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하나투어가 최근 2000억 원의 사모펀드를 조성해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박상환 하나투어 회장은 지난 4월 26일 열린 글로벌 온라인 여행 컨퍼런스 WIT(Web In Travel) 대담에서 이런 계획을 밝혔다. 국내 패키지 사업의 난항을 타개하겠다는 계획인데, 글로벌 시스템 구축이 말처럼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이날 박상환 하나투어 회장은 “전체 여행 산업이 팽창하는 가운데 패키지 여행 수요가 점차 줄고 있다. 고객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고객이 원하는 수준의 여행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2000억 원의 펀드를 조성해, IT 회사가 아닌 전통적인 여행사가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여행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부킹닷컴과 아고다, 익스피디아 등 국내외 OTA(Online Travel Agency)가 주축이 되는 글로벌 컨퍼런스에 패키지 여행사의 오너가 패널로 나와 대담을 진행한 것은 이례적이다.
현재 IT를 기반으로 포지셔닝 하고 있는 글로벌 OTA에 비해 하나투어는 IT에 한참 약하다. 하지만 몇십 년간 쌓아온 여행 콘텐츠에 대한 경험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이에 도전한다는 계획. 박 회장은 2018년 말 경영기획발표에서도 2019년 사업목표를 “글로벌 역량 강화를 통한 플랫폼화”라고 선언한 바 있다.
# 해외 현지 인프라 구축에 초점, 글로벌 OTA로 도약?
박 회장은 2000억 원의 펀드 중 600억 원은 하나투어에서 직접 출자한다고 밝혔다. 하나투어가 밝힌 펀드의 사용처는 해외 현지의 인프라 구축이다.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단순한 패키지 여행에서 개인의 니즈에 따른 맞춤 여행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현지 여행 소스의 경쟁력, 즉 콘텐츠와 가격 경쟁력이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하나투어의 이번 투자는 한국인의 해외여행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외국인의 외국여행’까지 포함한다는 것. 본부장을 현지 법인에 파견하는 등 글로벌 상품과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지 법인을 세우고 인재를 파견하는 것만으로 글로벌화가 가능할까?
현재 하나투어의 현지 법인은 일본,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10여 개. 하나투어 일본 법인인 하나투어재팬의 인바운드(외국인의 일본여행)의 경우 조금씩 성과도 나고 있는 상황이다. 2018년에 한국인 26만 명의 일본여행을 진행한 것 외에 인도네시아, 중국, 태국, 베트남 등 제3국의 여행객 4만 명의 일본여행을 진행했다.
하나투어는 현지 법인의 이러한 경험치를 확대하고 다각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단 현지에 여행 인프라를 구축하면 한국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OTA들처럼 현지화와 마케팅을 통해 외국인 여행객을 흡수할 수 있다는 예상이다. 다만 하나투어재팬이 3~5년을 두고 서서히 서비스를 확장한 만큼 글로벌화를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입장. 보통 글로벌 OTA가 하듯 현지 마케팅에 엄청난 비용을 쏟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하나투어가 미래 전략으로 내세운 개인맞춤여행과 외국인의 외국여행에 박차를 가할 플랫폼은 하나투어 내에서도 아직 ‘차세대 시스템’으로 불린다. 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자유 여행자들은 항공과 호텔, 현지투어 등 자신의 일정을 스스로 구성해 맞춤 패키지를 만들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하나투어가 밝힌 차세대 시스템이란 “호텔·항공·패키지 플랫폼에 하나투어닷컴,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고객특성에 따른 맞춤 마케팅), 통합정산 시스템 등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초에 착수해 올해 9~10월이면 완성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450여 명의 전문가와 400억 원 가까운 자금이 투입된 상황. 호텔 플랫폼, 항공 플랫폼, 패키지 플랫폼은 개발 완료 단계로 곧 테스트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객이 직접 만드는 다이내믹 패키지 등 글로벌 OTA가 제공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하나투어가 제공하겠다는 포부다.
# 감성적 접근, 국내 인프라도 신경 써야
하나투어는 차세대 프로젝트를 공격적으로 진행하더라도 기존의 패키지 상품 역시 놓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수요가 줄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안정적인 수익을 만드는 기존 패키지 상품을 메인으로 소규모 패키지와 현지 투어 등을 더한 차세대 플랫폼을 보완해 새로운 파이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4월 초 출시한 4인 이상 출발 상품인 ‘우리끼리’도 60여 개 상품에서 이미 1500여 명이 모객된 상태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나투어는 최근 보험대리점업을 등록하면서 여행자보험을 선택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
하지만 하나투어는 이미 올해 1월 1일, 기존 랜드사와 현지 인프라를 바탕으로 현지 투어 플랫폼 ‘모하지(Mohaji)’를 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모하지는 맨날 모하지?”라는 비아냥이 돌 정도다. 모하지는 1월 출시 이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3~4월에는 시스템을 정비하는 기간을 가졌다. 베타서비스도 아닌 정식서비스인데 결과는 참담했다. 하나투어 측은 “아직 여러 가지 실험과 시도를 통해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며 “모하지는 단순히 현지여행 플랫폼의 시도였으며 차세대 플랫폼은 그와는 전혀 다를 것”이라는 입장이다.
IT 기반 여행업을 운영하는 업계 관계자는 “여행은 제품이 아닌 서비스다. 너무 기술적으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글로벌 OTA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국 토종 OTA인 마이리얼트립이 성공적인 이유도 현지여행을 단순히 가격과 물량이 아닌 ‘감성’과 ‘경험’의 측면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런 부분까지 잘 잡아내는 업체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한 여행의 ‘감성’을 하나투어가 가져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익스피디아나 부킹닷컴 등이 탄생한 미국, 유럽, 일본 등 여행 선진국들의 경우는 자국의 인프라를 먼저 다져놓고 해외로 진출했다. 글로벌이 되려면 먼저 자국 인프라 구축이 선행되어야 그 노하우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며 “하나투어의 글로벌화가 제대로 되려면 국내 여행 인프라 구축도 무시 못 할 작업”이라고 조언했다.
하나투어가 중국 유커 등 인바운드 여행객을 위한 면세업과 호텔업을 병행하는 만큼, 국내 여행 인프라 구축에도 신경 써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일본은 인구 1억 3000만 명 가운데 한 해에 1700만 명 정도만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 국내 여행 인프라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투어가 국내 여행 인프라를 잘만 구축하면 한류 관광의 한 축이 되어 글로벌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향후 개별 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라며 “차세대 플랫폼이 여행의 중심을 여행사에서 고객으로 옮기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한편 박상환 회장이 밝힌 2000억 원 사모펀드는 주관사 등이 결정되어 막 진행을 시작했지만 아직은 첫 삽을 떴을 뿐이다. 하나투어가 그린 청사진과 현실과의 괴리는 펀드의 조성 정도로 가늠할 수 있을 듯 보인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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