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15일 보건복지부는 ‘중증정신질환자 보호·재활 지원을 위한 우선 조치방안’을 발표했다.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한다는 게 골자다. 대표적으로 정신질환 발병 초기 환자들에게 국비로 치료비를 지원하는 ‘조기중재지원 사업’이 도입된다. 복지부는 “조기진단과 지속치료가 정신질환 관련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이라며 정신질환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조현병(정신분열증) 치료제 등 정신건강의약품을 개발·시판 중인 제약사에 관심이 쏠린다. 사회·경제적 이유로 조현병 치료를 꺼리던 인식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관련 의약품의 수요가 늘어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제약업계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대형 제약사들은 관심이 적다. 왜 그런지 ‘비즈한국’이 취재했다.
# 조현병 치료제, 대형 제약사들은 잠잠
조현병은 환각, 망상, 행동이상 등이 나타나는 뇌 기능 장애다. 조현병의 1차 치료에는 주로 항정신병 약물이 쓰인다. 해당 약물은 작용 기전과 부작용에 따라 정형 항정신병 약물과 비정형 항정신병 약물로 나뉜다. 정형 항정신병 약물은 뇌신경 세포의 흥분 전달 역할을 하는 도파민 수용체를 차단해 증상을 개선한다. 정형 항정신병 약물을 장기간 사용하면 몸이 떨리는 등의 부작용이 오래 지속돼, 최근에는 크게 선호하지 않는다.
정형 항정신병 약물보다 뒤늦게 개발된 비정형 항정신병 약물은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다고 알려진다. 보통 조현병 환자들은 단독요법으로 정형 항정신병 약이나 비정형 항정신병 약을 골라 이용한다.
이러한 약물을 필요로 하는 조현병 환자는 늘어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건의료빅데이터에 따르면 조현병으로 진료 받은 인원은 2013년 11만 3280명, 2014년 11만 4732명, 2015년 11만 7352명, 2016년 11만 9162명, 2017년 12만 70명으로 4년간 6% 증가했다. 한 신약 개발 전문가는 “일본에서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며 조현병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에 따라 신약에 관심이 높아졌다”며 “국내에서도 조현병 환자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국내 대형 제약사들이 조현병 치료제 시장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국내 정형 항정신병 약물의 시장은 ‘명인제약’이 지배하고 있다. 명인제약은 ‘티세르신정’ ‘트리민정’ ‘명인할로페리돌정’ 등 정형 항정신병 의약품만 17개를 내놓았다(약학정보원 기준, mg(밀리그램)별로 다르게 계산). 1985년 설립된 명인제약은 잇몸 약 ‘이가탄’으로 유명하다. 이 시장에서 명인제약은 유영제약, 환인제약, 태극제약 등과 경쟁 중인데, 의약품 수로는 명인제약이 단연 압도적이다.
최근 정형 항정신병 약물보다 조현병 환자들의 약물치료에 널리 쓰이는 비정형 항정신병 약물 시장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비정형 항정신병 약물 중에서도 ‘쿠에티아핀푸마르산염(Quetiapine Fumarate)’ ‘리스페리돈(Risperidone)’ ‘레보설피리드(Levosulpiride)’ 성분 의약품 시장의 경쟁이 가장 활발하다.
다만 국내 대형 제약사 의약품은 많지 않다. 한미약품이 쿠에티아핀푸마르산염, 리스페리돈, 레보설피리드 세 가지 성분 의약품을 각각 3종, 3종, 1종 내놓았고 광동제약, 동화약품, 종근당은 레보설피리드 성분 치료제를 1종씩만 시판 중이다. 다국적제약사인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쿠에티아핀푸마르산염 성분 의약품이 9종, 환인제약과 명인제약이 각각 11종, 10종 진출한 것에 비하면 훨씬 적다.
최근 들어서는 조현병 치료제 중에서도 장기 지속형 주사제가 널리 이용되는 추세다. 경구용 약은 매일 먹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반면 장기 지속형 주사제는 2주 혹은 4주 간격으로 주사하면 돼 환자들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편리하다. 그러나 이 시장에서도 대형 제약사의 입지는 좁다. 정형 항정신병 주사제 시장에서는 명인제약, 환인제약, 한국얀센이 경쟁 중이고 비정형인 팔리페리돈 주사제는 한국얀센이 내놓은 주사제뿐이다.
# “시장성, 경쟁 제약사 고려”
대형 제약사들이 항정신성 의약품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주된 이유는 ‘수익성’ 때문으로 보인다. 아무리 한 해 매출이 몇천억 원에서 1조 원에 가까운 대형 제약사라 하더라도, 획기적인 약을 개발하지 않는 이상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 항정신성 의약품의 경우 부작용 발생 사례가 잦아 제약사들이 신중히 접근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진출하려는 시장에서 경쟁사가 약을 처방하는 의사들에게서 신뢰를 쌓았다는 점은 대형 제약사에 또 다른 고민거리다. 경쟁사가 중소나 중견 제약사인 것은 둘째 문제다. 특히 조현병 치료제의 경우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기에, 의약품의 효과가 좋다는 것을 의사들에게 인정받는 게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주 획기적인 의약품이 아닌 이상 과거부터 처방했거나,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해외 제약사의 의약품이 선택받을 여지가 크다. 항정신성 의약품을 압도적으로 많이 내놓는 명인제약은 신경정신과 및 순환기 영역에서 특화된 기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조현병 치료제를 시판 중인 대형 제약사 관계자는 “(조현병 치료제를 많이 내놓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 판단된 것은 아니다. 시장성과 환자들의 필요, 가지고 있는 기술 등 상황을 모두 생각해야 하는 복합적인 부분”이라며 “타사가 이미 출시한 제품이 시장에 있는 경우에는 타사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제약사들이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다 보면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치료제를 내놓지 못하는 여러 상황을 고려하고서라도, 대형 제약사가 개량 신약까지 내놓지 않는 까닭에서다. 개량 신약은 오리지널 신약과 성분이 유사하지만 효능을 더 발휘하도록 물리적 성질이나 제형을 바꾼 약을 뜻한다.
따라서 국내 제약사들이 개량 신약을 개발할 수 있게 정부 부처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앞서의 신약 개발 전문가는 “정신질환자들이 점점 늘면서 사회 문제로 떠오르지만 지역 내에 있는 정신질환센터가 제 역할을 못 한다는 얘기가 많다. 그렇다면 약이 많이 공급돼 환자가 약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며 “복지부에서 제약사들에 연구개발비를 지원해 개량 신약을 많이 공급하게 하고, 과학기술부와 산업부에서 뇌질환 연구 사업을 벌이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
인보사 사태 뒤엔 정부의 '빨리빨리' 정책이?
·
"15년간 전수 추적"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 약속'의 허점
·
당뇨병학회 특정 약물 사용 권고, 국내 제약사 입맛만 다시는 까닭
·
아토피 신약 '듀피젠트', 환자들에겐 '그림의 떡'인 까닭
·
아마존 '칠전팔기' 처방의약품 배달 초읽기, 한국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