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국 정부의 화웨이 규제가 막바지를 향해 가는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5일 행정명령을 통해 ‘정보통신 기술 및 서비스 공급체 보호’ 행정 명령을 내리고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거래 제한 기업으로 발표했다. 한마디로 미국과 화웨이는 그 어떤 거래도, 비즈니스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이 행정 명령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기존 ZTE처럼 단순히 수입 불가, 취급 금지 등의 규제를 넘어 아예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서 예외 없이 거래가 막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화웨이는 이미 여러 규제로 미국에 판매하는 제품이 거의 없기 때문에 형식상의 강경책으로 해석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번 규제는 그 결과가 조금 다를 듯하다.
# 화웨이는 스마트폰을 만들지 못하게 되는 걸까?
가장 먼저 피부로 와 닿는 것은 스마트폰이다. 로이터는 현지 시간으로 19일 ‘구글이 화웨이에 앱과 서비스를 중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중국 외에 스마트폰을 팔지 못하게 됐다는 말이다. 물론 아예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못 만드는 것은 아니다.
먼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운영체제는 구글의 인증을 받은 제품이다. 이걸 ‘구글 모바일 서비스(Google Mobile Service)’라고 부르는데 ‘제도권 안드로이드’라고 볼 수 있다.
구글 모바일 서비스 인증을 받으려면 안드로이드에서 구글의 앱과 서비스가 적절히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인지를 따져야 한다. 일단 이 조건을 만족시켜야 콘텐츠 유통 창구인 구글 플레이를 이용할 수 있다. 또 구글 계정으로 안드로이드에 로그인해서 G메일, 지도, 캘린더를 비롯해 구글 어시스턴트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계정 하나로 개개인에게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바로 그 ‘안드로이드’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오픈소스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AOSP(Android Open Source Project)라고 부른다. 구글을 비롯해 여러 기업과 개발자들이 함께 붙어 안드로이드의 뼈대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를 통해 스마트폰을 개발할 수 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AOSP를 이용해서 만든 스마트폰은 공식적으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라고 부를 수 없다. 안드로이드는 AOSP와 달리 구글의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주로 중국 내수용 스마트폰이 이 AOSP를 이용한다.
이 둘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스마트폰을 켰을 때 ‘화면 아래쪽에 ‘Powered by Android’라고 뜨는 제품은 구글의 인증을 받았다고 보면 된다.
당장 화웨이가 영향을 받는 것은 바로 이 안드로이드 인증 스마트폰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구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화웨이는 AOSP 스마트폰도 만들고 있다. 중국 내수 시장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보안을 이유로 오래전부터 구글 서비스를 차단해왔고, 구글 역시 2010년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당연히 중국에서 팔리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구글 서비스가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AOSP가 중국 시장에 가장 맞는 스마트폰 운영체제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은 각 제조사가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자체 서비스들을 AOSP 위에 얹은 스마트폰을 판매해왔다. 화웨이를 비롯해 샤오미, 원플러스 등 모든 기업이 자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중국 외 시장은 다르다. 구글의 서비스를 쓰지 못하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불편할 뿐 아니라 어딘가 정식 인증을 받지 않은 것 같아서 기술 지원이나 보안 등이 불안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화웨이는 중국 시장보다 해외에서 더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이다. 대표적인 것이 유럽 시장이다. 화웨이는 삼성전자,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메이저 스마트폰 제조사이고, 라이카와 협업해서 만든 P시리즈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이지만 가장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 제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이 제품에 구글 앱스를 정식으로 싣지 못하게 되면 사실상 시장이 선호하는 제품을 팔 길이 막히게 된다. 화웨이는 자체적으로 설계한 안드로이드인 ‘이모션UI(EMUI)’를 갖고 있지만 이 역시 중국 외 시장에서는 구글 서비스를 돌아가게 하는 틀일 뿐이다.
기존에 나온 스마트폰이 먹통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지금 쓰고 있는 안드로이드까지 걷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그런 일은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구글 모바일 서비스 기반의 안드로이드 업데이트는 안 될 것이다.
# 네트워크, 엔터프라이즈 등 비즈니스 전체에 영향
안드로이드 스마트폰보다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반도체다. 구글의 거래 중단 소식이 나온 이후 인텔과 퀄컴도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화웨이는 ‘기린(Kirin)’이라는 자체 설계 ARM 프로세서를 갖고 있어서 스마트폰 제조에 아주 큰 영향을 받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 있는 특허 라이선스와 소프트웨어 등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무엇보다 인텔의 칩 공급 중단은 화웨이 전체 비즈니스를 흔들 가능성이 크다. 화웨이는 네트워크 비즈니스가 중심이고, 이를 기반으로 데이터센터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있다. 여기서 인텔의 프로세서는 가장 중요한 부품이다. 당장 서버를 만들 수 없다. 화웨이는 서버뿐 아니라 곧바로 클라우드 환경을 꾸릴 수 있는 통합 서버를 내놓았는데, 반도체 공급 중단으로 이 비즈니스는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다.
네트워크 장비도 마찬가지다. 네트워크 전체를 세우고 운영하는 데에서 인텔이 쓰는 x86 방식의 프로세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칩이다. 특히 5세대 이동통신에 접어들면서 각 기지국이 직접 데이터 신호와 일부 프로세스를 처리하는 ‘엣지 컴퓨팅’이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또 네트워크 서버의 모든 시스템이 하드웨어 대신 소프트웨어로 처리되는 ‘소프트웨어 정의 네트워크’가 5세대 이동통신의 기본 뼈대이기 때문에 x86 기반 프로세서는 점점 더 많이 필요해지고 있다. 사실상 지금도 공급 부족 상황이다.
인텔의 제온 프로세서는 사실상 대안이 없는 제품이고, AMD로 바꾼다고 해도 AMD 역시 미국 기업이기 때문에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할 수 없다. 즉 화웨이가 이미 주문, 공급받은 프로세서 외에는 더 이상의 프로세서를 확보할 수 없고, 대규모 네트워크를 새로 구축하는 데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화웨이는 프로세서를 넉넉히 확보해두었다고 하지만 미국의 규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CPU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네트워크 구축과 유지보수에 불리하다는 인식이 심어질 수 있고, 화웨이의 가장 큰 무기인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사실상 이번 규제는 화웨이의 사업을 완전히 틀어막는 초강수인 셈이다. 화웨이는 통신, 엔터프라이즈, 컨슈머 등 3개 사업부가 스마트폰, PC 등 일반 이용자의 손에 닿는 제품부터 반도체, 서버, 네트워크, 클라우드, 이동통신 등 인프라 서비스까지 빈틈없이 아우르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큰 강점으로 꼽히는 기업이다. 그런데 결국 미국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걸림돌이 되는 묘한 상황이 됐다.
# 개방으로 성장한 IT 시장, 규제 실감
지금 문제가 드러나는 것은 눈에 쉽게 띄는 제품들이다. 그러나 네트워크나 클라우드, 인프라를 꾸리는 데에는 수많은 기업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당장은 보이지 않는 문제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미국 제품에 대한 의존도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텔 프로세서나 구글 서비스에 너무 순진하게 의존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사실상 화웨이는 글로벌 시장의 표준에 예민하게 발맞춰왔고 관련 인증이나 규제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화웨이는 중국 시장보다 해외 시장을 더 중요하게 보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 진짜 겨눈 대상은 화웨이보다는 무역 전쟁으로 첨예하게 다투고 있는 중국 정부일 것이다. 대놓고 언급하지는 않지만 미국은 화웨이를, 중국은 애플을 겨냥하고 있다. 각 국가를 대표하는 IT 기업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영향이 클 것이다. 이미 애플은 실적을 통해 중국 시장 매출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동안 중국 시장에 들인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구글과 인텔 역시 오랜 파트너와 어색한 관계가 되었고, 비즈니스의 신뢰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미국 내에는 화웨이의 네트워크 장비를 이용해 서비스를 하는 통신사도 있다.
더 나아가 스마트폰이나 5G 네트워크에서 화웨이가 가진 특허와 기술 서비스도 상당합니다. 클라우드 환경을 꾸리는 오픈소스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미국 기술 없이 화웨이는 존재할 수 없겠지만 마찬가지로 화웨이 없이는 미국,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IT 기업들이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이미 IT 기술은 경쟁 속에서 협력이 필수가 되었다. 혼자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없을 만큼 그 규모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규제가 무서운 이유는 이미 세계화된 IT 비즈니스에 한 나라의 무역 관련 정책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볼 수 있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 행정 명령은 단순히 미국 시장에 화웨이 제품을 거래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에서 화웨이 제품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실질적인 장치다. 기업이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아예 만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힘이 한 회사를 어떻게 묶어둘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무서운 사례일 뿐 아니라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술 기업들의 관계에서 한두 회사가 빠졌을 때 일어나는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견제나 경고 수준을 넘어 한 기업의 목을 옭아매는 치킨게임이 시작됐다. 중국 정부도 어떻게든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황이 다른 기업으로 번지면서 더 심각해질 가능성도 높다.
미국의 조치는 정치와 국경을 넘는 광범위한 협력을 통해 성장해온 IT 시장에 다시 ‘내 것’을 챙기는 분위기를 싹틔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기업 하나와 관계가 돌아서는 것으로 사업이 흔들릴 수 있음을 모두가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화웨이도 ‘울며 겨자 먹기’로 안드로이드를 대신할 수 있는 새 운영체제를 개발한다. 하지만 운영체제 개발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함께 만들어온 플랫폼 환경을 버리고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새로운 환경을 만드는 데에 노력을 쏟아야 하는 무모하고, 덧없는 과정이 더 버거울 것이다.
최호섭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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