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창업을 고민하거나 새로운 제품을 론칭하고자 한다면 다음 질문에 답해보길 바란다.
내 회사는 왜 존재하는가?
이 제품은 왜 존재하는가?
단순하고 원론적인 질문이지만 의외로 많은 창업자, 마케터가 대답을 머뭇거린다. 만약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할 수 있다면 앞으로 키워나갈 브랜드의 확실한 이정표가 이미 마련된 셈이다. 더 나아가 소비자에게 어떻게 우리 브랜드를 소개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도 절반은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바로 이 질문이 ‘브랜드 포지셔닝’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 필리핀 국민 브랜드도 미국 시장에선 ‘듣보잡’
최근 필리핀의 한 식품업체로부터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이 업체의 마케팅 담당자로, 거두절미하고 급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내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필리핀에서 이 기업은 석유, 건설 등 손 안 댄 곳이 없는 국가대표 재벌이다. 100년에 가까운 역사에 한국으로 치면 삼성이나 현대 같은, 마케터의 말마따나 필리핀의 “상징과도 같은(iconic)” 국민 브랜드다.
이 막강한 기업은 식품업도 영위하는데,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시장에서 눈을 돌려 글로벌 시장을 정복하기 위해 세계지도를 펼쳐 들었다. 가장 눈독 들이는 시장은 미국.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필리핀에서는 넘사벽인 이 브랜드가 미국 시장에서는 듣보잡 ‘Nobody’라,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다는 것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내부적으로 결정된 구체적인 연구 희망 사항과 문의 사항에 관해 30분 넘게 질의문답과 의견을 나눈 후, 이 기업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갈무리할 수 있었다.
이 기업이 소비자 연구를 통해 얻고자 하는 인사이트는 크게 세 가지였다.
① 제품 테스트
② 소비자 행태 분석
③ 포지셔닝
세 가지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포지셔닝이다. 포지셔닝을 하려면 일단 현지의 소비자 행태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제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얻은 데이터를 토대로 이 회사 제품의 ‘존재 이유’, 즉 차별화된 포지셔닝(Positioning Statement)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포지셔닝 테스트도 진행한다. 프로젝트마다 구체적인 목적은 다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브랜드 혹은 제품을 어떻게 소개하는 것이 구매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가를 알아내는 작업이다.
# 제품과 소비자의 ‘접점’ 찾기
브랜드 포지셔닝을 위한 소비자 연구는 두 가지가 관건이다. 첫째는 제품이나 브랜드의 어떤 면을 부각해야 할지를 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제품의 사양이 될 수도 있고, 제품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가치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 필리핀 기업이 론칭을 준비하는 제품 중 하나는 일반 슈퍼마켓용 아이스크림이다. 이때 제품의 어떤 면을 부각해야 할까? 이색적인 맛, 유기농 재료, 소비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한 기업정신 등등 구체적인 요소부터 관념적인 요소까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많은 요소에서 어떤 것이 공략층에게 가장 크게 와닿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포지셔닝 연구는 한 가지의 브랜드 스토리를 찾는 데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의 한 메이저 케이블 회사는 속도, 소비자 신뢰, 손쉬운 사용법, 소비자 서비스, 최첨단 기술, 개인화된 서비스 등 6가지 다른 포지셔닝을 테스트하여 ‘어떤 조합’이 가장 긍정적인 소비자 반응을 끌어내는지를 연구했다. 이 회사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장기적 브랜드 전략을 세워 오늘날까지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나 어도비(Adobe) 또한 윈도(Windows)나 CS(Creative Suite)의 새 버전을 론칭할 때마다 국제적인 규모의 포지셔닝 연구를 통해 마케팅 전략의 큰 줄기를 잡는다. 연구 결과는 나라별로 분석해 시장에 따라 마케팅 전략을 다르게 적용한다.
이렇게 소비자 연구에서 드러난 결과는 이후 광고, 웹사이트, 슬로건, 가게에 걸리는 사인 등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모든 메시징에서 일관성을 갖고 유용하게 사용된다.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지 않고 “우리가 이번 신제품은 ○○○에 힘을 줬지” 하는 식으로 내부에서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만을 내세워 시장에 나간다면,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제품 론칭을 한 후에야 소비자와 동떨어져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 마케팅 언어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둘째는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요소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이다. 이 부분은 경영과 예술이 맞닿는 부분이다. 창의적 글쓰기, 문화적 요소, 시각적 이미지, 그리고 소비자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뒷받침된 섬세한 노력이 요구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실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소비자의 반응은 달라진다. 그래서 포지셔닝 작업은 마케팅 부서, 카피라이터, 광고 회사, 리서치 회사 등등이 다 같이 협업해서 최종 결과물을 이끌어낸다.
특히 포지셔닝을 구체적인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연구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다음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국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발견한 광고 카피이다. “Beauty Gets the Attention. Taste Captures the Heart.”
분명 케이크가 예쁘고 맛있다는 것을 어필하고자 쓴 영어 카피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Beauty gets the attention’은 한국인인 내가 한국어로 직역해서 읽었을 때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알 수 있을 뿐, 미국인이 보기에는 조금 어색한 표현이다. 영어에서 동사 Get은 주어의 상태를 나타내는 Is나 Are 같은 Be 동사처럼 그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는 무미건조한 동사이다. 따라서 Get을 동사로 광고 카피에 쓰는 예는 드물다.
같은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면 단어를 몇 개 바꾸어 “Beauty Captures the Eye. Taste Captures the Heart” 정도로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감성적으로도 효과적으로 어필하지 않았을까 싶다. 포지셔닝 연구는 이렇게 단어 하나하나의 쓰임까지 섬세하게 짚어보는 치밀한 작업이다.
# 그래서 그 제품이 나한테 뭐가 좋은데?
특히 요즘 실리콘밸리 클라이언트와 작업하는 포지셔닝 연구에서 반복해서 떠오르는 이슈가 있다. 바로 최첨단 기술을 탑재한 제품들을 론칭할 때 어떻게 소비자에게 설명하는가이다. 자동화(Automation), 개인화(Personalization) 같은 개념이 요즘 테크계의 화두이지만, 정작 마케팅의 쟁점은 신기술이 아니라 소비자를 어떻게 설득시키느냐다.
빠르게 명멸을 거듭하는 기술경쟁시대, 이제 미국 소비자들은 신기술 그 자체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생소한 전문용어를 써가며 기술력을 과시하는 것은 오히려 부담과 혼란만을 안겨줄 뿐이다. 아마 이해하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 소비자들은 언제나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데(What’s in it for me)?’가 중요하다.
포지셔닝은 브랜딩의 시작과 끝이다. 내 브랜드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소비자의 뇌리에 내 브랜드를 어떻게 각인시키는가. 그 소통의 연결점을 어디서 찾아내는가. 궁극적으로, 숨 가쁘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내 기업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 번 생각해보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기업이 존재하는 한, 시장 변화에 따라 두고두고 고민하며 답을 모색해야 한다.
필자 황지영은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엔터테인먼트 경영 석사를 마치고 Fox Television, Warner Bros. Television 리서치 부서에서 일했다. 글로벌 소비자 마케팅 리서치 회사 Hall & Partners, Kelton Global에서 경력을 쌓고 2015년 소비자 마케팅 연구 회사 마인엠알(MineMR)을 설립, 현재 미국 LA에서 글로벌 기업들을 클라이언트로 소비자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황지영 MineMR 대표·마케팅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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