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해 온통 화제다. 칸 영화제에서는 전통적으로 황금종려상은 작품과 감독에게 주는데, 주연 배우에게 수여된 적도 있다. 2013년 ‘가장 따뜻한 색, 블루’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첫 여배우가 된 프랑스의 레아 세이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스타트업과 상관없는 영화 이야기로 운을 뗀 이유는, 레아 세이두의 아버지이자 프랑스의 드론업체 패롯(Parrot)을 창업한 앙리 세이두(Henri Seydoux) 때문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디어 재벌가의 장남이지만 아버지와의 불화로 상속을 포기하고 스스로 창업한 앙리 세이두의 삶은 영화보다 흥미진진하다.
1960년생인 앙리 세이두의 아버지는 제롬 세이두. 프랑스 미디어 재벌이자 유럽 최대 영화관 체인 중 하나인 파테(Pathé)그룹 회장이다. 삼촌인 니콜라 세이두는 세계 최초이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영화사 고몽(Gaumont)그룹 회장. 이 두 그룹은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발명한 이듬해인 1896년에 창업해 백 년이 넘도록 프랑스와 영화의 역사를 이끌어왔다. 이런 두 그룹을 한 집안이 경영한다는 사실이 놀라운데, 그뿐이 아니다.
앙리 세이두의 외할머니는 세계 최대 유전 개발 서비스 회사로 연간 매출이 40조 원에 육박하는 슐룸베르거(Schlumberger)그룹 창업자의 딸이다. 가히 프랑스를 대표하는 재벌가의 장남이지만, 앙리 세이두는 어느 쪽의 경영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누구의 아들, 손자, 조카(혹은 아버지)가 아닌 기술 창업가로 더 유명하다.
금수저도 이런 금수저가 없지만 앙리 세이두의 유년 시절은 별로 행복하지 않았던 듯하다. 천재적인 두뇌를 타고 났지만 어린 시절에는 난독증과 주의력 결핍, 경미한 자폐 증세 등 각종 학습장애로 인해 제대로 학교를 다닐 수조차 없었다. 엄한 집안 분위기가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버지 제롬 세이두는 이런 큰아들을 못마땅해하며 사사건건 야단치기 일쑤였다고 한다. 앙리는 어렵게 바칼로레아를 통과하고 의대에 진학했으나 결국 낙제하고 만다.
집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금수저답게 앙리는 파리의 클럽을 전전하며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록스타 믹 재거 등과 어울렸다. 우연히 언론인 장프랑수아 비조(Jean-Francois Bizot)를 만나 그가 창업한 ‘악추엘(Actuel)’ 잡지에서 잠깐 기자로 일했다. 비록 6개월의 짧은 기자 생활이었으나 이 과정에서 인생을 바꿀 인연을 만나게 된다.
이 칼럼에서도 소개했던 스마트카드 발명가 롤랑 모레노를 인터뷰한 것이다. 모레노와의 대화를 통해 컴퓨터에 흥미를 갖게 된 앙리는 즉시 애플 II 컴퓨터를 구입해 6주 만에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익힌다. 재벌가의 장남이지만 천덕꾸러기로 자란 그가 마침내 억압된 천재성을 드러낼 분야를 접한 것이다.
마침 프랑스 명문 공대인 에콜데민(Ecole des Mines) 프랑수아 미치 교수가 세계 최초로 터치스크린을 사용한 휴대용 컴퓨터의 상용화를 위해 창업해 개발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프로그래밍 초보에 대학 중퇴자였던 앙리는 여기에 들어가 명문 공대 출신들을 압도하는 코딩 실력으로 단숨에 수석 개발자가 된다. 또 휴대용 기기라는 개념조차 희미하던 1980년대 초에 이미 모바일 OS를 개발하여 애플 등에 공급하는 등 발군의 실력을 과시한다.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이 성에 찰 리 없는 이 천재 개발자는 곧 자신의 이름을 딴 소프트웨어 개발사를 차렸다. 친구이자 건축가, 만화가인 피에르 부팽(Pierre Buffin)과 의기투합해 컴퓨터그래픽과 특수 효과를 전문으로 하는 스튜디오로 키워 나간다. 이 스튜디오는 훗날 영화 ‘매트릭스’로 유명해진 불릿타임 효과(Bullet Time Effect)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영화 기술에 독보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앙리는 1985년부터 5년여 이 회사를 경영하면서 경영과 관리 측면에서 많은 일을 했다. 이때 경험한 외적인 경험이 나중에 패럿을 성공적으로 키우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1990년에 이르러 그는 다시 파란의 가족사를 맞게 된다. 전해에 아버지 제롬과 이혼한 어머니가 불과 1년 만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 안 그래도 소원했던 부자지간은 이 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두 부자는 이로부터 20여 년 후 딱 한 번 재회한다. 2013년 앙리의 딸이자 제롬의 손녀인 레아 세이두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축하하는 자리에서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았다.
얄궂은 가족사에 사업에도 흥미를 잃은 앙리는 피에르 부팽에게 회사 지분을 모두 넘기고 손을 뗀다. 다만 어릴 적 친구인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루부탱을 도와 패션 사업에 투자를 한다. 루부탱은 현재 프랑스의 대표적인 고급 수제 여성화 브랜드로 한 켤레에 수백만 원의 고가임에도 전 세계 여성들의 선망이 되고 있다.
앙리 세이두가 우울증을 극복하고 테크 업계로 다시 돌아온 것은 1994년. 앙리는 드론업체 ‘패럿’을 창업한다.
필자 곽원철은 한국의 ICT 업계에서 12년간 일한 뒤 2009년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현재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 담당으로 일하고 있으며, 2018년 한-프랑스 스타트업 서밋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기재부 주최로 열린 디지털이코노미포럼에서 유럽의 모빌리티 시장을 소개하는 등 한국-프랑스 스타트업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곽원철 슈나이더일렉트릭 글로벌전략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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