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경기가 어렵다. 모든 분야에서 이익률보다 고정비 회수가 주요 관심사다. 회사의 경영자라면 임직원에게 회사의 상품을 급여 대신 지급하거나(현물급여), 회사의 상품을 사게끔 하는 식(사원판매)의 고통분담이 필요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다만 현물급여가 금지된다는 것(근로기준법 제42조)은 상식에 가깝다. 돈 대신 상품으로 월급을 받는 것은 해외토픽에나 나오는 일이므로, 최근에는 현물급여 사례를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임직원에게 자사의 상품·용역을 구입·판매하도록 강제하는 사원판매는 지금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08년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를 유치하면서 사원판매 행위를 한 A 그룹 계열사를 제재한 사례, 2011년 임직원에 대해 신문 구독자 유치 목표를 할당하고 해당 실적을 달성하지 못한 경우 인사고과에 반영한 B 신문을 제재한 사례 등이 그 예다.
‘사원판매’란 부당하게 임직원으로 하여금 자기 회사의 상품이나 용역을 구입하도록 강제하는 행위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임직원들에 대하여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는 회사의 경영자 등이 임직원들의 의사에 반하여 자기 회사 제품의 구입이나 판매를 강요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공정거래법 규정의 체계를 살펴보면,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각호는 불공정거래행위의 여러 유형을 금지하고 있다. 그 중 거래강제(제3호)가 있고, 거래강제 중에는 사원판매, 끼워 팔기, 기타의 거래강제가 있다(시행령 별표 1의2 제5호 나목). ‘거래강제’란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강제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사원판매’는 고객이 아니라 자신의 임직원에 대하여 구매·판매를 강요하는 점에서 거래강제의 유형 중 하나에 해당한다.
여기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부당하게’(부당성)란 경쟁 수단의 불공정성을 의미한다. 고용관계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임직원이 가지는 자유로운 의사결정의 자유를 침해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경쟁수단을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사원판매의 리딩 케이스로 언급되는 사건으로 대우자동차판매 건이 있다. 대우자동차판매는 관리직 대리급 이상 임직원을 상대로 보유 차량을 대우자동차의 차량으로 교체하도록 했다. 대법원은 2001년 2월 9일 판결에서 임직원들의 차량 구입 및 차종에 대한 선택의 기회를 제한해 그 구입을 강제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2000두6260).
1990년대 후반 대우자동차의 경영은 매우 어려웠다. 회사의 경영진은 법원에서 임직원들에 대한 차량 교체 요구는 회사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행위라고 주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법원은 부당성이 인정되는 한 사업경영상의 필요나 거래의 합리성 유무는 법 위반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보아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원판매가 특히 문제되는 분야로 신문판매 시장이 있다. 신문은 상품수명이 1일 이내로 극히 짧고 재고처리가 불가능하여 신속한 배달체계를 갖춘 판매망이 요구된다. 그리고 신문판매업자는 신문판매 외에도 배달단계에서 광고전단지 배포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으므로, 판매부수 확장에 주력하고 이러한 특성으로 신문판매업자 사이에 판촉경쟁이 과열된다(공정위 2011. 10. 11.자 의결 제2011-088호).
또한 최근 유료 구독자 수 감소, 미디어 매체의 증가에 따른 영업환경 악화로 매출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에 사원판매의 유혹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금도 공정위에는 신문, 언론매체의 사원판매 건이 계류 중이다.
사원판매는 사양 산업이나 불황의 단면을 보여 준다. 대체로 사원판매는 일감절벽에 내몰린 경영진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수단이다. 사원판매 문제가 불거질 경우 회사의 평판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원판매에 관한 언론보도를 접한 일반 시민들은 ‘얼마나 물건·서비스가 좋지 않으면 직원들도 사주기 싫은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 원론적이고도 어려운 말이지만 매출확보의 1차적인 수단은 임직원들의 고통분담이 아니라 상품·서비스 자체의 경쟁력 확보에 달려 있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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