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만화 영화 ‘명탐정 코난’의 팬들 사이에서 ‘도서관 살인사건’ 편은 역대 가장 소름 돋는 에피소드로 회자된다. 이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코난과 친구들은 사라진 피해자의 시신을 찾기 위해 늦은 밤 사건 현장인 도서관 건물을 돌아다닌다. 그러던 중 코난은 낮에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있었던 미심쩍은 순간을 떠올린다.
낮에 코난이 탔던 엘리베이터는 이상하게도 정원이 다 차지 않았는데도 정원 초과 경고음이 울리면서 문이 닫히지 않았다. 코난은 바로 여기서 엘리베이터 안에 타고 있는 승객 이외에 보이지 않는 승객이 한 명 더 있었다는 것을 추리한다. 바로 엘리베이터 천장 위에 시신이 숨겨져 있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생략한다.)
천문학자들도 코난과 같은 추리를 통해 우주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존재들을 찾고 있다.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은 주변의 다른 물질과 힘을 주고받는다. 특히 질량이 있는 모든 물질은 중력을 통해 주변의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한다. 지구와 달은 서로의 중력으로 묶여 있고, 태양의 중력에 붙잡힌 행성들은 태양 주변을 돈다. 뉴턴은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수학적으로 멋지게 풀어냈다. 이 중력 법칙을 통해 다양한 천체의 궤도가 완벽하게 설명되었다.
그런데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뉴턴의 중력 법칙을 살짝 벗어나는 이상한 움직임이 발견되었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천왕성이 태양계 가장 바깥에 있는 행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밀하게 관측한 천왕성의 실제 궤도는 태양의 중력을 고려했을 때 예상되는 궤도를 살짝 벗어나 미세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천문학자들은 천왕성 바깥에 있는 또 다른 행성이 궤도를 돌면서 자신의 중력으로 천왕성을 조금씩 끌어당기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그 미지의 행성이 있는 위치를 수학적으로 예측했다. 놀랍게도 정말 이들이 예측했던 곳 부근에서 행성이 발견되었다! 그 행성이 바로 해왕성이다. 해왕성은 역사상 처음으로 실제 관측 이전에 수학적으로 그 존재와 위치가 꽤 정확하게 예측된 행성이다.[1]
이어 천문학자들은 태양계 가장 안쪽을 도는 수성의 궤도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태양의 중력에만 붙잡혀 돌고 있다면 수성은 일정하게 고정된 타원 궤도를 그려야 한다. 그런데 실제 수성은 근일점(태양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지점) 자체가 자리를 바꾸면서 궤도 자체가 조금씩 밀려났다.
천문학자들은 해왕성처럼 아직 관측된 적 없는 미지의 행성이 수성 안쪽에서 궤도를 돌며 수성을 중력적으로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태양 가까이 있어 아주 뜨거울 이 미지의 행성을 신화에 등장하는 대장장이 신의 이름을 따 ‘벌칸(Vulcan)’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벌칸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벌칸을 가정하지 않고도 수성의 궤도가 밀려가는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했다. 뉴턴은 사실 중력이라는 힘이 왜 우주에 존재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저 마법처럼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인슈타인은 질량을 가진 물체가 주변 시공간을 왜곡하면서 생기는 시공간의 곡률을 따라 물질이 흘러가듯 끌려가는 것이 중력으로 느껴진다고 해석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중력을 표현하며 100년에 43"(각초)씩 밀려가는 수성의 궤도 천이를 완벽하게 설명했다.[2]
이처럼 우주에서 기존 예상을 벗어나는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천체가 있다면 크게 두 가지를 의심해볼 수 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미지의 천체가 있거나, 아니면 우리가 알고 있는 중력 법칙 그 자체에 문제가 있거나.
암흑물질이 많이 포함된 경우(왼쪽)와 암흑물질이 거의 없는 경우(오른쪽) 은하가 회전하는 모습을 비교한 영상. 빛을 내는 별들의 분포만 보면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암흑물질이 더 많아 중력이 강한 은하가 훨씬 더 빠르게 회전하고 있다.
1970년대 미국의 천문학자 베라 루빈(Vera Florence Cooper Rubin)은 은하계를 돌고 있는 별들의 궤도를 관측했다. 그런데 은하 외곽을 도는 별들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기존에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별들이 은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렇게 빠른 속도라면 진즉 은하의 중력을 벗어나 탈출했어야 하는데, 별들은 은하의 중력에 계속 붙잡혀 있었기 때문이다.[3]
이 현상은 은하들이 모여 있는 은하단에서 먼저 확인되었다. 1930년대 스위스의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Fritz Zwicky)는 은하단에서 움직이는 은하들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더 빠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은하들이 은하단 바깥으로 탈출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빠르게 돈다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한 중력으로 은하들이 붙잡혀 있음을 의미했다.
은하와 은하단은 너무 커서 저울 위에 올려볼 수 없다. 그 대신 천문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이들의 질량을 추정한다. 하나는 빛을 내는 별과 가스들을 세서 질량을 추정하는 것(광도 질량), 다른 하나는 이들이 발휘하는 중력의 세기를 측정해 질량을 추정하는 것(역학적 질량)이다.
그런데 빛을 내는 별과 가스만 가지고 추정한 질량보다 중력으로 추정한 질량이 훨씬 더 무거웠다. 빛을 내지는 않지만 중력을 발휘하는, 암흑 속에 감춰진 물질들이 은하 곳곳에 내장지방처럼 숨어 있다는 의미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물질(Invisible Matter)을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고 부른다.
암흑물질은 빛나지 않을 뿐 아니라 빛과 상호작용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전파, 적외선, 자외선, 엑스선 등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종류의 빛으로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빛 자체를 내지 않고 빛과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빛을 통한 어떤 관측을 통해서도 감지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직도 암흑물질이 정말 물질로서 실재하는지, 그렇다면 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확인된 바가 없다. 우주에는 빛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일반 물질(Baryon)보다 훨씬 많은 암흑물질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작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암흑 덩어리들의 정체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이런 유령 물질들의 정체를 밝히려는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윔프(WIMP)라는 이름의 가상 입자가 암흑물질의 주재료라고 추정한다. 윔프는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Weak Interacting Massive Particle)’라는 말로 암흑물질에게 요구되는 특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윔프는 실제로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은, 암흑물질이라면 자고로 이래야 한다는 특징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상의 입자다.
윔프들은 다른 일반 물질이나 빛과는 거의 상호작용을 하지 않지만 아주 드물게 자기들끼리 상호작용을 하면서 뭔가 특별한 흔적을 남길 수 있다. 이런 미미한 신호는 우주 사방에서 매일 수차례 쏟아지는 다른 우주선(Cosmic Ray)에 의해 묻혀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 이들의 방해를 피해 지하 깊은 곳으로 도망가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땅 속 깊은 곳에 들어가 그 미세한 신호가 검출되기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탈리아 그란사소연구소(LNGS)에 있는 지하 검출기에서 윔프를 추적하는 DAMA 연구팀은 한때 윔프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놀라운 발표로 이목을 끌었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공전하면서 계절마다 윔프의 밀도가 다른 지역을 통과했음을 보여주는 변화를 검출했다고 주장한 것. 하지만 이 실험 결과는 아직까지 재현되지 못했다.[4] (그란사소는 입자 물리학계의 논란의 중심지다. 한때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가 발견되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가 결국 사소한 실수로 밝혀진 민망한 스캔들도 이곳에서 벌어졌다.)
일본에서는 지하의 폐탄광을 개조해 만든 검출기에서 암흑물질의 흔적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강원도 양양에 위치한 지하 700미터의 실험실에서 암흑물질을 찾기 위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2011년 국제우주정거장에 윔프의 신호를 검출할 장비를 설치했지만 아직 반가운 소식은 오지 않았다.[5]
이제 일부 천문학자들은 애초에 암흑물질이 물질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염려한다. 먼 우주에서는 중력 법칙 자체가 지구 주변과 다르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태양계 외곽까지 기존의 중력 법칙을 이용해 아주 정확하게 탐사선을 보냈다. 따라서 적어도 태양계까지는 기존의 중력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 그 누구도 은하계 바깥, 다른 은하계를 다녀온 적은 없다. 우리는 그저 전 우주가 동일한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을 것이라는 우주론적 원리(Cosmological Principle)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정말 이 주장처럼 더 먼 우주로 나가면 기존의 중력 법칙과 다른 방식으로 중력이 작용할지도 모른다. 당황스러우면서도 꽤 흥미로운 이 가설을 ‘수정된 뉴턴 역학(MOND, Modified Netwonian Dynamics)’이라고 한다.
그러나 MOND 가설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암흑물질과 가스를 함께 머금은 것으로 추정되는 은하단들이 충돌한 현장을 보면 암흑물질과 가스 물질의 분포가 약간 어긋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암흑물질의 분포보다는 중력 렌즈로 추정한 중력의 분포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것은 다른 물질과 전혀 상호작용하지 않으며 정말 유령처럼 투명하게 관통해버리는 암흑물질의 성질과 잘 부합한다. 단순히 스케일에 따라서 중력이 작용하는 법칙이 달라진다고 설명하는 MOND 가설로는 이런 특징을 설명하지 못한다.
최근 천문학자들은 표면 밝기가 어두운 은하(Low-surface-brightness) 72개를 포함해 크고 작은 은하 총 106개를 분석한 결과 거리에 따라 중력이 다르게 적용하는 MOND 가설로는 이 은하들에서 돌고 있는 별들의 움직임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고 암흑물질이 존재한다고 가정해야만 완벽하게 관측 결과를 설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6]
MOND 가설을 보완한 또 다른 새로운 가설도 나왔다. 최근 소개된 이 새로운 가설은 높은 밀도로 모여 있는 물질 주변에 중력 법칙이 기존의 뉴턴 법칙에 따라 작용하는 일종의 가상의 거품을 정의한다. 이를 ‘뉴턴 거품(Newton Bubble)’이라고 부른다. 이 거품 바깥을 벗어나면 기존의 뉴턴 법칙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중력이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은하 외곽에서도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별들이 설명된다.
은하단이 충돌하는 현장도 설명할 수 있다. 은하단 속 가스는 뉴턴 거품이 형성될 정도로 충분히 밀도가 높지 않다. 따라서 밀도가 높은 은하와 가스는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 이 대체 이론을 주장하는 물리학자들은 은하단이 충돌하는 현장에서 중력의 분포와 가스 물질의 분포가 어긋나는 것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7]
츠비키와 루빈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의 존재를 추측한 이후 거의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암흑물질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니 암흑물질이라는 것이 정말 물질로서 존재하는지조차 아직 모른다.
따라서 암흑물질이라는 말은 마치 물질로서의 암흑물질이 실재한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암흑물질 대신 ‘암흑 중력(Dark Gravity)’이라는 더 중립적인 용어를 쓰는 천문학자들도 있다.
“예술은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화가 파울 클레(Paul Klee)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의 존재를 추적하며 우주의 모습을 그려가는 과정은 과학보다는 예술의 영역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몽타주도 없이 범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잠복근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결국 긴 기다림 끝에 중력파를 검출해냈던 것처럼 지하 검출기에서 윔프의 존재가 명백하게 확인되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올지도 모른다. 아니면 암흑 중력의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또 다른 중력 법칙이 자리를 잡게 될지도 모른다. 최근 다시 뜨겁게 불이 붙고 있는 제2차 암흑물질 전쟁은 어떻게 끝나게 될까?
암흑물질은 끝내 발견된 해왕성의 운명을 따르게 될까? 아니면 실존하지 않는 벌칸의 운명을 걷게 될까?
우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경고음이 울리는 우주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직 헤매고 있다. 이 엘리베이터에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이 함께 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엘리베이터의 중력 센서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주에 ‘완전 범죄’는 없다. 이 유령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오늘도 명탐정 천문학자들은 우주에 남아 있는 단서들을 찾아나서고 있다. 분명 범인은 이 안에 있을 테니까.
[1] http://adsabs.harvard.edu/abs/1846MNRAS...7..157L
[2] http://inspirehep.net/record/4180?ln=en
[3] http://www.pnas.org/content/114/9/2099
[4]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9-00865-9
[5]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18-0658-y
[6]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affd6/meta
[7]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1475-7516/2018/12/009/pdf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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