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사기 여러 차례 당해
기자가 박씨를 만난 것은 8일 오후 2시 서울 충무로 한 예식장에서였다. 이날 박씨는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예식장 피로연에 참석했다. 일행 중 누군가 박씨를 알아보았고, 박씨는 망설이던 끝에 자신이 ‘화제를 모은 노숙자’가 맞다고 실토했다. 이때부터 호기심을 참지 못한 일행들이 박씨를 향해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일행 모두 나이가 박씨와 비슷한 50대 후반이었고, 그중에 박씨의 친구도 있어서 그랬는지 박씨는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다음은 박씨와 일행 사이에 오간 일문일답.
-돈이 그렇게 많은데 왜 노숙자가 됐나.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뒤 물려받은 유산으로 이런저런 사업을 했는데 번번이 사기만 당했다. 내가 돈 있는 사실을 알면 사람들이 어떻게든 빼먹으려고 접근했다. 반복적으로 사기를 당하다보면 사람을 불신하게 돼 있다. 내가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멀리하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돈 많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써다보니 노숙자의 길을 가게 된 거다”
-어떤 사기를 당했나.
“주로 부동산 사기를 많이 당했다. 내가 어리석어 당한 거다. 그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노숙생활 3일째 가장 힘들어
-가진 사람이 노숙생활을 하면 여러모로 불편하지 않나.
“아니다. 노숙 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사실 노숙생활 시작하고 3일째가 가장 힘들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서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노숙자들 행색이 지저분하고 고생스럽게 보이겠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노숙인 중에는 도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도 있다. 내가 노숙생활을 하면서 만난 노숙자 중에 나보다 배운 게 많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 꽤 있었다. 그 분들은 땅바-돈이 있으니 목욕탕에도 가고 깨끗한 노숙자 생활을 한 건 아닌가. 그래서 버티는 게 가능한 건 아닌가.
“억측이다. 너무 깨끗하게 하고 있으면 노숙자들끼리 경계한다. 지저분하게 하고 있을수록 경계심을 풀고 다가온다”
-사람을 멀리한다면서 노숙자들은 왜 가까이 하나.
“노숙자들은 사기 치지 않는다. 멀쩡한 사람들이 외려 노숙자를 사기 치지. 노숙자 중에는 알코올 중독자들이 많다. 그 사람들은 천원, 이천원이 생기면 그 돈으로 밥을 사먹지 않고 술을 사 먹는다. 나는 같은 노숙 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술 마시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술을 사줬다. 내가 사준 술을 마시며 행복해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도 행복감을 느꼈다”
휴대폰도 없이 나홀로 생활
-지금은 어떻게 사시냐.
“노숙 생활을 접었다. 하고 싶어도 못한다. 언론에 공개된 후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고 생활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노숙자 곁을 떠났다.
-생활 형편은 어떤가.
“사는데 불편한 건 없다. 은행 예금 이자가 또박또박 나온다. 돌이켜보면 노숙자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 노숙인들에게 술 사주고 밥 사주면 왕처럼 대접했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 말을 끝으로 박씨는 입을 닫았다. 박씨는 건강해보였다. 하지만 눈빛은 어딘가 불안해보였다. 일행 중 누군가 휴대폰 번호를 가르쳐달라고 말하자 박씨는“없다”고 잘라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자가 물었다. 결혼도 안하고 자식도 없다던데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고 싶으시냐고. 그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혼자서, 무인도에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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