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나라에서도 게임중독이 공식적인 질병으로 분류될 전망이다. 의료계는 환자를 위한 치료의 길이 열렸다며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지금도 스스로 게임중독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고, 각종 기관에서 상담을 받기도 한다.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분류되면 의료 현장은 어떻게 달라질까.
지난 25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즉 게임중독을 공식 질병으로 분류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번에 의결된 ICD 안은 2022년 1월에 발효된다. 이를 토대로 국내질병분류체계인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가 개정된다. 바뀐 KCD 안은 2026년부터 시행된다.
국내 게임산업을 포함해 여전히 찬반 논란이 뜨겁지만 일단 WHO 회원국은 대체로 이변이 없는 한 ICD 권고사항을 따른다. WHO 회원국인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게임중독을 공식 질병으로 분류하게 되면 의료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 “드디어 게임중독자 위한 맞춤형 치료 가능해질 것”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은 게임중독 환자들의 건강권을 회복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고 전망한다. 이들 전문의들은 현재 게임중독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의료 현장에서는 게임중독에만 초점을 맞춰 치료가 진행되지 않는다. 대신 우울증이나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DHD)로 진단을 내리고 이에 맞는 약을 처방한다. 그러다 보니 게임중독이 발생한 근본 원인은 치료되지 못한 채, 일시적인 현상 완화에만 머무른다는 지적이다.
신의진 연세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지금은 (게임이용장애 치료에) 술이나 담배중독 치료법을 도입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혹은 질병으로 분류된 다른 충동억제장애 치료법을 이용하기도 한다”며 “이러한 병들과 게임이용장애는 엄연히 다르다. 현장에서 ‘과학적으로 근거 있는 치료법을 개발하지 않으면 치료에 한계가 있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지금은 ‘객관적인 치료’보다는 ‘주관적인 치료’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의료계에서는 게임중독 환자들에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치료 과정에서 의료 데이터가 수집되기 때문이다. 보통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처방할 때 질병코드를 입력하게 된다. 다만 이때까지 게임중독에 대해서는 질병코드가 없었기 때문에 의사들은 다른 질병코드를 입력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게임중독 환자들이 어떤 약을 주로 처방받으며, 또 치료 기간은 어느 정도였는지 등의 정보가 아예 쌓이지 않았던 것. 그러나 앞으로는 게임중독에 질병코드가 부여되면서 게임중독 치료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는 “특히 행정적인 부분에서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게임중독의 유병률이나 효과적인 치료법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 치료 효과가 훨씬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약을 병용했을 때 효과적인지에 대한 연구도 비로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게임중독 치료 시장을 겨냥해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는 드물 것으로 예상된다. 제약사 관계자는 “게임중독 치료에 이용되는 약물은 주로 정신질환 치료에 이용되는 항정신성 약물일 텐데 다른 약에 비해 부작용 위험성이 높아 도전하려는 회사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이미 시장에 좋은 약들이 많이 출시된 상황”이라며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인정되고 관련된 연구가 활성화된다고 해도 신약을 개발하는 데 딱히 관심을 갖지 않을 것 같다”고 의견을 표했다.
# 건강보험 적용되고, 게임중독으로 병가도 가능
게임중독 치료 프로그램과 의료기기의 개발에 속도가 붙고 여기에 건강보험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게임중독이 심해서 치료기관에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고가의 상담료는 부담스러운 요소다. 치료기관에서 부르는 게 값이기 때문”이라며 “게임중독이 심한 사람들은 생활 자체가 황폐해진다. 보험 혜택을 받아 치료를 보다 싼값에 받을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게임중독을 이유로 병가를 내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우려하는 것처럼 이를 악용하는 사례는 많지 않을 것으로 의료계는 내다본다. 본인이 게임중독이라고 주장한다고 병가를 낼 수 있는 게 아니라 의사의 진단이 필요하고, 진단을 내릴 때 의사는 WHO의 진단 기준을 따른다는 것이다. WHO는 △게임에 대한 통제 기능이 손상됐고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고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는데도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는 현상이 12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게임이용장애라 정의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돼 치료법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된다고 하더라도, 의사들이 ‘약’으로만 게임중독을 치료하려는 관습을 탈피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한다. 어기준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장은 “병원에 가면 3분 진료하고 약을 치료해주는 경우가 빈번하다. 게임중독을 치료하려면 환자 본인이 중독인지 아닌지를 인지하는 게 중요한데, 이것은 약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상담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기준 소장은 “질병에 등재되면 의료 현장이나 민간기관에서의 상담과 정신과 치료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에서 제공하는 인터넷중독예방센터 등 관련 기관의 역량이 상당히 낮다”며 “현재 게임중독이 만성화되고 ‘굳이 치료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게임중독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공식적으로 분류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정부 산하 기관들도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분류되는 것을 두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는 엇박자를 내고 있다.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체부는 복지부 주도의 민관협의체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문체부는 WHO에 이의를 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과학적 검증 없이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복지부는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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