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하고로모(Hagoromo)’라는 이름의 분필이 있다. 80년 넘게 일본 나고야에서 만들어지던 이 분필은 최근 유튜브에서 영상으로 다뤄져 16일 현재 조회수 885만 건을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영상엔 미국 유명 대학의 수학과 교수들이 나온다. 교수들은 말 그대로 하고로모 분필을 ‘찬양’한다. 단단해 잘 부러지지 않으면서 필기감이 부드럽고, 분필 가루가 덜 날린단다. 아무리 그래도 분필이 거기서 거기지 뭐가 색다를 게 있다고 유난인가 싶다. 하지만 이 영상에 나오는 교수들은 진지하다. ‘써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라’는 표정으로 씨익 웃어 보인다.
하고로모 분필은 1932년부터 일본에서 생산됐다. 3대째 가업으로 이어져 오다가 창업주의 손자인 와타나베 타카야스 사장의 건강 악화로 2015년 공장 문을 닫으며 생산 중단 위기에 놓인다. 당시 하고로모 분필 사재기가 유행하며 주문 물량이 폭주했는데, 실제 영상에 나오는 수학과 교수들은 그 소식을 듣고 10년 치 분필을 사재기했다며 분필 박스가 쌓여있는 자신의 보물창고를 자랑하기도 한다. 와타나베 사장은 폐업 6개월 전 분필 생산 중단 소식을 고객들에게 알렸는데, 결국 예정보다 6개월 늦게 폐업했다고 한다.
영상 뒷얘기가 있다. 하고로모 분필은 아직 생산되고 있다. 생산 공장은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 경기도 포천에서 가동 중이다. 우리나라 사람인 신형석 세종몰 대표(49)가 하고로모 회사를 인수해 예전 방식 그대로, 예전 퀄리티 그대로 하고로모 분필을 생산 중이다. 신 대표는 어떻게 3대째 내려오던 일본 기업을 인수할 수 있었을까. ‘비즈한국’은 13일 경기도 포천 하고로모 분필 생산 공장에서 신 대표를 만났다.
# 마성의 분필, 하고로모를 만나다
신형석 대표는 한때 잘나가는 학원 강사였다. 연봉 1억 원씩 받으며 재수반 수학 강사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에 재수 학원 탐방을 하러 갔다. 일본의 재수 학원을 둘러보다가 특이한 분필을 발견했다. 분필 하나하나에 로고가 박혀 있고, 우리나라에 없던 형광색도 있었다. 신 대표는 그중 몇 개를 얻어서 한국에 돌아와 수업 시간에 썼는데, 학생들 반응이 좋았다. 형광이라 색감이 진하게 나와 멀리 있는 학생들 눈에도 잘 보였다. 무엇보다 그 분필은 분필을 쓰는 당사자인 신 대표에게 묘한 만족감을 선사했다.
“한국에서 구하려고 보니까 팔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일본에 있던 제자들에게 연락해 구매 대행을 부탁했어요. 근데 계속 그럴 수 없으니까 한국의 유명 분필 회사에 연락했어요. 형광 분필 만들어줄 수 있냐고요. 다들 거절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선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만 있으면 된다면서요. 형광을 만들 기술력도 없거니와 형광은 비싼데 아무도 ‘비싼 분필’을 사지 않는다고요.”
고민하던 신 대표는 직접 무역회사를 차리고 하고로모 분필을 도매로 수입하기로 결심했다. 사업자등록은 쉬웠다. 서울에 작은 사무실 하나 얻는 게 전부였다. 와타나베 사장을 설득하는 관문이 남았다. 걱정하며 와타나베 사장을 찾아갔는데 크게 반기며 오히려 신 대표를 걱정해줬다. 한국에서 비싼 분필이 경쟁력 있겠냐고. 신 대표는 그렇게 학원 강사 일과 병행하며 2009년부터 ‘취미 삼아’ 분필을 수입하는 무역업을 시작했다. 하고로모 분필은 당시 한국 사정과 맞아떨어지며 학원가에서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 인터넷 강의가 늘어나던 때였어요. 유명한 수학 학원 강사가 하고로모 형광 분필을 썼는데, 화면에 아주 선명하게 글씨가 잘 보였던 거죠. 한 강의에 200~300명 앉아서 수업을 듣는데, 뒷자리 학생도 잘 보인다고 하고요. 그러다 보니 현재 학원 강사의 80~90%는 하고로모 분필을 써요. 도올 김용옥 선생이나 역사 강의로 유명한 설민석 강사도 우리 분필만 써요. 설 강사는 메이드 인 재팬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가 됐다고 좋아해요.”
사실 형광색 분필은 일본의 문부성(교육부) 의뢰로 기술 개발이 이뤄졌다. 초록색 칠판에 빨간색 분필로 글씨를 쓰면 적록 색약인 학생들은 구분이 어렵다. 형광 분필을 쓰면 칠판에 ‘흔적’이 남아서 구분이 가능하다.
하고로모 분필 수입을 8년째 이어오던 2016년 신형석 대표의 귀에도 와타나베 사장의 건강 악화로 인한 하고로모 폐업 소식이 들려왔다. 와타나베 사장은 암에 걸렸었는데, 완치 후 재발해 휠체어를 탈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와타나베 사장에겐 딸만 셋이었다. 그의 입장에선 더 이상 가업을 물려받을 자식이 없었다.
신 대표는 와타나베 사장의 부름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와타나베 사장의 둘째딸이 고려대에서 교환학생으로 한국어를 배운 인연도 있거니와, 매년 서너 번씩 한국에 들려 한국 음식을 먹고 갈 만큼 한국을 좋아하는 ‘친한파’였다. 그러다 보니 와타나베 사장은 신 대표를 아들처럼 아꼈다. 와타나베 사장은 자신이 폐업하면 무역업을 그만둬야 하는 신 대표에게 미안함을 표하며 자신이 폐업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했다.
# 제조법만 요구하는 일본 기업들…“좋은 분필이 먼저 없어져선 안 돼”
원래 하고로모는 일본에서도 유명한 기업이었다. 공장이 나고야에 있었는데, 신형석 대표에 매각된 뒤 일본 공영방송인 NHK가 좋은 기술력을 한국에 빼앗겨 안타깝다는 내용의 3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들 정도였다. 폐업 당시에도 하고로모 분필의 제조법을 사겠다는 일본의 분필 생산 업체가 많았다. 하지만 와타나베 사장의 성에 차지 않았다. 일본에 120년 된 칠판 만드는 회사가 하고로모 분필 제조법을 요구했지만, 그 회사의 공장을 둘러본 와나타베 사장은 제안을 거절했다. 분필보다 칠판에 주력하는 회사였는데, 그 회사의 공장에서 분필을 만들면 원래의 퀄리티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어요. 하고로모 브랜드를 그대로 쓰지 않고 제조법만 요구하는 거죠. 와타나베 사장님은 공장에 있는 기계를 모두 손수 고안하고 주문 제작했는데 그 기계를 쓰지 않으면 같은 퀄리티가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여태 쌓아온 하고로모 이름에 먹칠하고 싶지 않아서 폐업을 결정한 거죠.”
결국 신형석 대표는 자신이 회사를 인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세상에 분필이 없어지더라도 좋은 분필이 먼저 없어져선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을 와타나베 사장에게 전달하자마자 단번에 거절당했다.
“제조업 힘들다며 거절하시더라고요. 사실 와타나베 사장님 사위들이 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아요. 그 중 막내 사위가 대학교수로, 어떻게 보면 가장 ‘못 나가는’ 사정이라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공장을 운영해보려다가 두 달 만에 너무 힘들어서 그만뒀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설득했죠. 열심히 해서 하고로모 브랜드 그대로 문구점에 걸려있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요. 가장 좋은 분필이 먼저 사라져선 안 된다고요. 그랬더니 따님부터 시작해서 고맙다며 우시더라고요.”
신형석 대표는 나고야 공장의 생산 기계를 그대로 포천으로 가져왔다. 기계를 모두 해체해서 다시 조립했다. 처음 일본 업체에 의뢰했더니 6개월 걸린다면서 고액을 요구했다. 수소문해 부산의 업체에 의뢰했더니 일주일 만에 6배 저렴한 가격에 작업을 마쳤다는 후문. 공장에 기계를 다 조립했을 때, 와나타베 사장은 휠체어를 타고 직접 한국에 찾아와 기계를 하나하나 손수 점검하며 김 대표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 날개옷이라는 뜻의 하고로모, 그대로 이어가는 게 소명
신형석 대표가 처음에 투자한 비용은 총 7억~8억 원. 대당 5000만 원 하는 기계를 와타나베 사장이 100만 원에 주는 등 헐값에 넘겨준 덕에 초기 투자 비용이 낮았지만, 대출과 함께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모아 모든 걸 쏟았다.
신형석 대표는 처음에 굉장히 후회했다고 고백한다. 당시 유명한 재수학원의 원장 자리도 팽개치고, 주변의 만류도 무릅쓰고 강행한 결정이었다. 쉽지 않았다. 일단 몸이 고단했다. 하고로모라는 일본 단어를 그대로 차용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거부감도 심했다. 형광색 분필 72개입 한 통에 3만 8000원, 흰색은 1만 원으로 경쟁사보다 서너 배 비싼 가격이었다.
품질에 자신 있었던 신형석 대표는 학교와 학원에 샘플을 주는 방식으로 영업을 시도했다. 하고로모의 매출은 2016년 3억 원, 2017년 6억 원, 2018년 10억 원으로 매년 두 배 가깝게 증가했다. 현재는 미국과 일본, 유럽의 아마존 물량이 동난 상태고, 최근엔 중국으로 가는 컨테이너 안의 물량이 바다 위에서 이미 계약이 끝났다고 한다. 2019년 목표액은 15억 원이었는데, 그 목표치를 훨씬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고.
“제가 자신할 수 있는 게 있는데, 하고로모 분필을 한 번 써보면 다른 분필을 못 써요. 일단 수업을 하면 한 수업에 6~7개 분필이 부러지는데, 하고로모는 안 부러져요. 값이 다른 분필에 3~4배 나가지만 실제론 더 경제적이죠. 그리고 그 필기감은 일단 말로 설명이 안 되죠. 처음엔 비싸서 멀리하다가도, 점점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예요.”
지난 13일 취재팀이 공장을 방문했을 때 물량이 부족하다면서도 공장의 기계는 돌지 않고 있었다. 원재료를 일본에서 공수해오는데, 갑작스러운 주문 폭주 때문에 이미 원재료를 다 써버린 것. 신형석 대표는 일본에서 쓰던 원재료를 그대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중간에 원재료를 국산으로 바꿔봤는데, 퀄리티가 완전 달라지더라고요. 예전과 바뀐 건 물밖에 없어요. 탄산칼슘이 원재료인데 그게 조개껍질이거든요. 타사는 대부분 조개껍질 100%에 물과 색을 내는 재료로 만들어요. 하고로모는 굴 껍질을 비롯해서 6~7가지가 더 들어가요. 생산 과정도 길어요. 다른 곳에선 하루 만에 만들 물량을 저희는 일주일 걸려서 만들거든요. 반죽을 하루 숙성한 뒤 도자기 만들 듯 굽는 작업이 있어서 그래요.”
총 직원 10명인데 그중 한 명은 재일교포로 하고로모 나고야 공장에서 일하던 직원이다. 점점 채용을 늘리며 규모를 확장 중인 신형석 대표의 어깨는 무겁다. 80년 넘게 이어오던 기업의 이름을 먹칠할 순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고로모가 설립되던 1932년엔 후지분필이라는 기업이 가장 잘나갔대요. 와타나베 사장님의 할아버지가 후지산보다 큰 이름을 지어야 후지분필을 이길 수 있다며 하고로모(날개옷)이라고 이름은 지은 거죠. 한자로 날개 익(羽), 옷 의(衣)예요. 명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요. 그렇게 브랜드를 그대로 살려 나가는 게 제 사명이겠죠.”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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