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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반도체산업의 미-중 무역분쟁 활용법

미국이 화웨이 등 중국 기업에 규제 강도 높이며 한국 파운드리·통신칩 활로 가능성

2019.05.31(Fri) 18:27:17

[비즈한국] 일단 한숨 돌렸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으로 ‘반도체 굴기’를 외치던 중국의 위세가 한풀 꺾이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시간을 번 것이다. 중국은 그간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한국 타도를 외치며 설비의 첨단화와 수율 개선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미국이 화웨이 등 중국 첨단 기업에 규제 강도를 높이며 한국으로서는 기술 격차를 벌리고 중국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으로 ‘반도체 굴기’를 외치던 중국의 위세가 한풀 꺾이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시간을 벌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충북 청주 SK하이닉스 반도체공장 M15 준공식 행사를 마친 후 전시관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한국이 취약한 파운드리·통신칩(AP) 분야에서도 활로가 뚫릴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수는 중국을 글로벌 서플라이체인에서 배제한 것이다. 치명타는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 기업인 영국의 ARM이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한 것이다. ARM은 반도체 칩 설계의 지적재산권(IP)을 쥔 회사로 여러 반도체 회사들이 설계를 할 때 기술을 판매하고 도움을 준다. 

 

반도체 설계의 처음부터 중간 과정까지의 기초 공사는 ARM의 IP를 사용한다. 그런데 ARM은 미·중 무역분쟁이 불거지자 화웨이와의 협력 거부를 선언했다. 이에 화웨이는 앞으로 ARM의 원천 기술을 배제하고 스스로 반도체 설계를 해야 하며, 성공한다고 해도 ARM의 원천 기술에 대한 특허 소송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시장에서 이를 검증받는 데도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ARM의 IP에서 배제되면 중국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체제에서는 경쟁력을 잃게 된다. 비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는 국내 업체들이 고전하던 분야다. 부가가치 창출 능력이 높지만, 대만 TSMC와 중국 일부 업체들이 글로벌 비메모리 반도체 기업들과 오랜 기간 맺어온 거래 관계를 비집고 들어가지 못했다.

 

한국 업체들은 당장 파운드리 경험도 부족하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1위를 선언하고 대규모 투자에 나선 가운데, 파운드리 시장에서 자리 잡으려면 신뢰 제고가 전제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분야에서 압도적 경쟁력이 있다는 점은 비메모리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들에게는 위협적이다.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설계 능력을 갖출 경우 시장을 잠식할 수도 있어 경계감이 팽배하다. 이는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이런 불안감을 삭히지 못하면 신규 거래처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팹리스의 생명은 설계 노하우다. 파운드리 회사에 발주를 하려면 IP를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며 “TSMC가 파운드리의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오랜 기간 누적된 신뢰 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나 화웨이가 구글 서버 장비에 ‘슈퍼마이크로칩’을 탑재한 이후 기술 탈취에 대한 경계심도 커진 상황이다. 세계 최대 기술 학회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가 화웨이 소속 엔지니어들을 논문 심사위원에서 배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퀄컴·삼성전자·SK하이닉스·TSMC·도시바·HP·시스코 등이 회원사인 반도체 기술 표준단체 JEDEC도 미국의 제재가 풀릴 때까지 화웨이의 회원 자격을 정지하기로 했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파운드리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TSMC처럼 ‘팹리스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명문화된 약속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당장 삼성전자는 통신칩과 전장용 반도체 생산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시장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호기를 맞았다.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내 홍보관인 딜라이트를 찾은 학생들이 반도체 홍보 전시물을 살펴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통신칩 시장도 마찬가지다. 현재 화웨이는 글로벌 통신칩 시장에서 압도적 시장점유율을 지키고 있으며 스마트폰 시장점유율도 날로 키우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쓰이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모바일 AP)나 모뎀 칩을 퀄컴과 인텔로부터 납품받고 있는데, 미국의 제재를 계기로 납품선이 끊겼다. 화웨이는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만든 모바일 AP ‘기린’(KIRIN) 등 자체 생산품만으로 스마트폰을 생산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기린 역시 ARM으로부터 라이선스를 빌려와야 만들 수 있는 상황이라 진퇴양난에 빠졌다. 무선인터넷 표준을 정하는 와이파이(WiFi·무선인터넷)연맹도 화웨이의 회원 참여를 잠정 제한하기로 했다. 와이파이 연맹은 애플과 퀄컴·브로드컴·인텔 등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당장 삼성전자는 통신칩과 전장용 반도체 생산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시장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호기를 맞았다. 섣불리 진출했다가 미·중 무역분쟁이 끝나고 중국의 보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자율주행자동차와 5세대이동통신(5G) 확대로 넓어지는 시장을 놔둘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 인수한 하만카돈과의 협업을 통해 통신칩과 자율주행자동차용 하드웨어 개발과 시장 확대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증권사 반도체담당 연구원은 “최근 중국 반도체에 대한 국제적 제재로 중국으로서는 자체 기술 개발, 제작의 필요성을 더욱 키운 측면이 있다”며 “하이실리콘이 세계 최초로 차량용 5G 통신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등 투자와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어 국내 기업들도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한국이 앞선 경쟁력을 자랑하는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도 격차를 더욱 벌릴 필요가 있다. 중국은 패키징·테스트 등 후공정은 이미 상당 수준 올라온 상태다. 전공정에서의 정밀 공정 경쟁력이 뒤처지는데, 지난 3~4년 사이 수율이 상당 수준 올라왔다. 다만 미국과의 무역마찰로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에서의 장비 수급에 차질이 생겨 3~5년의 기술 격차는 당분간 지켜질 전망이다.

 

그러나 D램 시장 시장에서 막힌 중국이 낸드플래시 시장에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이르면 올해 중에 낸드플래시 양산에 나설 전망이다. 중국 YMTC가 낸드플래시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한 상태라 미국 제재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 이 때문에 낸드플래시 업종은 당분간 업황 부진이 이어질 전망이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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