 수증기 발생이 잦은 화장실 및 부엌 영역은 평균 88%RH(relative humidity·상대습도)로 곰팡이의 증식을 촉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상청이 제시한 쾌적 온·습도범위는 15.6~20℃, 40~70%RH 수준이다.
지하 주택은 침수에도 취약하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특성상 호우가 내리면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2010~2013년 서울시에 접수된 침수 확인 조서 2만 121동 중 지하 주택 피해는 1만 2034동으로 전체 59.8%를 차지했다. 반지하 침수주택은 관악구가 1410동으로 가장 많았고 양천구가 1191동, 강서구가 1120동, 동작구 930동 순으로 대부분 한강 이남에 분포했다.
서울시 하천관리과 관계자는 “2018년 침수된 주택 1465채 중 대부분이 지하 또는 반지하 주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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